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4-12 18:19 최종수정 2010-04-12 23:47
‘이기동 체육관’은 현실에서 ‘물먹은’ 이들의 집합소다. 관장 이기동은 한때 ‘미친 탱크’로 불리며 전성기를 누렸던 유명 복서였지만, 이제는 수명이 다된 고물 탱크에 불과하다. 노인이 된 그는 펀치 드렁크가 남긴 심각한 두통을 앓는다. 게다가 한쪽 팔마저 벌벌 떠는 장애인이다. 그의 제자인 마코치도 “매일 술병을 끼고 사는 삼류인생”이긴 매한가지다. 만년 대리인 봉수는 부장의 전화 한 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소심남이고, 봉제공장 미싱사 애숙은 뚱뚱한 몸매에 열등감을 지닌 노처녀다. 이 밖의 인물들도 마찬가지. 패자를 기억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사회에서 쫓겨난 이들이 하나둘씩 체육관으로 모여든다.
무대는 허름한 체육관 풍경을 그대로 옮겨놨다. 샌드백과 펀치볼이 눈에 띄고, 무대 오른쪽은 링이다. 그 링의 중앙에 낡은 태극기가 걸렸다. 여기저기 사무집기들, 권투용품들이 간혹 눈에 띈다. 전반적으로 어둡고 눅눅하다.
가난한 변두리 체육관을 질감있게 묘사해놓은 무대. 어디선가 시큼한 땀냄새가 풍겨올 것만 같다. 뜻밖의 물건도 있다. 무대 왼쪽에 자리한 낡은 피아노 한 대와 바늘이 멈춘 채 걸려 있는 벽시계. 마치 그 시계처럼,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체육관에 관장과 이름이 같은 ‘청년 이기동’이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시간강사. 마치 작가의 분신처럼 보이는 그는 ‘관장 이기동’의 상처를 하나씩 들춰내고 위로하면서,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관찰자의 역할을 맡는다.
‘이기동 체육관’에서 가장 ‘꽂히는’ 대사는 이것이다. “똑같은 체중에 똑같이 옷 벗고, 빤쓰만 입고 한판 뜨는 거야. 우린 쓰러진 놈은 때리지 않아. 짓밟지 않는다고!” 아무도 없는 체육관에서 관장 이기동이 미친 듯 샌드백을 때리며 쏟아놓는 독백이다. 그는 죽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 같은 놈들이 밖에 나가 할 게 뭐가 있냐? 피아노? 공부? 그런 건 있는 놈들이나 하는 거라고”라고 절규한다. 아들은 피아노를 좋아했지만 아버지에게 등 떼밀려 권투를 하다가 죽었다.
변두리 인생들은 모두 8명. 각자 간직한 사연이 모두 다르고 성격도 제각각이다. ‘이기동 체육관’은 그 8인의 캐릭터가 생동감 있게 펼쳐지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한 연극이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씩 권투도장에서 혹독한 트레이닝을 치러낸 배우들의 노고를 치하하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무대는 그들이 몸으로 쏟아내는 에너지로 출렁거린다. 특히 연극 후반부, 암전됐던 무대에 빗살 같은 조명이 꽂히면서 전원이 줄넘기를 하는 장면은 환상적이고 역동적이다. 작가 겸 연출자 손효원은 “이제까지 인물들이 갖고 있던 애환이 새로운 힘으로 변화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연극은 ‘희망’이라는 결말에 너무 쉽고 빠르게 다가선 것 아닐까? 개인의 좌절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이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 당대의 예술은 당연히 이런 근본적 질문을 품어야 할 것. 하지만 아쉽게도 ‘이기동 체육관’은 감상적 프레임을 뛰어넘지 못함으로써 ‘통속’의 한계에 머물고 말았다. 누추한 지하 소극장에 펼쳐 놓은 질감 있는 무대, 생동감 있는 연출, 진정성 넘치는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을 다만 호평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다음달 9일까지, 소극장 ‘모시는사람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무대는 허름한 체육관 풍경을 그대로 옮겨놨다. 샌드백과 펀치볼이 눈에 띄고, 무대 오른쪽은 링이다. 그 링의 중앙에 낡은 태극기가 걸렸다. 여기저기 사무집기들, 권투용품들이 간혹 눈에 띈다. 전반적으로 어둡고 눅눅하다.
가난한 변두리 체육관을 질감있게 묘사해놓은 무대. 어디선가 시큼한 땀냄새가 풍겨올 것만 같다. 뜻밖의 물건도 있다. 무대 왼쪽에 자리한 낡은 피아노 한 대와 바늘이 멈춘 채 걸려 있는 벽시계. 마치 그 시계처럼,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체육관에 관장과 이름이 같은 ‘청년 이기동’이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시간강사. 마치 작가의 분신처럼 보이는 그는 ‘관장 이기동’의 상처를 하나씩 들춰내고 위로하면서,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관찰자의 역할을 맡는다.
‘이기동 체육관’에서 가장 ‘꽂히는’ 대사는 이것이다. “똑같은 체중에 똑같이 옷 벗고, 빤쓰만 입고 한판 뜨는 거야. 우린 쓰러진 놈은 때리지 않아. 짓밟지 않는다고!” 아무도 없는 체육관에서 관장 이기동이 미친 듯 샌드백을 때리며 쏟아놓는 독백이다. 그는 죽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 같은 놈들이 밖에 나가 할 게 뭐가 있냐? 피아노? 공부? 그런 건 있는 놈들이나 하는 거라고”라고 절규한다. 아들은 피아노를 좋아했지만 아버지에게 등 떼밀려 권투를 하다가 죽었다.
변두리 인생들은 모두 8명. 각자 간직한 사연이 모두 다르고 성격도 제각각이다. ‘이기동 체육관’은 그 8인의 캐릭터가 생동감 있게 펼쳐지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한 연극이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씩 권투도장에서 혹독한 트레이닝을 치러낸 배우들의 노고를 치하하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무대는 그들이 몸으로 쏟아내는 에너지로 출렁거린다. 특히 연극 후반부, 암전됐던 무대에 빗살 같은 조명이 꽂히면서 전원이 줄넘기를 하는 장면은 환상적이고 역동적이다. 작가 겸 연출자 손효원은 “이제까지 인물들이 갖고 있던 애환이 새로운 힘으로 변화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연극은 ‘희망’이라는 결말에 너무 쉽고 빠르게 다가선 것 아닐까? 개인의 좌절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이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 당대의 예술은 당연히 이런 근본적 질문을 품어야 할 것. 하지만 아쉽게도 ‘이기동 체육관’은 감상적 프레임을 뛰어넘지 못함으로써 ‘통속’의 한계에 머물고 말았다. 누추한 지하 소극장에 펼쳐 놓은 질감 있는 무대, 생동감 있는 연출, 진정성 넘치는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을 다만 호평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다음달 9일까지, 소극장 ‘모시는사람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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