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에서 썸네일형 리스트형 첼리스트 양성원, 설치미술가 배정완…음악과 빛의 만남 기사입력 2010-04-08 11:23 위클리경향 빛(Light)은 자신의 존재를 앞세우지 않았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스스로를 보여 주면서 음악 그 자체 속으로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선명하게 스며들었다. 지난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서울 대학로의 정미소소극장에서 펼쳐진 특이한 연주회. 첼리스트 양성원과 설치미술가 배정완이 ‘음악과 빛의 만남’을 시도한 이 연주회의 타이틀은 ‘소란’이었다. 첫곡으로 연주한 올리비에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가운데 일곱 번째 곡 ‘시간의 종말을 알리는 천사를 위한 무지개의 소란’에서 따온 제목인 듯했다. 그러나 연주회는 결코 소란스럽지 않았다. 일단 공연장 로비에 대한 언급부터 해야겠다. 대개 연주회장 로비는 ‘사교장’에 가까운 법이다. 그러나 정미소.. 더보기 오페라 ‘유디트의 승리’…화려한 외피, 부실한 내용 아무리 봐도 좋은 평점을 주기 힘든 공연이었다. 한데 이 공연에 쏟아진 극단적인 몇몇 호평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물론 짐작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냥 웃을 수밖에. 기사입력 2010-04-06 18:39 | 최종수정 2010-04-06 23:05 그동안 뮤지컬 극장처럼 인식돼온 충무아트홀에서 처음으로 오페라를 선보인다는 구상은 참신했다. 주최 측에서 내세운 ‘작지만 아름다운 오페라’. 규모가 크고 화려한 오페라가 봇물을 이룬 한국에서, 그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캐치 프레이즈였다. 게다가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인 비발디의 오라토리오를 오페라로 개작해 한국에서 초연한다는 사실도 애호가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또 하나의 빼놓을 수 없는 기대 요소. 연출 총감독이 올해 여든살을 .. 더보기 세상이 사막 같을지라도, 연극이여 영원하라 기사입력 2010-03-08 18:24 ㆍ세르비아 극작가 시모비치의 ‘유랑극단 쇼팔로비치’… 국내 공식 초연 막이 내려간 후에도 대사가 귓가를 맴도는 연극이 가끔 있다. 가 꼭 그렇다. 이를테면 이런 대사다. “우리가 양을 모피로, 곰을 털모자로, 돼지를 부츠로 둔갑시키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있어 모피 코트가 다시 양의 울음소리를 내도록, 털모자가 곰의 으르렁대는 소리를 내도록, 부츠가 새끼 돼지를 낳도록 할 것인가?” 이 연극에는 그 밖에도 삶과 예술의 의미를 묘파하는 주옥같은 대사가 허다하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예술의 존재 의미를 묻는 연극. 세르비아 문단의 이상주의자로 불리는 시인 겸 극작가 류보미르 시모비치(75)의 가 지난 5일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극.. 더보기 나는 정말 나일까…연극 ‘꿈속의 꿈’ 극작가 장성희는 참 사려깊은 후배다. 인간적인 측면에서뿐 아니라, 극작가 장성희, 연극평론가 장성희에게도 나는 깊은 신뢰를 갖고 있다. 그래서 종종 그에게 연극을 함께 보러 가자고 제안할 때가 있다. 공연 뒤 그와 나누는 뒷풀이 대화는 내 생각을 정리해나가는 데 늘 도움이 돼주곤 한다. 그런데도 정작 나는 극작가 장성희의 작품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무심했던 모양이다. 정말 미안하게도, 은 내가 처음으로 본 그의 작품이다. 감상평? 아무리 냉정하게 보더라도 최근 연극판에서 이만한 작품을 만나긴 쉽지 않다. 인간적으로든 연극적으로든, 장성희에게서 늘 풍기는 은근한 향기가 연극 속에도 고스란히 배어 있다. 진중한 주제와 탄탄한 극적 구성, 게다가 의미적 요소와 음악적 요소의 결합을 깔끔하게 성취해낸 의고체 대사.. 더보기 풍성한 풍자, 아쉬운 촌철살인…연극 '비언소' 기사입력 2010-02-17 17:30 | 최종수정 2010-02-18 11:05 비언(蜚言)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은 ‘이리저리 퍼뜨려 세상을 현혹하게 만들거나 아무 근거 없이 떠도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비언소(蜚言所)’라는 만화적 조어를 굳이 해석하자면, 비언이 횡행하는 장소를 일컫는 것일 테다. 