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이 기사, 2013년 7월 강원도 평창, 2016년 3월 서울 광화문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지금 내게 필요한 것, 마음을 나누는 음악”
|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입력 : 2013.07.28 21:50:00
김수연(26·사진)은 아프다. 지난 26일 저녁 강원 평창의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졸탄 코다이의 ‘세레나데 op.12’를 연주하고 나서부터 눈에 띄게 컨디션이 나빠졌다. 친구인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열심히 어깨를 주물렀다. 하지만 ‘우정 어린 안마’도 별 약효가 없었다. 자칫하면 인터뷰마저 포기해야 할 상황. 겨우겨우 몸을 추스르고 약속 장소에 나타난 그의 얼굴이 핼쑥하다.
27일 오전, 대관령국제음악제가 한창 펼쳐지고 있는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을 만났다. 지난 봄부터 계속해 한국과 독일, 스위스 등지를 오가는 빡빡한 일정, 게다가 두 개의 음반 녹음도 마무리한 상태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로망스’를 녹음 완료했고, 소프라노 조수미의 ‘바흐 칸타타 아리아’에서도 바이올린 연주자로 참여해 녹음을 마쳤다. 두 음반은 모두 올해 안에 출시될 예정이다. 김수연은 그렇게 한창 물오른 연주자의 일정을 차곡차곡 소화하고 있었다. 이번에 참여한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도 한 차례의 중요한 연주회를 더 남긴 상태. 음악제의 대미인 8월4일 폐막 연주회 무대에 오른다. 연주곡은 에네스쿠의 ‘현악8중주 C장조’. 김수연은 음악제의 마지막 방점을 찍는 8명의 현악기 연주자들 속에서 제1바이올린을 맡는다.
“이번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아빠가 처음으로 저한테 조언을 하셨어요. 음악의 본질은 서로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는 점, 그것을 잊지 말라고 하셨죠. 지금까지 한번도 저한테 음악과 관련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신 적이 없었는데…. 왠지 가슴이 뭉클했어요. 비행기 안에서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했죠. 저는 지금 연주자로서 커리어를 한창 쌓는 중이잖아요. 자기 욕심에만 빠질 수가 있어요. 저를 돋보이게 하려는 연주에 함몰될 수 있다는 얘기죠. 곰곰 생각해보니 아빠의 조언은 지금 저한테 가장 필요한 약이었어요.”
김수연은 독일의 작은 도시 뮌스터 태생이다. 신학을 공부하던 유학생 부부 사이에서 맏딸로 태어났다. 3년 터울로 두 여동생이 있는데, 막내 여동생이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는 불행이 찾아왔다. 네 차례에 걸친 수술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장애를 지닌 채 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독일 공교육 시스템이 다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에 천재성을 보였던 김수연을 연주자로 키워냈다.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어를 먼저 배웠고, 독일 국적을 취득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음에도 한국 국적을 선택했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독일 공공단체의 음악가 지원 프로그램 덕택에 지금까지 생계와 음악을 이어왔다.
4년 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스물두 살의 김수연은 “나의 화두는 진심이 담긴 연주”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하다고 했다. “정직성을 잃으면 음악가로서의 생명이 끝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제 거기에 아버지의 조언이 더해졌다. “음악은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는 ‘과묵한 아버지’의 짧은 한마디를 언제나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어찌 보면 김수연의 풍부한 독서 경험도 그 과묵한 아버지 덕분일 터.
“가장 최근에 읽은 한국 책이요? 음…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의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었어요. 아버지 책장에 꽂혀 있던, 표지가 누렇게 바랜 책이었어요. 불교의 연기설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죠. 마음에 드는 문장을 휴대폰으로 찍어서 예은이한테 보내주기도 했어요.”
그가 말한 ‘예은이’는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이다. 김수연은 한 살 아래인 최예은과 동문(同門)이다. 독일에서 주로 활동해온 러시아계 바이올리니스트 안나 추마첸코, 21세기 바이올린계를 주도하는 젊은 연주자들을 여럿 키워낸 그의 제자들이다. 김수연은 폐막 연주회에서 연주할 에네스쿠의 현악8중주에 대해 “청중이 많이 들어본 곡은 아니겠지만, 아주 웅장하고 익사이팅하다”고 설명했다. “책 읽기도 좋지만 바쁜 일정 속에서 머리 식힐 때는 예능이 최고”라면서 “<꽃보다 할배> 정말 재밌어요”라며 깔깔 웃기도 했다. 두통이 많이 가신 듯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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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음악은 연주자와 청중 함께 치유…나를 내려놓아야”
기사입력 2016-03-23 21:23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의 행보가 눈부시다. 20대의 마지막 해를 맞은 그는 최근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 음반을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내놨다. 외향적 힘을 최대한 절제한, 섬세하고 투명한 연주다. 그러면서도 속이 꽉 찬 소리를 들려준다. ‘나이를 뛰어넘는 음악성’이라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그렇게 베토벤으로 올해의 문을 연 그는 23일 성시연이 지휘하는 경기필하모닉과 멘델스존의 협주곡을 연주했다. 25일에는 JCC아트홀에서 모차르트와 프랑크, 야나체크의 소나타를 연주한다. 이후 연주 일정도 빼곡하다.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연주한 직후, 프랑스 파리와 스위스 제네바에서 실내악 무대가 예정돼 있다. 이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5월26일 대전시향과 브람스 협주곡을 연주하고, 5월29일에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으로 올봄의 마침표를 찍는다.
