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객석에서

오페라 ‘유디트의 승리’…화려한 외피, 부실한 내용

아무리 봐도 좋은 평점을 주기 힘든 공연이었다. 한데 이 공연에 쏟아진 극단적인 몇몇 호평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물론 짐작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냥 웃을 수밖에. 


기사입력 2010-04-06 18:39 | 최종수정 2010-04-06 23:05

그동안 뮤지컬 극장처럼 인식돼온 충무아트홀에서 처음으로 오페라를 선보인다는 구상은 참신했다. 주최 측에서 내세운 ‘작지만 아름다운 오페라’. 규모가 크고 화려한 오페라가 봇물을 이룬 한국에서, 그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캐치 프레이즈였다. 게다가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인 비발디의 오라토리오를 오페라로 개작해 한국에서 초연한다는 사실도 애호가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또 하나의 빼놓을 수 없는 기대 요소. 연출 총감독이 올해 여든살을 맞은 이탈리아의 노장 루이지 피치라니! 이만하면 당연히 ‘기대 만땅’의 공연이었다.

지난 금요일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막 올린 오페라 <유디트의 승리>.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렇다. 신선한 시도에 비해 내용은 부족했다. 웬만큼 오페라 공력을 갖춘 애호가라면 납득하기 어려운 연출력과 가창력이 곳곳에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피치의 제자인 마시모 가스파론이 펼쳐놓은 무대는 장식적이었다. 전후좌우 사방에 네 개의 기둥이 박혔고 무대 중앙 위쪽에 앗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의 황금색 의자가 놓였다. 화려하고 강한 원색은 일단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무대의 ‘깊이’는 결여돼 있었다.

<유디트의 승리>는 이스라엘 베툴리아에 살던 미모의 여인 유디트가 적진에 침투해 앗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른다는 이야기. 막이 오른 직후 홀로페르네스의 진영에서 펼쳐지는 합창과 무용에서부터 공연에 대한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한다. 다듬어지지 않은 채 거칠게 울려나오는 합창, 이해할 수 없는 어색한 몸짓들을 바라보면서 극의 초반부터 마음이 불편해진다.

주요 등장인물은 5명. 모두 여성이다. <유디트의 승리>는 여성이 남성 역할까지 소화하는 오페라다. 이 공연의 절대적 권한을 가진 연출 총감독 피치가 만일 적절한 캐스팅에 성공했다면, 관객들은 이날 공연장에서 5인5색의 불꽃 튀는 바로크 성악 대결을 지켜보며 짜릿한 기쁨을 맛볼 수 있었을 게다.

합격점을 받을 만한 가창력을 선보인 배역은 장군 홀로페르네스와 그의 하녀 바고아였다. 홀로페르네스 역을 맡은 아테네 출신의 메조 소프라노 메리 엘린 네시는 이날 공연에서 가장 안정감 있게 노래했다. 그는 그리스 태생답게 묘한 매력의 중저음을 선보이면서, 힘들이지 않은 부드러운 발성으로 멀리까지 뻗어가는 소리를 들려줬다. 하녀 바고아를 연기한 소프라노 지아친타 니코트라는 가장 테크니컬한 가창을 선보였다. 물론 그도 2막 초입에서 한때 급격히 흔들렸지만, 바로크 특유의 트릴과 멜리스마 선율을 비교적 빼어나게 구사하면서 관객들에게 음악 듣는 재미를 선사했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가창을 선보인 이는 유디트 역의 메조 소프라노 티치아나 카라로. 그의 노래는 높은 극적 비중에도 불구하고 건조하고 거칠었다. 깔끔하고 매끄럽게 이어져야 할 멜리스마 선율은 툭툭 분절되기 일쑤였다.

지난 50여년간 500여편의 오페라를 연출해온 피치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그만큼 아쉬움도 컸던 무대였다. 피치는 다음달에 로시니의 오페라 <세미라미데>로 다시 한국 관객과 만날 예정. <유디트의 승리>는 7일까지 이어진다.

<문학수 선임기자>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출시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