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에서
성시연이 보여준 '지휘자의 힘'
문학수
2012. 8. 2. 19:47
[객석에서]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지난달 26일 막 올린 올해의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축제 기간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현재까지 펼쳐진 여러 연주회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주인공은 단연코 지휘자 성시연(36·서울시향 부지휘자·사진)이다. 그가 지난달 27일 GMMFS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연주한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는 한마디로 ‘지휘자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호연(好演)이었다.
물론 사운드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결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주회에 대한 평가는 결과뿐 아니라 과정에도 맞춰져야 한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까지의 인과관계, 아울러 음악가의 내면에 담긴 진정성 같은 요소들이야말로 요즘 같은 상업주의의 득세 속에서 한층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평가의 잣대다. 그런 측면에서 그날 무대에 오른 GMMFS 오케스트라가 이번 페스티벌을 위해 급하게 만들어진 악단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물론 오케스트라석에는 실력이 검증된 중견들도 몇몇 있었다. 악장석에는 바이올리니스트 배익환(미국 인디애나주립대 교수)이 앉았고,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비올리스트 장중진, 첼리스트 박상민(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단원들은 학생들이었다. 게다가 처음 만난 그들이 ‘합’을 맞춰본 시간은 고작 사흘에 불과했다.
제대로 음악이 나올까라는 의구심은 천지의 혼돈을 묘사한 1부의 서곡에서 이미 날아갔다. 느리고 장엄한 에너지가 1300석의 뮤직텐트를 가득 채우는 순간, 청중은 기대 이상의 사운드에 충분히 마음을 빼앗길 수 있었다. 물론 그 매혹의 중심에 지휘자 성시연이 서 있었다. 이날 그의 지휘봉은 결연했다. 2~3년 전만 해도 그에게서 지휘폼이 예쁘게 이어지도록 신경을 쓰는 모습을 간간이 볼 수 있었지만, 이날 포디엄에 선 그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머리를 질끈 동여맨 채 음악의 공간 속으로 자신을 완전히 투신했다. 그는 그렇게 단원들의 집중력을 이끌어내면서 오케스트라의 빈 부분을 스스로의 에너지로 가득 채웠다.
곡의 전반부에서 합창단(서울모테트합창단)이 보여준 집중력도 칭찬받을 만하다. 중간휴식시간 이후, 합창단의 에너지가 다소 흔들리자 이번에는 솔리스트들이 나서서 음악의 공간을 채웠다. 특히 ‘우리엘’을 맡은 테너 김우경과 ‘가브리엘’로 분한 소프라노 임선혜의 화음은 이날 연주의 백미였다. 김우경의 소리는 섬세하게 직진했고, 임선혜는 특유의 꾀꼬리 같은 발성으로 청중의 마음을 빨아들였다. 다만 ‘라파엘’과 ‘아담’을 맡은 바리톤 니콜라이 보르체프는 컨디션 난조를 드러내면서 저음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1시간50분짜리 대곡이 마침내 끝났을 때, 지휘자 성시연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연주 내내 혼신을 토해낸 그는 비로소 웃음 띤 얼굴로 관객을 바라봤지만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객석의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온 환호와 기립박수가 이날 연주회의 마무리였다. 대관령국제음악제는 11일까지 계속된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