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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클래식 101

브람스, 네 개의 엄숙한 노래 Op.121 브람스가 쓴 가곡(Lied)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은 무엇일까요? 아마 다들 아시는 곡일 겁니다. 우리말로 가사를 바꿔 부르기도 하는 유명한 노래입니다. ‘잘 자라~ 내 아기~ 내 귀여운 아기, 아름다운 장미꽃 너를 둘러 피었네~’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곡이지요. 그렇습니다. ‘브람스의 자장가’로 불리는, 작품번호 49의 네번째 곡(Op.49-4)입니다. 브람스가 친구인 베르타 파버(Bertha Faber)에게 선물한 곡이지요. 파버는 여성 성악가입니다. 브람스는 1857년부터 약 3년간 고향인 함부르크에서 합창단을 지휘했는데, 파버는 바로 이 합창단 단원이었습니다. 세월이 약 10년쯤 흐른 1868년에 그녀가 둘째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이 곡을 작곡해 선물했던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브람스는.. 더보기
드보르작, 교향곡 9번 e단조 ‘신세계로부터’ 예술가는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땅을 몸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작품 속에 알게 모르게 지역성(locality)을 내포하게 되지요. 예컨대 쇼팽이 그랬습니다. 물론 그가 프랑스 파리에서 폴란드적인 음악을 해야겠다고 특별히 마음을 먹었던 것은 아니었지요. 하지만 어떻습니까? 제가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는 책에서도 썼듯이 쇼팽의 음악에는 “조국 폴란드에서 체득한 육체성”이 꿈틀거립니다. 음악가들에게 이런 경우는 아주 흔합니다. 브람스의 음악이 보여주는 아다지오 템포의 두터운 선율은 그의 고향인 북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를 떠오르게 하고, 차이코프스키의 어두운 노랫가락은 러시아의 광산촌 보트킨스크의 구름낀 하늘을 연상시킵니다. 음악가들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지역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더보기
스메타나, 교향시 <나의 조국> 체코의 음악가로 누가 떠오르시는지요? 아마 안톤 드보르작(1841~1904)이 제일 먼저 생각날 겁니다. 이어서 베드르지히 스메타나가 떠오르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드보르작보다 17년 연상의 음악가입니다. 국제적 명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드보르작보다 조금 덜 알려진 사람이지요. 지금도 그렇고 당대에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체코의 민족음악’이라는 기준에서 보자면 드보르작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민족적인 색채를 보여줬던 음악가입니다. 스메타나는 작곡가였을 뿐 아니라 피아니스트, 지휘자, 비평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순수하게 체코적인 스타일의 음악을 창조한 사람”이라고 자평하기까지 했지요. 물론 음악적 권위가 공고하지 못했던 젊은 시절에는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스메타나는 188.. 더보기
브루크너, 교향곡 7번 E장조 안톤 요제프 브루크너 [출처: 위키피디아] 지난 회에 들었던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에 이어 오늘은 7번을 듣겠습니다. 이 두 곡은 브루크너가 남긴 교향곡 중에서도 오늘날 가장 많이 이들이 좋아하는 음악일 겁니다. 4번은 앞서 설명했듯이 ‘낭만적’이라는 표제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측면이 있고, 브루크너의 다른 교향곡들에 비해 음악의 구조가 좀더 간명하고 곡의 분위기도 비교적 밝습니다. 그런데 7번은 왜 인기가 있는 걸까요? 그에 대한 해답은 아마 느린 2악장에 있을 겁니다. 바그너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약 20분가량의 긴 악장이지요. 듣는 순간에 곧바로 가슴을 파고드는 아름다운 선율이 등장합니다. 누구라도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을 겁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이라는 드라마에서 배.. 더보기
브루크너, 교향곡 4번 E플랫장조 ‘낭만적’ 안톤 요제프 브루크너 [출처: 위키피디아] 음악이 대중적인 것과 순수한 것으로 나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의 일입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그런 식의 이분법으로 음악을 쪼개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하는 19세기의 음악가들은 ‘그냥 음악가’였습니다. 베토벤이나 슈베르트는 물론이거니와, 좀 더 후대로 내려와서는 리스트나 파가니니 같은 비르투오소 계열의 음악가들, 혹은 점잖고 묵직한 이미지로 표상되는 브람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날 ‘순수하고 고급스러운 음악가들’로 인식되는 그들조차도 당대에는 그저 ‘음악가’로만 존재했습니다. 말하자면 음악적 순수함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까지 두루 갖춘 음악을 써내는 것이 그들의 작업이었습니다. 물론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변화인 자본주의.. 