강행군처럼 보인다. 특히 5월29일 LG아트센터에서 연주하는 바흐의 무반주 전곡은 연주시간만 2시간10분에 이르는 대곡이다. 중간휴식을 포함해 3시간20분의 연주회로 예정돼 있다. 길고도 난해한 이 곡은 대개 두 차례의 연주회로 청중과 만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김수연은 단 1회로 완주한다. 청중의 입장에서 보자면 김수연의 테크닉과 음악성, 아울러 뚝심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독일에서 나고 자란, 하지만 독일어보다 한국말을 먼저 배웠던 그를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바흐 음악의 요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한참 말을 골랐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나를 내려놓아야 하는 음악”이라는 답변이 흘러나왔다. 이런 말도 했다. “하나의 완전체와 같은 음악이죠. 연주가 쉽지는 않지만 저를 위로해주는 음악이기도 합니다. 2시간10분 동안, 그 속에 깊숙이 들어갔다가 나오면 어떤 환희 같은 걸 느끼죠. 하지만 그 환희는 ‘내가 해냈다’는 들뜬 기분과 다릅니다.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고 내면이 충만해지는 느낌. 바흐의 음악은 그렇게 연주자와 듣는 이를 함께 치유하죠. 그래서 바흐를 연주할 때는 연주자의 욕심이 앞서면 안 되죠.”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거대한 산’으로 비유되는 무반주 전곡에 김수연이 처음 도전한 때는 2009년이었다. 스물두 살. 음악계의 통념으로 보자면 바흐를 연주하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여섯 살 무렵부터 바흐의 무반주 전곡을 들었어요. 아빠가 갖고 계시던 음반 중에 헨릭 셰링의 연주가 있었거든요. 엄격하고 권위있는 연주죠. 저는 아주 오래도록 바흐의 음악은 함부로 연주하면 안 되는, 성숙한 연주자들만 할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했어요. 10대 때는 바흐의 음악에 거리감을 느꼈죠. 그러다가 2008년쯤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엘리자베스 월피쉬 선생(64)의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하게 됐는데, 거기에서 배운 바흐는 완전히 달랐어요. 인간적이고 자유로운 음악이었죠. 바흐와의 거리감이 그렇게 좁혀졌어요. 그 뒤부터는 저만의 언어로 바흐를 연주하는 것이 언제나 숙제였어요.”
김수연은 2009년부터 거의 2년에 걸쳐 바흐의 무반주 전곡을 녹음, 2011년에 드디어 음반(DG)을 내놨다. 그의 속 깊은 음악성을 보여준 이 음반에는 평단과 애호가들의 호평이 쏟아졌다. “독일 쾰른 근처의 혼라트(Honrath) 교회에서 전곡을 녹음했죠. 아주 작은 교회였는데 소리의 울림이 상당히 좋았어요. 가끔 비행기가 지나갈 때마다 연주를 멈추곤 했죠. 한데 저는 그 2년 동안 바흐에 집중하면서 큰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가끔 그 음반을 들어보곤 해요. 그런데 ‘아, 여기는 완전히 다르게 표현하고 싶다’는 부분이 가끔 있어요. 그동안 세월이 또 흘렀잖아요.”
김수연은 그동안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내놓은 4종의 음반, 모차르트와 바흐,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함께 연주한 슈베르트, 또 이번에 내놓은 베토벤 협주곡에 대해 “내 20대를 온전히 담아낸 기록”이라고 했다. 음반 발매 이후 5년 만에 고국에서 처음 갖는 바흐의 무반주 전곡 연주회에 대해서는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익숙한 곡이라도 새로 준비해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완벽주의자인 것은 아니에요. 예술에 완벽이란 존재할 수 없죠. 하지만 적어도 연주자의 자세는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음반으로 들으셨던 것과는 또 다른 바흐가 될 겁니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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