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객석에서

소프라노 홍혜경 리사이틀…담백한 슬픔의 노래 기사입력 2010-07-12 17:52 ‘아, 모든 것 이미 사라졌네. 사랑의 행복도 영원히. 내 마음 위로하는 환희의 시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구나.’ 소프라노 홍혜경이 모차르트의 에 등장하는 파미나의 아리아 ‘아, 가버린 사랑이여’의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 객석에는 어느새 고요한 슬픔이 번졌다. 오랜만에 맛보는 노래의 진경(眞境)이었다. 화려한 볼거리도 재치있는 쇼맨십도 없이 2시간 내내 담담하게 흘러간 공연이었지만, 관객의 환호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홍혜경은 아무 양념도 가미하지 않은 노래의 진미를 소담한 식탁에 차려냈고, 지난 2년간 자신이 겪었던 슬픔을 그 노래에 투영해 관객을 몰입시켰다. 암투병하던 남편을 하늘로 보내고 한동안 무대를 떠났던 홍혜경이 지난 8일 고양 아람누리에서 관객.. 더보기
연극 ‘프로즌 랜드’…엄혹한 현실, 즐거운 상상력 기사입력 2010-08-11 21:46 소극장에서 연극을 보는 묘미 가운데 하나는 ‘낯선 연극’을 만나는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통념으로 해석하기 난감한 ‘이상한 연극’일 때도 있다. 그래서 객석에 앉은 관객은 때때로 불편하거나 지루하다. ‘대체 이게 뭔 소린가’라는 푸념도 나온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익숙하지 않아서 어딘가 불편한, 새로운 상상력과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소극장에 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대학로의 정보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사진)는 그런 점에서 볼 만한 연극이다. 84년째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이상한 나라에서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어느 가족의 파멸을 때로는 희화적으로, 때로는 비극적으로 그려낸다. 리얼리즘과 블랙 코미디가 뒤섞이면서 관객의 눈을 혼란스럽게 하는 측면.. 더보기
눈부시지만 슬픈 고향의 추억…연극 ‘핼리혜성’ 기사입력 2010-07-21 18:06 고향은 완전히 물 속에 가라앉았다. 마을 어귀를 늠름히 지켜주던 느티나무, 고개 너머의 초등학교, 물수제비를 뜨고 다슬기를 건져올리던 실개천, 산등성이를 온통 보라색으로 물들이던 진달래꽃…. 모두 사라졌다. 어린 시절 동무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연극 (사진)은 그렇게, 눈부시지만 슬픈 추억에 대한 이야기다. 1986년에 지구를 지나간 핼리 혜성처럼, 76년을 기다려야 다시 지구를 찾아오는 그 별처럼, 살아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나의 원형질’에 대한 아픈 회고다. 연극의 배경은 제천댐 수몰지구. 소극장의 한가운데 자리한 무대에 단순하고 커다란 타원형 수조가 놓였다. 수조에는 배우들의 정강이에 차 오를 만큼 물이 담겼다. 산중턱까지 물에 잠겨 점점 가라앉는 고향 마.. 더보기
연극 ‘마릴린 먼로의 삶과 죽음’…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녀 기사입력 2010-07-07 17:35 이 연극은 ‘괴물의 삶’을 강요받았던 한 여인의 분열된 자아에 대한 이야기다. 1926년생. 본명은 노마 제인 모텐슨.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수용된 어머니 때문에 애정결핍에 시달렸던 아이. 어머니의 친구집과 보육원을 전전하며 살았던 소녀. 열여섯에 처음 결혼한 후,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 재혼해 9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고 극작가 아서 밀러와 세번째 결혼해 5년 만에 결별했던 여자. 과학자 아인슈타인,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와 이브 몽탕, 대통령 케네디와 그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등 당대의 명사들과 염문을 일으켰던 스캔들의 여왕. 하얀 원피스에 풍성한 금발, 빨간 입술 옆에 선명한 점 하나가 찍혀 있던 백치미의 상징. 그녀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죽어가면서 이렇게 말한.. 더보기
피터 브룩의 ‘11 그리고 12’…예술은 다만 질문일뿐 기사입력 2010-06-18 17:57 어떤 이들은 무대에 펼쳐질 ‘장관(壯觀)’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과 사회의 정치적 상관성을 날선 언어로 묘파하는 ‘센 연극’을 기대했을 수도 있겠다. ‘20세기 연극의 신화’ ‘모든 연극학도들의 스승’ 등 연출가 피터 브룩(85)에게 쏟아져온 전설적 수사들은 (사진)라는 연극에 대한 빗나간 환상을 부풀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축구 경기가 펼쳐졌던 17일, 거의 같은 시간에 서울 LG아트센터에서 막 올린 는 역시 텅 비어 있었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빈 공간’에서 배우들은 연극적 액션을 보여주기보다 그저 담담하게 관객에게 이야기를 건네왔으며, ‘이쪽으로 들어와 저쪽으로 나가시오’라는 강요의 언어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 더보기
