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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음악가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레스

“첫번째 악기는 피아노 아닌 몸… 조화 속에서 음악 나와”

기사입력 2013-01-23 21:57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레스(69·사진)가 내한한다. 포르투갈 태생의 그에게는 ‘우리 시대 최고의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라는 찬사가 따라붙는다. 그와 쌍벽을 이루는 또 한 명의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인 일본 태생의 우치다 미쓰코(65)가 ‘열락(悅樂)의 연주’를 펼치는 것과 달리, 피레스는 ‘시심(詩心)의 연주’를 들려준다. 내한 무대는 이번이 두번째다. 1996년에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하는 로열 콘세르트허바우와 내한한 이후 17년 만이다. 이번 공연은 고령의 거장 베르나르트 하이팅크(84)와의 협연이어서 한층 기대를 모은다. 2월28일과 3월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회를 펼칠 피레스를 e메일로 미리 만났다. 전형적인 연주자 드레스를 거부하고 히피풍의 ‘자연주의 의상’을 고수하는 그는 생태주의자의 면모를 드러냈고 경쟁주의에 빠진 콩쿠르를 비판했다. 한 살 연하의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의 명상적 연주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그가 보내온 답변을 거의 가감없이 싣는다.

- 1996년에 당신은 한국의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했다. 그것은 매우 난센스였다. 당신의 연주와 세종문화회관이라는 초대형 홀은 그야말로 부적절한 조합이었다. 이번에는 연주홀이 그때와 달라서 다행이다.

“피아니스트에게 첫번째 악기는 몸이다. 신체를 자유롭게 해야 두번째 악기인 피아노를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 신체와 피아노의 조화 속에서 음악이 나온다. 알다시피 나는 손이 작다. 그래서 불필요한 동작을 없애고 상태가 좋은 피아노와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지난번 한국 방문 때의 공연장 상황은 내 몸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고, 어떤 피아노로도 해결할 수 없었다.”

- 당신은 1980년대에 손목 부상으로 활동을 쉬었고 2006년에는 심장 수술을 받았다. 그런 계기들을 통해 어떤 변화가 있었나.

“잠시 연주에서 떨어져 있어야 했을 때, 나는 자신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계속 물었다. 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생각하는 시간이었고 내면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그때 느낀 것은 연주하고 싶은 것만 연주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내 연주에 스스로 자신감을 갖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늘 고민을 한다. 그 고민을 해소하려면 타인의 음악에 귀를 기울인 다음에 자신의 눈을 떠야 한다.”

- 지금까지 음악가로서 지향해온 것은 무엇인가.

“음악은 신(a god)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작품에 추가적 해석을 하거나 불필요한 장식을 하지 않는 이유도 그렇다. 듣는 이가 내 연주로 마음을 정화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 스스로 영향받았다고 생각하는 피아니스트가 있는가.

“라두 루푸다. 그는 단순히 위대한 피아니스트일 뿐 아니라 위대한 음악가다. 완벽한 음악을 구현한다. 루푸의 연주는 미래 세대가 가장 ‘순수한 음악’으로 기억할 현대의 드문 사례로 빛날 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지만 내가 즐겨 쓰는 야마하 피아노의 조율사 호시노 준, 2001년에 세상을 떠난 그가 그립다. 호시노가 가끔 ‘오늘은 객석에 앉아서 듣고 싶어요’라고 말하면, 나는 ‘당신은 계속 스테이지 뒤에 있어야 해요’라고 말하곤 했다.”

- 당신의 무대 의상은 간결하다. 피아니스트들이 일반적으로 입는 드레스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어두운 색상, 입기 쉬운 소재다. 대마나 면 같은 자연 소재가 좋다. 화장은 하지 않고 머리는 늘 쇼트 커트다. 신발도 평평한 것만 신는다. 나는 그래야 마음이 편해진다.”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레스가 학생에게 레슨하고 있다. | 빈체로 제공

- 한국을 비롯한 많은 동양의 학생들이 유럽을 동경하며 음악 유학을 떠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양 학생들은 유럽으로 유학을 가는 것이 큰 장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말과 습관의 차이 때문에 긴장의 연속으로 살아가는 학생들을 많이 봤다. 느긋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하지 못하고 피아노를 배울 때도 긴장을 풀지 않는다. 좋지 않은 방법이다.”

- 유명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것도 젊은 음악가들의 꿈이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나는 젊은이들이 상업적인 제안을 과감히 거절하는 용기를 갖기를 바란다.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콩쿠르가 예술가의 길이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그리고 이것도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지만, 청중에게도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연주의 휴지부에 박수를 치지 않았으면 한다. 리사이틀에서나, 협연에서나 나는 고요함 속의 평화를 청중과 공유하고 싶다.”

- 당신은 독주보다 협연을 더 즐기는 편인 것 같다.

“리사이틀에서 홀로 연주하는 것보다 듀오나 트리오 무대에서 독주를 하는 것이 더 편하다. 예를 들자면, 피아노로 가곡 반주를 하다가 피아노 소나타를 중간에 연주하는 방식이다. 그때 가수는 퇴장하지 않고 준비된 의자에 앉아 내 연주를 들을 것이다. 그 옆에는 테이블이 놓여 있을 것이고 전등도 켜져 있을 것이다. 중간에 물도 마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편하게 앉아 서로 공명하는 모습이 청중에게 한 폭의 그림으로 비치길 바란다.”

- 무대에서 은퇴한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

“2010년에 스페인 신문 ‘엘 파이스’가 내가 은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실과 다르다. ‘은퇴하고 싶다’와 ‘은퇴한다’는 다른 것이다. 내년이면 70세가 되는데, 그때부터는 학대받는 어린이들을 위한 일에 집중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을 뿐이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