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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에서

지휘자 최희준, 코리안 심포니 '고별 콘서트' [리뷰]코리안심포니 상임지휘자 최희준 ‘굿바이 콘서트’ 2014-01-29 20:33|최종수정 2014-01-29 22:02 ㆍ특유의 순정한 음향으로 3년 여정 마무리 연주가 끝났다. 마지막 음향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객석에서는 열렬한 박수와 ‘브라보!’ 소리가 터져나왔다. 성급한 행동이었지만 이날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코리안 심포니의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최희준(41)의 고별 무대였던 까닭이다. 지휘자는 열렬한 기립박수를 뒤로한 채 퇴장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악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의 귀에 익은 선율이 콘서트홀에 울려퍼졌다. 지휘자 최희준은 다시 들어왔다. 하지만 악단의 중앙으로 나오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 단.. 더보기
성시연이 보여준 '지휘자의 힘' [객석에서]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지난달 26일 막 올린 올해의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축제 기간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현재까지 펼쳐진 여러 연주회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주인공은 단연코 지휘자 성시연(36·서울시향 부지휘자·사진)이다. 그가 지난달 27일 GMMFS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연주한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는 한마디로 ‘지휘자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호연(好演)이었다. 물론 사운드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결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주회에 대한 평가는 결과뿐 아니라 과정에도 맞춰져야 한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까지의 인과관계, 아울러 음악가의 내면에 담긴 진정성 같은 요소들이야말로 요즘 같은 상업주의의 득세 속에서 한층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평가의 잣대다... 더보기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독주회... 바흐 '소나타와 파르티타'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기억을 쌓는 일이기도 하다. 내 책상 오른편에는 나름대로 정리된 LP들이 꽤 꽂혀 있고, 그중에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음반은 한 10장쯤 된다. 고교생이던 시절부터 소장해오던 것도 있고, 독일 뒤셀도르프의 고서점에서 구한 것도 있으며, 수년 전 영국 런던의 해롤드 아저씨에게서 꽤 비싸게 산 것도 있다. 미스터 헤롤드는 한국의 왠만한 LP쟁이들은 다 아는, 유명한 영국 할아버지다. 참으로 귀엽고 상냥하긴 한데 음반을 좀 비싸게 파는 게 흠이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오랜 세월 정경화를 들어왔다. 물론 음반 외에 실연으로도 여러 차례 접했다. 특히 그가 바이올린 대신 마이크를 들고 무대로 걸어나와 손가락 통증을 호소했던, 2005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의 기억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더보기
구자범과 경기필하모닉의 '젊은 사운드' 경기필하모닉 '젊은 사운드’ 바그너 음악 제대로 해냈다 기사입력 2012-05-09 21:19 | 최종수정 2012-05-10 21:18 ㆍ지휘자 구자범, 절묘한 선곡으로 청중 사로잡아 경기필하모닉의 ‘젊은 사운드’가 청중을 매료시켰다. 지난 8일 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는 열기가 넘쳤다. 구자범(42·사진)이 지휘하는 경기필하모닉은 바그너의 음악극 의 1막 3장에 등장하는 ‘결투에서 승리한 로엔그린’으로 이날 연주회를 비등점으로 몰고가 마침내 폭발시켰다. 객석은 뜨거운 환호와 기립박수로 호응했다. 계속되는 커튼콜에 답하는 지휘자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됐지만 표정은 밝았다. 지휘자뿐 아니라 단원들의 표정에서도 ‘제대로 해냈다’는 후련함이 느껴졌다. 경기필하모닉이 달라졌다. 이날 관객에게 선보인 ‘바그.. 더보기
연극 ‘33개의 변주곡’…볼 게 너무 많아서 피곤했던 공연이 끝나고 대기실로 들어섰다. 윤소정 선생이 담배연기를 휘~ 내뿜고 계셨다. 윤선생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언제 봐도 근사하다. 나도 옆에 앉아 한 대 피워 물었는데, "공연 어땠어?"라고 묻는다. 하마터면 "에이, 그저 그랬어요"라고 말할 뻔했다. 바로 앞에서는 베토벤을 열연했던 배우 박지일이 거울 앞에 앉아 분장을 지우고 있었고, 디아벨리 역의 이호성씨는 "진보 언론, 경향신문! 힘내십시요"라고 덕담까지 건네왔던 차였다. 그런데 나는 하마터면 그 모든 배우들이 바로 조금 전까지 열연을 펼쳐보였던 에 대해 실언을 내뱉을 뻔했다. 공연 직후에 배우들이 모인 대기실에서 "별로"라는 말을 내뱉는 것은 당연히 적절치 않다. 게다가 그날 출연진 7명은 저녁 공연을 한차례 더 남긴 상태였다. 그렇지만 신문에 .. 더보기
