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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에서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ㆍ아쉬운 ‘금관의 부조화’… ‘노래의 힘’엔 감동

지휘자 정명훈과 서울시향이 말러 사이클의 첫발을 내디뎠다. 실황 녹음도 동시에 진행됐다. 후기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 말러(1860~1911)는 번호가 붙지 않은 ‘대지의 노래’를 포함해 모두 10곡의 교향곡을 완성했고, 마지막 교향곡 10번을 미완으로 남긴 채 세상을 떴다. 서울시향은 번호가 붙은 10곡을 내년까지 모두 완주할 예정. 지난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선보인 2번 ‘부활’은 그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일단, 국내의 말러 애호가들이 이 연주를 지켜보기 위해 총출동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입장권은 두 달 전에 일찌감치 동났고 객석은 여느 연주회에서 보기 힘든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물론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선보이는 사이클이 한국에서 처음 펼쳐진 건 아니다. 지휘자 임헌정과 부천시향은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전곡을 연주하며 국내에 ‘말러 붐’을 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연주회가 ‘공부하는 음악회’에 가까웠다면, 이번 연주회는 말러를 제대로 즐겨 보려는 청중의 열기를 느끼게 했다. 다시 말해 국내에 말러 향수층이 꽤 두터워졌다는 뜻. 게다가 그것이 ‘지휘자 정명훈’의 대중적 인기와 맞물리면서 서울시향의 말러 사이클은 시작에서부터 이미 성공 궤도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연주회 자체의 성과는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다. 이날 서울시향은 말러 음악의 장대한 비극적 구조, 하지만 어둠을 헤치며 서서히 번져나가는 ‘부활’의 메시지를 비교적 무난하게 그려냈다. 그러나 말러 교향곡의 묘미로 손꼽히는 금관의 앙상블을 제대로 펼쳐내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정명훈이 음악감독으로 재직 중인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의 호른과 트럼펫 주자가 동참해 앙상블을 리드했음에도 불구하고, ‘금관의 부조화’는 서울시향의 여전한 숙제로 남았다. 이는 단원 125명의 대편성을 갖추기 위해 객원 연주자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빚어진 부조화로 보인다. 특히 말러는 무대에서 뚝 떨어진 ‘오프 스테이지’에 금관을 배치해 멀리서 들려오는 나팔 소리로 음악의 원근감을 시도하고 있지만, 서울시향의 이날 연주에서 그 원근의 묘미를 맛보긴 어려웠다.

아울러 곡의 초반에 보여준 정명훈의 느린 템포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특히 1악장은 느리디 느렸다. 물론 생전의 말러는 영웅의 죽음을 묘사하는 이 장송(葬送)의 악장에 대해 ‘매우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으로’라는 지시를 남겼지만, 서울시향이 선보인 연주는 지금까지 들어본 그 어떤 연주보다 느린 축에 속했다. 1악장에서 부활의 전조를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죽음 그 자체를 그려낼 것인가. 지휘자 정명훈은 후자의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음악은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정확한 묘사에 성공했지만, 듣는 이의 가슴을 뒤흔드는 심도 깊은 에너지를 전달하진 못했다.

음악적 감동은 말러가 ‘근원의 빛(Urlicht)’으로 명명한 4악장에서 밀려왔다. 협연자로 참여한 독일의 메조소프라노 페트라 랑이 “오, 붉은 장미꽃 봉오리. 인간은 극도로 곤궁하다. 인간은 극도로 고통받는다”라고 노래하는 순간, 그 나지막하면서도 힘있는 노래가 퍼져가면서 음악을 향한 객석의 집중도는 한층 올라갔다. “나 어찌 천국으로 갈 수 있을까. 나 그곳으로 먼 여행을 떠나네”라는 노랫말이 이어지자 일부 청중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것은 분명 말러 음악의 ‘문학성’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또한 말러 음악의 본질이 그 무엇보다도 ‘노래의 힘’에 있음을 실감시켜주는 장면이었다. 이날 서울시향은 독일어 가사를 정확히 번역해 무대 옆 스크린에 자막으로 제공함으로써 청중의 이해를 거들었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준 것은 150명으로 이뤄진 합창단이었다. 이번 공연을 위해 국내 4개 합창단(국립합창단, 서울시합창단, 서울모테트합창단, 그란데오페라합창단)이 급하게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2번 교향곡 ‘부활’의 후반부를 무리없이 장식했다. 물론 결함이 없었던 건 아니다. 특히 독일어 딕션의 미숙함이 전문가들로부터 지적받을 만한 부분이다. 하지만 ‘급조된 합창단’으로 이만한 음악을 들려줬다는 것만으로도 국내의 합창 역량을 충분히 증명했다. 그래서 메조 소프라노 페트라 랑, 소프라노 이명주, 150명의 합창단이 전면으로 나선 마지막 5악장의 감동은 컸다. “다시 일어서라 나의 육체여… 나는 날아가리, 살기 위해 죽으리, 일어서라, 그대 내 마음이여 일어서라.”

마지막 노랫말처럼 청중은 모두 일어섰다. 전원 기립박수의 환호 속에서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말러 사이클이 막을 올렸다. 하지만 이 연주를 그대로 녹음해 세계 시장에 출시한다는 것은 좀 성급한 행보로 여겨지기도 한다. 서울시향은 올해 세 곡의 말러 교향곡을 더 선보일 예정. 말러가 미완으로 남긴 10번(데릭 쿡이 1972년 보완한 악보)을 제임스 드프리스트의 지휘로 10월7일 연주하고, 11월3일과 12월30일에는 교향곡 1번과 3번을 정명훈의 지휘로 각각 연주한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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