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권리|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 지음, 지식의날개
인터넷은 당신이 지난 여름에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다. “당신이 결혼한 뒤 2000년에 집을 샀으며, 2003년에 건강에 대해 불안해했으며, 1년 뒤에 아기를 출산했다는 것처럼 우리 인생사의 중대한 변화를 알고 있다. 정신질환 문제를 검색했거나, 선정적 소설을 찾았거나, 애인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위해 외딴 곳의 모텔을 예약한 것도 기록돼 있다. 인터넷 검색엔진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기억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알고 있다. 마음 편하지 않아 지워버렸던 사소한 일들도 사라지지 않고 과거를 들춰낸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개인의 신용 및 건강 정보는 관련 기관의 서버에 속속 저장된다. 어쩌다 저지른 실수와 생물학적 정보마저 디지털 기록으로 전환된다. 당사자들이 그 정보의 정확성에 아무리 이의를 제기해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관련 기관들은 민감한 정보의 대부분을 삭제하지 않으며, 특정 개인의 정보를 결합해 나눠 갖기도 한다. “이미 많은 휴대전화가 위성항법장치(GPS)를 장착해 사용자 위치를 알려주고 있어 이동 궤적을 정밀하게 추적”할 수 있으며, “머잖아 새로운 기술은 개인을 실시간으로 식별”해낼 것이다. 위치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우리가 주변의 물체들과 언제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에 관한 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순간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인터넷연구소 교수인 저자 쇤베르거는 “그 모든 것이 저렴한 비용으로 손쉽게 이뤄질 것”이라고 예견한다.
“인터넷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 기억”은 결국 피해자를 양산한다. 저자는 스테이시 스나이더라는 젊은 여성을 사례로 든다. 교사를 지망하는 싱글맘이었던 그녀는 해적 모자를 쓰고 술을 마시는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교사 자격증을 받지 못하고 말았다. 60대 후반의 캐나다인 심리치료사 앤드루 펠드마는 자신이 50년 전 LSD를 흡입한 적이 있다는 내용을 연구 논문에서 잠깐 언급했다가, 그것이 인터넷으로 검색되는 바람에 진술서에 지문을 찍고 미국 입국을 금지당해야 했다. 두 사례는 모두 법정 소송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이런 일은 부지기수이며, 앞으로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개인정보를 드러내는 행위가 세계적으로 청년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으며, 어떤 젊은이들은 그 정보가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터넷이 만들어낸 기억은 분명한 혜택을 베풀긴 했지만, 너무 지나친 기억은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면서 제러미 벤담과 미셀 푸코가 거론했던 ‘원형감옥’의 개념을 끌어와 “포괄적 디지털 기록”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다. 원형감옥에 갇힌 인간은 숨을 수 없다. 원형의 정점에 있는 관리자에게 일거수 일투족이 노출된다. 게다가 “내가 감시당하고 있지 않을 때도 감시당하는 것처럼 행동하게 되는 현재의 태도”를 만들어낸다. 또 “현재의 말과 행동이 미래 사람들에 의해서까지 판단받게” 됨에 따라 “현재의 행동을 주저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저자는 “디지털 원형감옥은 우리를 구석진 장소에서만이 아니라 시간을 건너뛰며 살핀다”며 “공간적·시간적 원형감옥이 모든 사람을 지속적으로 자기 검열에 빠지도록 만든다”고 주장한다. 결국 포괄적인 디지털 메모리가 “우리의 판단력을 손상”시키며, 더 나아가 “역사를 붕괴시킨다”는 것이다.
그 기억의 반대편에 ‘망각’이 있다. 저자는 그것을 “인류가 수만년의 진화를 거쳐 습득한 능력”이라고 규정한다. 물론 인간은 “수천년 동안 기억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저장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을 늘리고 성공적으로 불러오기 위해 노력해온 것”이 사실이다. 소통과 기억의 도구인 언어를 만들어냈으며, 그림과 문자 같은 “외부 기억장치들”을 고안해냈다. 그래서 인간은 “기억을 광범위하게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사진과 음반, 비디오 등이 등장하면서 그 공유는 더욱 공고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수십만년에 이르는 진화의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극히 최근에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인류는 기본적으로 “우리 스스로가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만큼 중요한 것으로 인식한 것은 기억했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망각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에서 “기억의 비용은 망각에 비해 언제나 비쌌으며 그 기술도 불완전했다”고 설명한다. 그런 연유로 “유사 이래 인류에게는 망각이 일반적이었고 기억하는 것이 예외적이었던 상황이 지속돼왔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책에서 비디오에 이르는 (과거의) 도구들은 기억과 망각 사이의 균형을 위협하진 않았지만, 디지털 기술과 전지구적 네트워크는 이 균형을 역전시키는 최초의 상황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제 “망각은 예외이며, 기억이 일반적”이다. “망각하는 것은 비용이 들고 어려워진 반면, 기억하는 것은 저렴해지고 쉬워졌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문화란) 기억을 선별해온 과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라져버린 책들과 물건들의 공동묘지”야말로 문화이며,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오히려 반문화적이라는 얘기다. 이 책의 저자도 에코와 같은 맥락에서 망각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인간의 의사결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왔으며 “과거의 일이 족쇄가 되지 않도록 해서, 우리가 제때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기억의 천재 푸네스>가 던진 논쟁거리를 소개한다. 주인공 푸네스는 승마 사고로 ‘망각의 능력’을 잃는다. 그는 맹렬한 독서로 고전에 대한 방대한 기억을 축적하지만, 단어 너머의 의미를 찾아내는 데 실패하고 만다. 완벽한 기억을 갖게 되면서 “일반화하고 추상화하는 사고를 할 수 없게 되고, 과거의 사소한 부분에 빠져 길을 잃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기억의 저주”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저자의 결론적인 주장은 “이 과도한 디지털 메모리의 시대”에 “망각의 미덕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일단 그는 “디지털 금욕주의”라는 윤리적 가치를 강조한다. 물론 그것은 “기술적 진보에 반대하는, 분명히 반기술문명적인 견해”다. 하지만 저자는 “디지털 메모리가 끼칠 위험은 현재보다 미래에 더 심각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인터넷에 개인정보를 올리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면서 “아마존 같은 전자상거래 사이트나 구글 같은 검색엔진을 포함해, 상대가 얼마나 적은 개인정보를 요구하는지를 따져서 선택할 것”을 권면한다. 아울러 정보 프라이버시 권리의 보장을 강조한다. “디지털 메모리에 담길 정보의 양을 제한하는 것”과 더불어 “그렇게 기억된 메모리의 상당 부분을 인지적으로 무시하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또한 점점 희미해졌다가 마침내 소멸되는 인간의 기억 방식을 모방해, “디지털 메모리에 저장하는 정보에도 사용자가 직접 정보 만료일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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