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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클래식 101

라벨, 볼레로(Bolero) 색채의 마술사 라벨, 볼레로(Bolero) 오래 전에 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여주인공은 줄리아 로버츠였는데, 의처증 있는 남편 역으로 나왔던 남자 배우가 누구였는지는 잘 기억나질 않는군요. 어쨌든 20여 년 전에 본 이 영화에서 아직도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바로 남편의 정리벽을 묘사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욕실에 물 한 방울 떨어진 것도 견디질 못하는 성격이지요. 집안의 모든 사물이 정확하게 정돈돼 있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런 그가 욕실에 타월을 걸어두는 장면을 카메라가 근접 촬영합니다. 흰색 타월을 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이등분해서 걸어두는 장면입니다. 물론 남자 주인공의 결벽적 캐릭터를 드러내려는 감독의 의도였겠지요. 오늘 우리가 만나려는 작곡가 모리스 라벨(1875~1.. 더보기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음악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한데 애써 경계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것을 ‘허위적 관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대중가요를 종종 듣곤 했는데 그런 제 모습을 보고 후배가 한마디 툭 던지더군요. “이제 음악적 노선을 바꾸는 겁니까?” 물론 장난삼아 던진 말이겠지요. 한데 그 농담 속에도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 이를테면 클래식과 대중음악 사이에 놓인 견고한 장벽이 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클래식만을 ‘들을 만한 음악’으로 여기는 순혈주의자들도 종종 눈에 띕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면의 결핍을 보상받으려는 심리에 가깝지 않을까요? 정작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개성과 깊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장르 불문하고 그 두 가지를 품고 있는 음악은 훌륭합니.. 더보기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올해는 핀란드의 작곡가 얀 시벨리우스(1865~1957)의 탄생 150주년입니다. 그의 음악을 연주하는 무대들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3월13일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지는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내한 연주회에 애호가들의 기대가 쏠려 있습니다. 거장 마렉 야노프스키(76)가 지휘봉을 듭니다. 이 지휘자에 대해서는 제가 (2012년, 돌베개)라는 책에서도 길게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제는 몇 차례 내한공연을 통해 한국에도 꽤 많은 팬들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 지면에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덧붙이고 싶은 사실은 이날 연주회에서 협연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프랑크 페터 침머만(50)이라는 점입니다. 2001?2008년에도 한국에 다녀간 적이 있는 침머만은 크리스티.. 더보기
에릭 사티, <6개의 그노시엔느> (6 Gnossiennes) 에릭 사티, 6개의 그노시엔느(6 Gnossiennes) 지난 회에 에릭 사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사티가 젊은 시절에 떠돌았던 몽마르트르 언덕과 캬바레 ‘검은 고양이’, 또 사티의 어린 시절과 그의 음악에 담긴 ‘중세적 명상’의 관계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함께 들었던 곡은 사티의 초기작이었던 였지요. 사실, 사티에 대한 언급은 그렇게 한 편의 글로 마무리할까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거론해야 할 음악가, 또 들어야 할 음악이 많아서였습니다. 한데 뭔가 영 아쉽고 찜찜했습니다. 사티는 생존했던 시절보다 20세기 중후반 이후에 그 존재가 더욱 빛나기 시작했고, 피아니스트들이 즐겨 연주하는 레퍼토리는 아니지만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물론 대중이 좋아하는 곡은 사티의 음악 중에서 극.. 더보기
