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조지 거쉬인,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 조지 거쉬인,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 우디 앨런이 1979년에 만든 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앨런은 감독뿐 아니라 영화 속의 주인공 아이작 데이비스 역으로 직접 출연까지 하지요. 직업은 방송 코미디 작가인데 낭만적이고 수다스러우면서도 어딘지 소심한 캐릭터입니다. 거대하고 휘황한 도시에서 뭔가 애정 결핍 같은 것을 지니고 살아가는, 뿔테안경을 쓴 약간 위선적인 지식인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영화는 바로 그 남자, 아이작 데이비스의 독백으로 막을 열지요. 먼저 카메라가 뉴욕의 거대한 빌딩 숲과 사람들의 일상적 풍경을 하나하나 더듬습니다. 마천루의 야경과 뒷골목의 주차장, 건설 현장과 노동자들, 시위하는 군중, 학교 수업이 끝나고 왁자하게 몰려나오는 아이들, 거리를 지나가는 예쁜 여자들.. 더보기 로드리고, 아랑훼즈 협주곡 로드리고, 아랑훼즈 협주곡 후아킨 로드리고(1901~1999)의 음악을 들을 때는 눈을 감아보기 바랍니다. 음악이 더 깊숙이 들어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제 개인의 경험적인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제 경우에는 그렇다는 뜻입니다. 주변의 사물을 시각적으로 인식하면서 음악을 들을 때와, 눈을 감고 음악소리에만 집중했을 때 생겨나는 감각적 경험에는 차이가 나는 경우들이 왕왕 있습니다. ‘소리’라는 객관적 대상에는 변화가 없어도 음악을 듣는 주체의 감각적 필터링에 일정한 변화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적어도 음악의 절반쯤은 경험으로 이뤄진다고 믿습니다. 한 곡의 음악을 들을 당시의 마음 상태, 주변의 상황과 여건 등에 따라서, 심지어는 조명 상태에 따라서도, 또 혼자 듣는가 누.. 더보기 편히 가세요.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1989년, 마포 언덕배기의 작은 아파트. 그때부터 셈하니 어느새 27년이다. 스물아홉 살 청년은 어느새 50대 중반이 됐고, 선생은 향년 75세로 영영 떠나셨다. 새삼 돌이켜보자니, 불편만 끼쳐드리고 은혜만 입었다. 노상 받기만 했을 뿐 해드린 게 없으니 그저 죄송하고 또 죄송할 뿐이다. 함께 나눴던 기억들이 자꾸 떠올라 마음은 상처입은 듯 아리고 눈앞은 계속 침침해 사물이 어릿어릿하다. 십수일째 곡기 끊으신 채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렇게 영면을 준비하셨을 시간에 찾아뵙고 손 한번 마주잡지 못했으니, 이 또한 두고두고 죄스러움으로 남고 말았다. 스물일곱 해 동안 주신 은혜와 마음의 빚, 함께 나눈 모든 추억들, 가슴 깊이 꾹꾹 눌러 묻는다. 2016년 1월 18일, 은사 .. 더보기 영원한 배우 백성희 선생, 천상의 무대로 백성희 선생의 영결식에 다녀왔다. 2016년 1월 12일 오전,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몇몇 장면들이 있다. 손숙 선생은 울음을 참아가며 이날 영결식 사회를 봤다. 그 모습이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또 손진책 선생은 조사를 읽다가 몇번이나 멈췄다. 간신히 울음을 삼키고는 다시 읽어내려갔다. 그만큼 그에게, 백성희 선생은 특별한 존재였다. 특히 그는 말년의 백선생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사람이다. 노선과 진영에 상관없이 '의리'를 지키는 그의 모습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일흔을 훌쩍 넘긴 그분들이 그렇게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보면서, 오십대 중반의 나는 그들이 함께 보냈던 시절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형님'이라고 부르는 장사익 선생이 고인.. 더보기 파야, 7개의 스페인 민요 파야, 7개의 스페인 민요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를 아시나요? 스페인의 시인입니다. 단지 시만 썼던 것은 아니지만 일단 ‘시인’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시편들 중에서 아주 유명한 한 작품을 잠시 떠올려 보겠습니다. 이런 시입니다. ‘기타의 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으리라/… /아, 기타여! /다섯 개의 칼에 의해/ 상처 입은 심장이여.’ 『칸테 혼도 시집』(1921)에 수록된 ‘기타’라는 작품이지요. 참으로 절창(絶唱)입니다. 몇 번 중얼거리다 보면 저절로 외워지는, 매우 선율적인 시이기도 합니다. 전문을 다 읽어보고 싶은 분들은 민용태 시인이 번역한 (2008, 을유문화사)을 한 권 구해서 읽어보기 바랍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만원이면 살 수 있습니다. 스무 살 무렵.. 더보기 파야, 스페인 정원의 밤 파야, 스페인 정원의 밤(Noches en los jardines de Espaua) 클래식 장르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아끼는 음반들이 몇 장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플라멩코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인 마니타스 드 플라타(Manitas de Plata)의 음반입니다. 