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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음악가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네가 걸어온 길, 그리고 가야 할 길


수연이 얘기를 처음 들은 건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강옥순 선생에게서였다. 한 5년쯤 전이었다. 그때  강선생은 한길사라는 출판사의 주간이었는데, 그와 나는 대략 20년쯤 된 친구 사이다. 강선생은 참 믿음직스러운 사람이다. 난 그가 땅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는 편이다. 나란 놈이 원체 그렇게 허술하기도 하거니와, 강선생의 성품이 워낙 올곧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데 어느날 그가 말했다. "독일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하는 친구딸이 있는데, 아주 잘 한대. 문선생이 그애를 꼭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어."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나~ 처음엔 그런 생각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소위 '잘한다'는 녀석들이 어디 한둘인가? 음악기자 생활을 여러 해 하다보니, 별별 녀석들을 다 봤다. 한국에는 왜 이리 예술가들이, 혹은 예술가 지망생들이 넘쳐나는지. 아마 인구 대비로 치자면 세계 1위쯤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수연이에 대한 얘기를 듣는 순간, 묘하게도 마음이 끌렸다. 게다가 강선생이 이 정도로 말하는 아이라면 분명 특별한 뭔가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었다. 

강선생한테 얘기를 전해 듣고도 게으른 천성 탓에 시간이 꽤 흘러서야 수연이를 보게 됐다. 처음엔 여러명이 함께 한 자리였다. 아마 헤이리 문화재단의 이상 사무처장을 비롯해 재단 사람들 몇몇과 함께였던 것 같다. 그 자리에선 별로 수연이와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저 넉넉하게 생긴, 그러면서도 눈매가 왠지 날카로웠운 그 아이의 얼굴만 얼핏 봤다. 그때 본 수연이는 아직 볼이 통통한 어린 아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다가 1년쯤 후에, 수연이가 또 한국에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약속을 잡았다.  내가 수연이에게 전화를 직접 걸은 것 같기도 하고, 강선생한테 수연이를 한번 만나보겠다고 연락한 것 같기도 하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든, 바이올린을 어깨에 둘러메고 신문사로 나를 찾아온 수연이는 스무살이었다. 한데 1년 전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다시 본 수연이는 그 나이보다 훨씬 성숙해보이는 '아가씨'였다. 

한데 수연이는 외모만 성숙한 아가씨가 아니었다. 난 독일에서 날아온 그 아이와 한시간쯤 얘기를 나누다가 어느새 점점 매료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아예 수연이의 사람 됨됨이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뭐랄까.... 그것은 오래된 먼지 속에 묻혀있던 작고 빛나는 보물을 발견했을 때의 느낌과 같은 것이었다. 바이올린 연주의 뛰어남을 운위하기 전에, 스무살의 수연이는 이미 한 명의 인간으로서 나에게 깊은 감동을 던져주고 있었다. 나는 수연이의 얘기를 들으면서 간간이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아버지뻘 되는 아저씨의 체면을 지키느라고 어험 어험 하면서 딴청을 피워야 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바이올린을 다시 둘러메고 씩씩하게 인사를 건네는 수연이를 엘리베이터 앞에서 배웅하면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 "오늘 내가 너한테 참 많은 걸 배웠구나."

그날 이후 지금까지 기자인 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과 세 번 인터뷰했다. 해가 가면서 점점 성숙해지는 연주. 그에 따라 수연이에 대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수연이가 첫번째 기사에서부터 극찬을 보냈던 이 아저씨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지 않은 것이 참으로 고맙다. 그리고 이제 훌쩍 커버린 그 아이를 여전히 응원한다. 아무쪼록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의 오디션에서도 - 수연아, 아저씨는 이 지휘자를 무지 좋아한단다 - 부디 빛나는 성과를 보여주길!


“가난하면 어때요, 연주할 수 있는데…”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최고의 감동, 놀라울 정도로 균형잡힌 연주.’

지난해 2월, 영국의 권위있는 음악지 ‘BBC 뮤직매거진’은 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보기 드문 극찬을 보냈다. 독일에서 태어난 한국계 연주자 김수연(20)이 그 주인공이다. BBC는 김수연이 독일의 ‘욈스(OEHMS)’ 레이블에서 내놓은 음반을 평하면서, “메마른 감성의 청중이 아니라면 눈물을 참을 수 없을 것” “필수적인 걸작(masterpiece)” 등의 언어로 극찬했다. 조금도 결론을 유보하지 않는, 확신에 가득찬 리뷰였다.

유럽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이 한국무대를 밟는다. 19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노장 엘리아후 인발(71)이 지휘하는 몬테카를로 필하모닉과의 협연이다. 지난해 1월 정명훈의 서울시향과 협연한 후 거의 2년 만에 다시 서는 한국무대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 김수연의 ‘음악적 무게’는 또 달라졌다. 지난 16일 바이올린을 어깨에 메고 경향신문사를 찾은 김수연은 “한국에 오기 직전에 슬로바키아 필하모닉과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다”며 “내년 2월에는 낙소스(Naxos)에서 음반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낙소스에서 음반을 낸 한국 출신 연주자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소프라노 조수미,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과 김지연,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등이다.