에릭 사티, 3개의 짐노페디(Trois Gymnopedies) 에릭 사티, 3개의 짐노페디(Trois Gymnopedies)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은 지금도 예술가들의 거리로 유명합니다. 이 고갯길에 예술가들이 몰려든 것은 19세기 말부터였지요.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로 손꼽혔던 오스트리아 빈의 영광이 마침내 저물면서 프랑스 파리가 새로운 예술가들의 도시로 떠오릅니다. 19세기 말의 프랑스는 식민지를 급속히 늘리면서 경제적 풍요를 구가하고 있었고 파리에서는 젊은 예술가들의 새로운 에너지가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앞의 칼럼에서 언급했던 말라르메와 드뷔시 같은 이들이 당시 파리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예술가들이었고, 화가로는 고흐와 르누아르, 로트렉 등이 몽마르트르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아직 10대였던 피카소가 부푼 꿈을 안고 찾.. 더보기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드뷔시의 음악 중에 이 지면에서 이미 언급한 것으로는 가운데 ‘달빛’, 또 지난 달 게재했던 가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드뷔시의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인 을 골랐습니다. 연대기적으로 보자면 1890년 작곡했던 과 1903년부터 3년간에 걸쳐 썼던 의 중간쯤에 위치합니다. 드뷔시는 을 1892년부터 3년 동안 작곡했습니다. 인상주의 음악의 문을 마침내 열어젖힌 걸작, 독일^오스트리아 음악과 확연히 맛이 다른 프랑스 근대음악의 첫걸음으로 기억되는 관현악곡입니다. 음악으로 들어서기 전에 드뷔시의 성장 과정을 잠시 복기해 보겠습니다. 그는 1862년 8월 22일, 생 제르맹 앙레(Saint-Germain-en-Laye)라는 곳에서 태어났지요. 파리에서 서쪽으로 20km쯤 떨어져 .. 더보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Also sprach Zarathustra)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1864년에 독일 뮌헨에서 태어났습니다. 네 살 위의 구스타프 말러와 더불어 후기낭만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자리매김돼 있지요. 한데 이 시기, 그러니까 슈트라우스와 말러 같은 이들이 활약했던 이른바 세기말과 20세기 초반은 문화사적으로도 큰 변동이 있었던 ‘전환의 시기’입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으로 대중문화와 대중매체의 확산을 꼽을 수 있겠지요. 영화의 탄생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1895년 12월 23일, 뤼미에르 형제의 필름을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에서 유료로 상영한 날을 기점으로 꼽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대중적으로 복제하는 것을 가능케 했던 또 하나의 테크놀로지, 즉 음.. 더보기
말러, 교향곡 5번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5번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는 말은, 구스타프 말러의 어록 중에서도 오늘날 가장 많이 회자됩니다. 주지하다시피 그것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습니다. 말러가 네 살 아래의 슈트라우스를 처음 만났던 때는 1888년이었습니다. 스물여덟 살 때였지요. 성악가 요한나 리히테르를 향한 사랑이 실연으로 끝나고 첫번째 연가곡 를 작곡했던 것이 그로부터 4년 전, 이어서 그 연가곡의 선율을 모티브로 삼아 교향곡 1번 ‘거인’을 완성했던 해가 바로 1888년이었습니다. 당시 말러는 ‘바흐의 도시’로 유명한 라이프치히에서 카펠마이스터로 일하고 있었지요. 이 시기에 첫 대면한 두 청년은 독일 후기 낭만음악의 대명사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더보기
드뷔시, 바다 - 관현악을 위한 3개의 교향적 소묘 드뷔시, 바다-관현악을 위한 3개의 교향적 소묘 일본의 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1760~1849)의 채색목판화 ‘카나가와의 큰 파도’를 기억하는지요? 아주 유명한 그림입니다. 가츠시카는 후지산의 모습을 원경(遠景)으로 바라봤습니다. 바로 눈앞에서는 집채만한 파도가 사납게 으르렁대고 세 척의 배가 풍랑에 휩쓸려 흔들리고 있습니다. 배가 거의 뒤집힐 것 같은 급박한 상황입니다. 개미만한 크기로 묘사된 배 위의 사공들은 넋이 빠진 채 어쩔 줄 모릅니다. 그리고 멀리에서, 머리에 흰 눈을 얹은 후지산이 그 모든 상황을 점잖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화면 중앙의 오른쪽 아래, 그 난리법석인 상황에서도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후지산의 모습이 작게 묘사돼 있습니다. 마치 파도 위에 오연하게 떠 있는 한 조각 섬.. 더보기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b단조 Op.104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b단조 19세기를 관통하는 낭만시대는 음악의 보고입니다. 요즘 우리가 듣는 클래식 음악의 상당 부분이, 적어도 70% 이상이 이 시절에 세상에 태어난 음악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꼭 들어봐야 할 멋진 곡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가득한 시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면의 한계 때문에 그 빛나는 음악들을 일일이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드보르작의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앞서 그의 교향곡 9번을 들었지만 8번도 빼놓을 수 없는 걸작입니다. 특히 8번 G장조는 이른바 ‘클래식 비수기’로 불리는 여름철에 많이 연주되는 곡이지요. 음악이 시원하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푹푹 찌는 여름철은 클래식 음악을 듣기에 적기라고 볼 수는 없겠지요.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