연출가 김낙형…연극 ‘토란-극’ 김낙형은 내가 좋아하는 연출가 가운데 한 명이다. 일단 그는 말투가 어눌하다. 뭔가 이야기를 하려고 끙끙대기는 하는데,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통상적이면서도 정형화된 언어로 깔끔하게 전달하는 데 아주 서툴다. 게다가 잘 웃지도 못한다. 가끔 웃긴 하는데, 그럴 때마다 표정이 아주 난감해보인다. 자연스럽게, 혹은 세련되게 웃는다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것은 좀 깊이 들어가면 '계급'의 문제와도 연관이 깊다. 내가 20대 때 아르바이트 삼아 아이들을 잠시 가르쳤을 때의 기억인데, 부잣집 애들은 말도 잘 듣고 인사도 잘하고 표정도 환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선배가 운영하던 학원에서 가난한 동네 아이들을 가르쳤을 때는 영 딴판이었다. 그곳 아이들은 어둡고 반항적이었으며 자기 표현에 서툰 경우들이 .. 더보기
연극 ‘춘향’...에로티시즘의 앵글로 바라본 <춘향전> 영욱이형의 친구인 진성이형이 연극에 출연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배우가 되겠다는 그의 늦깎이 결심이 참으로 리얼하고 절절하다. 10년, 20년 후배들과 한데 어울려 지금까지 서너편쯤 연극을 한 모양이다. 이번에는 연극 에 성참판 역할로 나왔다. 그래서 나는 이 연극을 보게 됐다. '배우 이진성'에게 가장 돋보이는 건 어린 배우들보다 훨씬 노련하고 강렬한 눈빛이었다. (나는 눈빛이야말로 연기의 절반이라고 여긴다.) 게다가 능청스러움과 유연함도 느껴졌다. 그가 무대에서 열심히 연기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역시 배우의 상상력에는 인생 짬밥이 요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찌 오래 살았다는 것만으로 저런 눈빛을 발산하겠는가? 그건 아마도 절실함에서 나오는 것일 테다. 비록 많이 늦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 더보기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ㆍ아쉬운 ‘금관의 부조화’… ‘노래의 힘’엔 감동 지휘자 정명훈과 서울시향이 말러 사이클의 첫발을 내디뎠다. 실황 녹음도 동시에 진행됐다. 후기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 말러(1860~1911)는 번호가 붙지 않은 ‘대지의 노래’를 포함해 모두 10곡의 교향곡을 완성했고, 마지막 교향곡 10번을 미완으로 남긴 채 세상을 떴다. 서울시향은 번호가 붙은 10곡을 내년까지 모두 완주할 예정. 지난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선보인 2번 ‘부활’은 그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일단, 국내의 말러 애호가들이 이 연주를 지켜보기 위해 총출동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입장권은 두 달 전에 일찌감치 동났고 객석은 여느 연주회에서 보기 힘든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물론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선보이는 사.. 더보기
연극 '하얀 앵두'…따뜻한 유머, 공허한 뒷맛 연극평론가 김옥란은 극작가 배삼식을 일러 “유쾌한 소요유(逍遙遊)”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세상사의 악다구니와 무관하게, 느긋하고 자유스럽게 노닌다는 뜻일 테다. 김옥란은 이에 대해 “극적인 클라이맥스도, 꽉 짜인 플롯의 인과관계도 없다. 대신 깊이와 여백이 있다”고 부연한다. 그것은 이 극작가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작가적 관점과 태도에 대한 설명으로 보인다.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중인 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입각 내정자들의 청문회를 앞두고 세상이 온통 뒤숭숭한 와중에도, 배삼식의 연극은 여전히 따뜻하고 느긋한 유머를 선사한다. 등장인물은 모두 8명. 늙은 진돗개 ‘원백이’까지 셈한다면 9명의 캐릭터가 연극 속에서 저마다 역할을 선보이는데, 어느 누구도 무언가에 경도되거나 극단적인 색깔을 .. 더보기
연극 '가족오락관'…부조리한 현실, 재기발랄한 블랙코미디 극작가 이오진의 이 지난 19일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이제 갓 대학(한예종 연극원)을 졸업한 새내기 작가. 한데 기대해볼 만한 신예의 등장이다. 참신한 상상력, 재기발랄한 스토리 전개와 경쾌한 캐릭터가 무엇보다 눈에 띈다. 아울러 세상의 일그러진 구조에 대한 작가적 안목도 느껴진다. 놀이로서의 연극과 사회적 반영으로서의 연극. 이 신예는 그중에서도 재기발랄한 놀이 쪽에 좀더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개인과 가족의 문제를 사회적 앵글로 들여다보면서, 우리 시대에 연극이 어떤 자리를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않았다. 가족은 무엇인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정답으로서의 ‘가족’이 존재해왔던 게 사실이다. 책임감 강한 아버지와 예쁘고 상냥한 엄마는 바로 그 가족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