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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에서

70년대 잠실섬의 아픔…서울시극단 ‘순우삼촌’

기사입력 2010-04-27 18:05 | 최종수정 2010-04-28 00:09



ㆍ‘삶의 터전 빼앗긴 일가’ 자연에 빗댄 시적 표현

가난했던 과거의 기억마저도 키치적으로 소비되는 세상이다. 최근의 연극판에서 그런 조짐을 심심찮게 본다. 무대 위로 올라온 1970 ~ 80년대의 누추한 현실은 눈 오는 날의 풍경화처럼 아름답고 달콤하게 그려진다. 게다가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희망의 합창’으로 극을 마무리하기 일쑤다. 철거 용역에게 쫓기는 포장마차 일가족이 하이 파이브를 하면서 파이팅을 외치는 웃지 못할 촌극이라니!

하지만 서울시극단이 공연 중인 ‘순우삼촌’은 그런 면에서 다행스럽다. ‘과거의 기억’을 경망하게 덧칠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진정함을 갖췄기 때문이다. 때는 1973년 여름에서 가을까지. 한강의 본류인 송파강을 메우는 매립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시절이다. 본류인 송파강과 지류 신천 사이에 존재했던 ‘잠실섬’은 아직 섬으로 남아 있다. 순우 일가는 대대로 그곳에서 농사지으며 살았다. 여름에는 오이와 참외를, 가을에는 땅콩과 배추를 거뒀다. 노총각 순우는 그렇게 소처럼 일하면서 미국에 유학 중인 매형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댄다. 한데 어느날 매형은 죽은 아내를 대신해 새 여자를 데리고 잠실섬으로 돌아온다. 검은 선글라스에 짧은 치마. 잠실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방인이다.

이 연극은 무분별한 개발에 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빼앗기는 순우 일가의 삶에 초점을 맞추면서, 매형의 세련된 여자 임다정이 일으키는 파문을 또 하나의 갈등으로 추가한다. 순박한 농사꾼 순우마저도 그녀의 자태에 때때로 넋을 잃는다. 하지만 ‘루시’라는 미국식 이름을 가진 그녀는 순우의 친구인 석준과 묘한 감정을 나눈다.

막이 오르면 순우네 집 앞마당. 무대는 토속적이면서도 시적이다. 가장 먼저 등장한 세 명의 몸짓 배우들. 그들이 나무와 바람, 강물과 날아가는 새를 의인화해 마임으로 표현한다. 한데 나무가 뭔가 고민에 빠졌다. 잠을 자야 할 시간인데도 통 잠들지 못한다. 나무는 땅 밑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이 자꾸 불길하다. 바람이 슬쩍 겨드랑이를 간질이며 장난을 쳐도 나무는 그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젓는다. 이 연극은 그렇게, 앞으로 다가올 순우 일가의 슬픔을 자연을 의인화한 한 편의 시로 암시하면서 시작한다.

‘순우삼촌’은 ‘서울+기억’이라는 테마로 서울시극단이 최근 공연했던 ‘7인의 기억’보다 한결 시적이고 함축적이다. 그 시적인 뉘앙스는 1막부터 4막까지를 관통하면서, 연극의 행간에 운치있는 여백을 만든다. 그래서 관객은 포클레인에 쫓겨나는 인간적 삶의 원형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알 수 없는 슬픔과 그리움에 빠져든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의 기억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그리운 공동체’에 대한 기억일 터이다.

잠실섬에 잠시 머물렀던 존재들이 모두 떠나가고 덩그러니 남은 순우와 지숙. 30대의 젊은 작가 김은성은 이 마지막 장면에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기러기 이야기’를 삽입했다. “지숙아, 기러기 노래 들어본 적 있냐?” “응? 우는 소리?” “아니, 날개 젓는 소리. 나한테는 그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다”. 이어서 삼촌과 조카가 이중창으로 노래하는, 정든 땅을 떠나기 싫은 기러기들의 날개 젓는 소리. 푸드드득, 푸드드득…. 그것이 바로 사회적 메시지를 시적 메타포로 갈무리한 이 연극의 마지막 방점이다. 절묘하다. 다만, 체호프의 걸작 「바냐 아저씨」를 저본으로 삼아 재창작한 이 연극에서, 모두가 떠난 후의 적막감을 좀더 강하게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야 지숙이 허공을 향해 내지르는 마지막 함성의 울림이 더 절절했을 텐데. 윤상화(순우), 연보라(지숙), 이정은(엄마), 정수자(이모)의 열연도 돋보였다. 연출은 전인철. 5월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