연극 ‘벚꽃동산’…강렬한 무대디자인, 실종된 인간의 얼굴 기사입력 2010-06-03 18:00 | 최종수정 2010-06-04 00:16 막이 오르는 순간, 객석 여기저기에서 “와” 하는 탄성이 새어나왔다.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잡아끄는 매혹적인 무대였다. 30m가 넘는 깊이를 그대로 살려낸 갈색 톤의 질감 있는 무대. 전면은 널찍하고 뒤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면서 사다리꼴 모양새를 취했다. 라네프스카야 부인의 오래된 영지 ‘벚꽃동산’에 자리한 대저택의 실내다. 오랜 세월 간직해온 풍요로움과 당당함, 그 저택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숱한 가솔들, 하지만 러시아가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면서 점점 쇠락해갈 수밖에 없는 벚꽃동산의 슬픈 운명을 고스란히 담아낸 무대였다. 삐걱대는 나무 틈새로 간신히 스며 들어오는 햇살. 그것은 마치 앓아 누운 노인의 팔목처럼 앙상했다. .. 더보기
연극 ‘광부화가들’…노동하는 공동체에 예술을 돌려달라 기사입력 2010-05-12 17:48 | 최종수정 2010-05-13 10:30 예술은 누구의 것인가? 이 연극이 던지는 질문은 그것이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술은 과연 무엇을 어떻게 형상화해야 진실한 것인가라는 질문까지 함축한다. 때는 1934년부터 1947년까지, 영국 북부의 탄광촌 애싱턴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광부들의 이야기다. 뮤지컬 로 세계적 유명세를 얻은 영국 작가 리 홀(44)의 이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광부의 손자이자 아들로 태어나 탄광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리 홀의 메시지는 절박하다. 그는 3시간에 달하는 이 연극을 통해 “자본이 강탈해간 예술을 노동하는 공동체에 돌려달라”고 외친다. 어느날 애싱턴의 탄광촌에 미술교사 라이언이 찾아온다. 노동자교육협회의 초청을 받은 그.. 더보기
애들 싸움에 망가진 ‘중산층의 교양’…연극 '대학살의 신' 기사입력 2010-05-06 10:56 위클리경향 열 한 살짜리 아이 둘이 공원에서 싸웠다. 정확히 말하면 페르디낭이 브루노의 앞니 두 개를 박살냈다. 그래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부모들이 모였다. 원만한 합의를 위해서다. 그러나 합의가 부드럽게 이뤄질 기미가 영 요원하다. 신경전이다. 두 부부는 서로의 자존심을 포기하지 않고 팽팽하게 설전을 벌이다가 마침내 치고받을 수준까지 육박한다. 그렇다고 진짜로 치고받진 않는다. 교양있는 중산층인 그들에게 물리적 폭력은 사회적 금기일 터. 그러나 그들은 남의 핸드백을 집어던지고 화병의 꽃을 바닥에 내던지면서 난동을 부린다. 그리고 마침내 걸쭉한 육두문자까지 심심찮게 등장한다. 두 부모가 보란 듯이 걸치고 있던 ‘교양’이라는 외피는 그렇게 무너진다. 대학로예술극장에서 .. 더보기
70년대 잠실섬의 아픔…서울시극단 ‘순우삼촌’ 기사입력 2010-04-27 18:05 | 최종수정 2010-04-28 00:09 ㆍ‘삶의 터전 빼앗긴 일가’ 자연에 빗댄 시적 표현 가난했던 과거의 기억마저도 키치적으로 소비되는 세상이다. 최근의 연극판에서 그런 조짐을 심심찮게 본다. 무대 위로 올라온 1970 ~ 80년대의 누추한 현실은 눈 오는 날의 풍경화처럼 아름답고 달콤하게 그려진다. 게다가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희망의 합창’으로 극을 마무리하기 일쑤다. 철거 용역에게 쫓기는 포장마차 일가족이 하이 파이브를 하면서 파이팅을 외치는 웃지 못할 촌극이라니! 하지만 서울시극단이 공연 중인 ‘순우삼촌’은 그런 면에서 다행스럽다. ‘과거의 기억’을 경망하게 덧칠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진정함을 갖췄기 때문이다. 때는 1973년.. 더보기
연극 '이기동 체육관'…삼류인생들, 마음속 상처들 때려눕히다 기사입력 2010-04-12 18:19 | 최종수정 2010-04-12 23:47 ‘이기동 체육관’은 현실에서 ‘물먹은’ 이들의 집합소다. 관장 이기동은 한때 ‘미친 탱크’로 불리며 전성기를 누렸던 유명 복서였지만, 이제는 수명이 다된 고물 탱크에 불과하다. 노인이 된 그는 펀치 드렁크가 남긴 심각한 두통을 앓는다. 게다가 한쪽 팔마저 벌벌 떠는 장애인이다. 그의 제자인 마코치도 “매일 술병을 끼고 사는 삼류인생”이긴 매한가지다. 만년 대리인 봉수는 부장의 전화 한 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소심남이고, 봉제공장 미싱사 애숙은 뚱뚱한 몸매에 열등감을 지닌 노처녀다. 이 밖의 인물들도 마찬가지. 패자를 기억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사회에서 쫓겨난 이들이 하나둘씩 체육관으로 모여든다. 무대는 허름한 체육관 풍경..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