더보기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b플랫단조 ‘장송’ 쇼팽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여성이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작가 조르주 상드(1804~1876)입니다. 쇼팽보다 6년 연상이지요. 오늘은 이 유명한 여성 작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이름부터 한번 살펴보지요. 그녀의 본명은 ‘아망틴 오로르 루실 뒤팽’(Amantine Aurore Lucile Dupin)입니다. 자유분방하고 진취적인 여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열여섯 살에 지방 귀족이었던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지만 시골 영주의 안주인으로 살 수 있는 여성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뒤드방 남작과 헤어진 채 두 아이를 데리고 파리로 들어서지요. 그게 1831년의 일이었고 이듬해에 (Indiana)라는 소설을 써서 작가로 데뷔합니다. ‘조르주 상드’라는 이름은 이 소설을 발표하면서 사용한 필명이었는데.. 더보기
리스트, 교향시 3번 <전주곡>(Les Preludes) 작가 안데르센(1805~1875)은 30대 중반에 긴 여행길에 오릅니다. 1840년 10월 31일,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출발했습니다.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스를 거쳐 중동 지역까지 건너가지요. 이후에 오스트리아 빈을 통해 덴마크로 다시 돌아오는 여정이었습니다. 약 9개월이 걸렸다고 하지요. 그는 당시의 여행에서 겪은 일들과 보고 들은 것들을 2년 뒤에 책으로 펴냈습니다. 『시인의 시장』(En Digter Bazar)이라는 여행기입니다. 그 책의 초판 속표지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우리 함께 상상 속의 시장을 돌아다녀 보자 / 그 풍요로움을 내가 보여줄 테니 / 코펜하겐에서 동방까지 /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 아치 주랑들을’ 어떤가요? 책을 내놓고 홍보하는 카피라고 해야겠지요? 안데르센이 살았.. 더보기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 1804년에 황제로 즉위한 나폴레옹은 유럽 곳곳을 정복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1806) 스페인을 속국으로 만들고(1807) 합스부르크 왕가의 본거지인 오스트리아를 1809년에 굴복시켰습니다. 잇따른 승리에 도취해 영국, 러시아와 또 한판의 전쟁을 벌이지요. 하지만 이 지점부터 나폴레옹의 몰락이 시작됩니다. 광활한 러시아를 정복하는 데 실패한 데 이어 막강한 경제력을 자랑했던 영국과의 전쟁에서도 패배하지요. 결국 그는 1814년 4월에 지중해의 작은 섬 엘바로 유폐됩니다. 베를리오즈 [출처: 위키피디아]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은 좌절됐지만 당시 유럽 사회에 남긴 영향은 거대했습니다. 프랑스혁명의 이념이 유럽 곳곳으로 전파된 것이지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실각 이후의 ‘빈 체제’는 불안할 수밖에 없.. 더보기
말러, 교향곡 2번 '부활'('Auferstehung','Resurrection')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합니다. 영국의 시인 T.S. 엘리어트는 (The Wasteland)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하지만 지금 이 땅의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가슴을 억누르는 이 무거운 감정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하나는 슬픔이고, 또 하나는 분함입니다. 지금 우리는 슬프고 분합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와 싸우다 숨을 거뒀을 어린 생명들을 생각하노라면 참담한 슬픔이 몰려옵니다. 살릴 수 있었던 아이들을 아직까지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국가 권력의 무능과 무책임을 생각하면 분하고 억울합니다. 지난주에는 황망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이 컬럼.. 더보기
멘델스존, 무언가(Lieder ohne Worte) 펠릭스 멘델스존(Jok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년~1847년 지난 회에 슈만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교향곡 ‘봄’이었지요. 그러니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멘델스존이 떠오릅니다.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이 두 명의 음악가는 동료이자 친구였지요. 아주 절친했습니다. 나이도 거의 비슷합니다. 멘델스존이 1809년생, 슈만이 1810년생이지요. 제가 이미 설명했듯이 슈만은 작곡가뿐 아니라 음악비평가로도 활약이 대단했는데요, 그는 ‘다비드동맹’이라는 가상의 단체를 설정해놓고 그 단체의 회원들이 토론을 펼치는 방식으로 음악비평을 쓰곤 했습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였지요. 그런데 슈만이 그 비평 속에서 ‘음악적 동지’로 묘사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멘델스존입니다. 자신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