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말러에서 쇼스타코비치까지 20세기 음악의 행로
ㆍ더 클래식 셋
ㆍ문학수 지음 | 돌베개 | 382쪽 | 1만7000원
100여년 전 세기말 유럽은 대혼돈의 시기였다. 오랜 제국들이 해체 수순을 밟으며 유럽의 정치적 안정을 담보하던 세력 균형이 흔들리고, 공황을 맞은 자본주의는 한계에 도달한 듯 보였다. 합리적 이성에 의해 세계가 진보할 것이란 유럽인들의 믿음은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며 산산조각났고, 전쟁의 포연이 걷히자 세계는 또다시 냉전 속으로 돌입했다. <더 클래식 셋>은 혼돈의 시기였던 세기말부터 20세기 중반 사이에 등장한 서양 음악의 고전 33곡을 소개한다. 서양 고전음악 입문서인 <더 클래식> 시리즈(전3권)의 완결편이다.
세상이 흔들리자 음악에서도 옛것이 무너지고 새 문법이 출현했다. 첫 주자는 말러(1860~1911)다. 말러는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의 마침표이자 20세기 모더니즘 음악의 전망을 보여준 작곡가로 평가된다. 번호가 붙지 않은 <대지의 노래>를 포함해 열 개의 교향곡을 완성한 말러는 어린 시절 들었던 보헤미아의 세속적 선율을 교향곡 속으로 과감하게 끌어들였다. 느닷없이 분출하는 굉음과 달콤한 낭만적 선율이 뒤섞인 그의 교향곡들은 베토벤 이래 정석이 된 기승전결식 교향곡 구성을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그의 음악은 너무 빨리 온 탓에 당대인들에게는 저평가됐으나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전 세계 교향악단의 필수 레퍼토리가 됐다. 그의 음악이 현대인들의 정서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러의 교향곡들이 교향곡 장르의 새 문을 열어젖혔다면, 드뷔시(1862~1912)의 음악은 서양 고전음악을 독일계 작곡가들의 엄격한 조형미와 과포화된 음향으로부터 해방시켰다. 드뷔시의 관현악곡이나 피아노 독주곡들은 동시대 인상주의 화가들이 고정된 색채와 윤곽선을 거부한 것처럼 “어떤 순간의 느낌을 오선지에 옮겨놓았다”.
저자는 “순음악적 해설보다는 통합적이고 인문학적인 해설”을 지향한다. 라틴어 악상기호들이 난무하는 ‘순음악적 해설’은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정서적 경험과는 거리가 멀다. 저자는 하나의 곡을 작곡가의 생애에 투영해 살피고, 그의 생애 또한 동시대의 문화적·정치적 지형 안에서 조망한다. “인간은 역사와 관계 속에서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 인간에 의해 이뤄지는 고도의 미적 활동인 예술도 궁극적으로 삶의 일부 혹은 그 삶의 결정체”라고 믿는 인문주의자의 자세다. 예컨대 이질적인 것들의 기괴한 조합으로 보이는 말러의 교향곡들은 마초적인 아버지, 심약한 어머니, 늘 들려오던 주정과 매춘의 소음, 동생의 죽음 같은 작곡가의 유년기 상흔과 세기말 유럽의 불안정한 시대적 공기를 빼놓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음악도 그가 살았던 구 소련의 정치적 분위기를 알아야 그 속내에 비교적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다. 그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5번 교향곡 4악장은 얼핏 ‘승리의 팡파레’로 들린다. 그러나 숙청의 위기에 몰린 쇼스타코비치가 스탈린 정권의 요구에 맞춰주기 위해 교향곡 5번을 작곡했다는 사실을 알고나면, 마지막 금관악기군의 포효가 달리 들릴 것이다.
말러에서 쇼스타코비치에 이르는 작곡가 16명의 음악에 대한 해설은 그 자체로 지적인 만족감을 주지만, 중요한 것은 “실제로 음악을 듣는 것”이다. 저자는 각장 말미에 추천 음반을 세 장씩 소개한다. 구하기 쉽고 애호가들 사이에 보편적 명연주로 평가받는 음반들이다. 저자는 “이것저것 많이 들으려 하기보다는 같은 곡을 여러 번 반복해 들으면서 음악을 내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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