2014년에 93세를 일기로 타계한 플라멩코 음악의 거목이지요. 1921년에 남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 지역인 세테(Sete)의 집시 거주촌에서 태어났는데, 그야말로 기타 한 대와 애절한 목소리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낭만 가객이었습니다. 집시 혈통을 오롯이 간직한 그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로부터 플라멩코 기타를 배웠지요. 카페를 전전하면서 노래하다가 1960년대부터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일설에는 자식이 스물 .. 더보기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a단조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a단조 오늘은 다시 쇼스타코비치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에서 쇼스타코비치에 대해 마지막으로 언급하는 글이 될 성싶습니다. 그에게 불어 닥쳤던 두 번의 정치적 위기 상황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한 바 있습니다. 를 설명하는 글에서 1936년의 첫번째 위기를, 또 오라토리오 를 거론하는 글에서는 1948년에 불어 닥쳤던 살벌한 음악가 검열, 즉 안드레이 즈다노프가 주도한 ‘반동적 개인주의자들’에 비판으로 인해 두번째 벼랑으로 몰렸다는 사실을 이미 설명했습니다. 사실 이 무렵의 쇼스타코비치는 누가 보더라도 소비에트를 대표하는 주요 작곡가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작용, 말하자면 ‘시범 케이스’가 작용했으리라고 충분히 유추할 수 있겠지요. 즈다노프가 쇼스타코비치를 비롯한 .. 더보기 야나체크, 현악4중주 1번 ‘크로이처’ 야나체크, 현악4중주 1번 ‘크로이처’ 지난 회에 이어 체코의 음악가 레오시 야나체크의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전해지는 기록들을 살펴보면, 그는 성질이 굉장히 불같았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익히 보아온 야나체크의 사진에서도 그런 성품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진은 1920년대에 촬영된, 은발의 곱슬머리에 콧수염마저 하얀, 거의 말년의 모습입니다. 얼핏 봐도 성질 급한 노인네가 분명합니다. 물론 야나체크는 카메라를 다소 의식한 듯, 적당히 살이 붙은 얼굴에 살짝 미소마저 머금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볼수록 굉장히 자의식이 강하고 성격이 급한 예술가의 인상이 드러납니다. 청년 시절의 모습도 그랬습니다. 독일 라이프치히음악원에 유학했던 1879년의 사진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때는.. 더보기 야나체크,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 야나체크, 이라는 영화를 봤는지요? 미국의 감독 필립 카우프만이 1988년에 만든 영화입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줄리엣 비노쉬가 극중 배역인 ‘토마스’와 ‘테레사’로 나왔었지요. 아마도 이 두 배우를 좋아하는 분들이 꽤 많을 겁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는 토마스와 테레사뿐 아니라 ‘사비나’와 ‘프란츠’도 중요한 등장인물입니다. 레나 올린과 데렉 드 린트라는 배우가 나왔지요. 스웨덴 태생의 여배우 올린은 이외에도 상당히 많은 영화로 낯이 익었는데, 데렉 드 린트는 사실 저도 좀 생소한 배우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은 이 네 명의 캐릭터를 동시에 바라봤을 때 ‘무거움’과 ‘가벼움’의 대위법이라는 작가적 의도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체제 속에서 겪어야 하는 지식인의 무력감, 먼지처럼 부유하는 존재.. 더보기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 프랑스의 작곡가 라벨(1875~1937)은 아주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합니다. 마흔 살 때였습니다. 1914년에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듬해에 군에 입대했던 것이지요. 사실 그는 스무 살 때도 입영 대상자가 됐던 적이 있었지만, 작은 키와 건강상의 문제로 면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흔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또 다시 입영을 열망합니다. 라벨이 특별히 군대를 좋아해서라기보다는 그것이 1차세계대전 당시의 일반적 분위기였다고 해야겠습니다. 입대를 피하기는 커녕 어떻게든 군에 가서 총을 들려고 했던 것이지요. 당시 대다수의 남자들은 의당 그래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재력이나 권력을 등에 엎고 군대를 빠져보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행동을 매우 부끄러운 짓으로, 다시 말해 .. 더보기 이전 1 2 3 4 5 ··· 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