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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존재의 가려움

편히 가세요.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1989년, 마포 언덕배기의 작은 아파트. 그때부터 셈하니 어느새 27년이다. 스물아홉 살 청년은 어느새 50대 중반이 됐고, 선생은 향년 75세로 영영 떠나셨다. 새삼 돌이켜보자니, 불편만 끼쳐드리고 은혜만 입었다. 노상 받기만 했을 뿐 해드린 게 없으니 그저 죄송하고 또 죄송할 뿐이. 함께 나눴던 기억들이 자꾸 떠올라 마음은 상처입은 듯 아리고 눈앞은 계속 침침해 사물이 어릿어릿하다. 십수일째 곡기 끊으신 채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렇게 영면을 준비하셨을 시간에 찾아뵙고 손 한번 마주잡지 못했으니, 이 또한 두고두고 죄스러움으로 남고 말았다. 스물일곱 해 동 주신 은혜와 마음의 빚, 함께 나눈 모든 추억들, 가슴 깊이 꾹꾹 눌러 묻는다.

 

2016년 1월 18일, 은사 신영복선생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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