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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존재의 가려움

리영희 선생 타계... 슬프다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셨다. 오늘 새벽 0시 40분 눈을 감으셨다. 29년생이시다. 지난달 15일 세상 떠난 울 아버지와 동갑이시다. 리선생은 평북 운산, 울 아버지는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디아스포라였다. 이래저래 켜켜이 마음이 아프다. 난 선생을 2004년 1월 인터뷰했었다. 며칠 전 전화를 미리 드렸더니 "난 지금 손도 벌벌 떨고 말도 잘 못해"하시며 "오지마, 오지마" 만류하셨다. "그래도 가겠습니다"라며 끝내 졸라서, 마지못해 승락하신 인터뷰였다. "경향신문이 나한테 몇년째 신문을 공짜로 넣어주고 있으니, 그 답례로 생각하라"며 어렵게 인터뷰를 승락하셨다.
 
그때도 선생의 육신은 이미 고통 자체였다. 2000년 중풍을 맞으셨으니, 성치 않은 몸으로 10년을 버티신 셈이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와 동행했던 당시의 인터뷰. 지금 다시 들여다보니 공연히 가슴이 뻐근하고 눈시울이 뜨겁다기자정신의 사표(師表), 리영희 선생. 부디 편안히 영면하소서. 



원로인터뷰] 리영희 “南이 北보다 더 변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