빨리 발음하면 모음 축약이 일어나 ‘변소’가 된다. 연극 는 그렇게, ‘마려운’ 인간들이 너나없이 드나드는 공중변소를 무대로 삼았다. 무대 오른쪽에 출입구, 뒤쪽에 이른바 ‘똥칸’이 네 개 놓여 있다. 남자용 소변기는 객석을 향해 그대로 노출돼 있다. 지난 5일 막올린 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말’의 연극이다. 공중변소를 배경으로 27개의 장면이 숨가쁘게 교차하면서, 온갖 말들이 메뚜기처럼 .. 더보기 탄탄한 대본·배우의 열연…연극 ‘에이미’ 기사입력 2010-02-10 17:43 | 최종수정 2010-02-11 00:47 는 한마디로 ‘연극의 정석(定石)’이다. 부드럽고 깔끔하다. 연출가 최용훈은 영국의 극작가 데이비드 해어(David Hare·63)의 대본을 성실하고 겸손하게 무대 위에서 펼쳐놓았다. 그래서 이 연극의 미덕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해졌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두 가지, 바로 탄탄한 대본과 배우들의 열연이다. 극작가 해어는 같은 연극으로 한국에도 이미 소개된 바 있다. 눈매가 선량해 보이는 이 극작가는 현재 영국 국립극단의 부예술감독. 그는 1960년대부터 연극을 통해 현실을 들여다보는 ‘사회적 논평’으로서의 연극을 주로 써왔다. 언론과 종교에 대한 풍자, 정치권력과 결탁한 금융자본의 부도덕성 등을 치밀하고 밀도 있는 언어.. 더보기 덧없는 만남과 이별… 그저 바라보며 느껴라 기사입력 2009-12-17 17:53 | 최종수정 2009-12-18 10:51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연극이 가끔 있다. 이 딱 그렇다. ‘침묵극’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연극의 무대는 전후좌우로 툭 트였다. 바닥에는 흰 모래가 가득 뿌려졌고, 둥글고 커다란 관들이 이리저리 엇갈려 놓여 있다. 그 ‘둥근 모양’은 얼핏 부드럽고 편안해 보이지만, 배우가 그 위를 걷는다는 것은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그 단순하고 넓은 무대는 버려진 놀이터 같기도 하고 황량한 사막 같기도 하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면 모래들이 일시에 몸부림치며 날아오를 것 같다. 어쨌든 그것은 ‘너’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 과거로부터의 시간과 기억을 온전히 끌어안은 ‘지금 이곳’이다. 그 속에 갖가지 오브제들이 펼쳐져 있.. 더보기 몸짓·오브제가 만든 긴장감… '맥베드’의 해체와 재구성 기사입력 2009-11-05 17:53 | 최종수정 2009-11-05 19:45 무대는 텅 비었다. 단지 의자 몇 개가 천장에 매달려 있거나 무대 바닥에 놓여 있다. 그리고 스무개 남짓한 촛불이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가볍게 일렁인다. 그게 전부다. 연출가 김낙형도 조심스럽게 언급하고 있듯이, 의자는 ‘권력’의 상징이며 촛불은 ‘흔들리는 내면’의 암시. 하지만 이런 식의 오브제 설정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지 않은가. 이 진부한 설정이 과연 어떻게 새로운 생명을 얻을 것인가. 그것이 연극 의 숙제 가운데 하나일 터다. 다행스럽게도 여덟명의 배우들이 “멕베드, 맥베드, 맥베드…”를 의미없는 구음(口音)처럼 되뇌이면서 무대 위로 등장하는 순간, 70%를 암전시킨 어두운 무대는 묘한 빛을 튕기기 시작한다. .. 더보기 연극 '악당의 조건'...웃기고 슬픈 하류인생의 초상 경향신문 문화면에 '객석에서'라는 간판을 달고 처음 게재했던 리뷰다. 하지만 나는 이 코너에 고작 다섯 편의 리뷰밖에 쓸 수 없었다. 회사의 명(?)을 받아 문화부장으로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자라기보다 관리직에 가까운 자리였고, 솔직히 말해 나는 그 일을 하는 내내 좀 괴로웠던 같다. 물론 그걸 원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아무리 봐도 난 데스크보다는 기자가 더 체질에 맞는 모양이다. 어쨌든 이 코너는 김희연 등의 후배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잘 이어줬으니 고마운 일이다. 나는 2008년 6월 취재현장으로 되돌아왔고, 지난해 10월부터 기존에 맡아왔던 음악에 더해 연극까지 담당하게 됐다. 오랫만에 연극판으로 돌아와 '객석에서' 코너로 처음 출고했던 기사는 김낙형이 연출한 '멕베스'였다. 기사입.. 더보기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