“5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지만, ‘이 길이 내 운명’이라는 거창한 느낌을 가져본 적은 없어요. 어릴 때부터 별 어려움 없이 편안하게 연주해온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엔 ‘나만의 해석’에 대해 고민해요. 사람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이, 나한테 가장 잘 맞는 테크닉을 찾으려고 하지요. 크고, 부드럽고, 따뜻한 소리를 내고 싶어요.”

독일 중서부의 소도시 뮌스터에서 가난한
유학생 부부의 딸로 태어난 김수연의 입에선 “별 어려움 없이 살았다”는 말부터 흘러나왔다. 김수연이 8살이었을 때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 그 탓에 생활고가 내내 지속됐지만, 양식의 궁핍함에도 불구하고 소녀의 영혼은 시들지 않은 듯하다. 그는 “아버지는 4번이나 뇌수술을 받았고, 엄마와 두 동생을 포함한 가족이 내 연주 수입에만 의존해 살고 있다”면서도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며 빙그레 웃었다.

“독일에서는 돈이 없어도 재능만 있으면 음악공부가 가능해요. 9살 때 뮌스터음대에 예비학생으로 들어갔고, 17살 때 정식으로 입학했어요. 내년이면 어느새 졸업이에요. 요즘 주로 읽는 책이 파블로 카잘스, 예후디 메뉴인, 피아티고르스키 같은 거장들의 자서전이거든요. 그들도 모두 삶의 난관을 뚫었던 분들이잖아요. 누구나 다 각자의 아픔이 있는 것 같아요. 저만 힘든 게 아니죠.”

“가족이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충분히 견뎌낼 수 있는 가난”과 “어릴 때부터 습관이 돼버린 책읽기”가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인 듯하다. 게다가 172㎝의 큰 키,
다이어트 맹신자들이 보기엔 꽤 두툼해보이는 몸집도 그의 ‘재산’이다. 그 ‘건장한’ 체격에서 뿜어져나오는 힘있는 보잉(Bowing)이 악보 속에 숨은 드라마를 사뿐히 끌어낸다. 김수연은 19일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4번’에 대해 “모차르트의 음악은 산뜻하고 깨끗하게 연주하는 게 관건”이라면서도 “기쁨과 슬픔을 오가는 급격한 변화를 제대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글 문학수·사진 박재찬기자〉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진심이 담긴 연주, 그것이 내 화두”

2009-06-29 17:30:52


ㆍ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입상 재독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내 바이올린에는 진심이 담겼는가?”

벨기에 브뤼셀에서 전화를 받은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사진)은 그것이 요즘 자신의 화두라고 했다. 그는 한 달 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을 놓치고 4위에 머문 것에 대해서도 “섭섭하지 않다.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베토벤
음악을 제대로 공부해 본 기회였다는 것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독일 뮌스터에서 태어나 ‘빌린’ 바이올린으로 레오폴트 모차르트 콩쿠르(2004년)와 하노버 바이올린 콩쿠르(2006년)에서 잇따라 우승을 거머쥐었던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영국의 ‘BBC 뮤직매거진’으로부터 ‘최고의 감동, 놀라울 정도로 균형잡힌 연주’라는 평을 들었던 그가 8·9월 한국에서 연주회를 연다. 음반사 유니버셜에서 모차르트의 작품을 모아 ‘모차르티아나’라는 음반도 내놓는다.

“할수록 어렵네요. 좋은 음악의 요체는 ‘진심’인 것 같아요. 혹시라도 나 자신을 너무 내세우면서 연주하는 것은 아닌지, 늘 조심하면서 자신을 돌아보죠.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 다르듯이 연주 스타일과 음색도 각양각색이지만, 저는 아무래도 부드러운 소리에 마음이 끌려요. 이를 테면 모차르트가 그렇죠. 하지만 프로코피에프 같은 현대적 음악에서는 또 다른 소리를 내려고 해요. 음악에 따라 다양한 색깔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숙제죠.”




그는 지난해 11월 롱 티보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와 동갑. 한 달 전 퀸 엘리자베스에 같이 출전해 6위를 차지했던 윤소영보다는 세 살 아래다. 한창 경쟁심을 느낄 나이다. 하지만 그는 “콩쿠르에 함께 나갔을 때는 경쟁심을 느끼지만, 평소에는 그저 좋은 동료일 뿐”이라고 했다. 특히 윤소영과는 “최종 결선을 같이 준비하면서 서로 격려하고 도와줬다”고 말했다. 김수연과 윤소영은 이번 콩쿠르의 파이널에서 한국인 작곡가 조은화(36)의 바이올린 협주곡 ‘아겐스(Agens)’를 연주했다. 바이올린 부문보다 1주일 먼저 발표됐던 작곡 부문의 우승곡. 김수연은 “시간에 쫓겨 마음이 급했지만, 소영이 언니와 함께 연습하면서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스물두살의 김수연은 10대 때부터 가족의 생계를 상당 부분 책임져온 ‘가장’이다. 하지만 그는 2년 전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나는 별 어려움 없이 살았다. 가족이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가난을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의연하고 심지 굳은 바이올리니스트는 여전히 가장이며, 가난을 탓하거나 운명을 원망하지 않는다. “바이올린은 나의 인생”이라며 거창한 선언을 내뱉지도 않는다. 그는 독일 함부르크의 음악장학재단에서 대여해준 1750년산 ‘카밀리우스 카밀라’에 대해 “매우 사랑하는 바이올린”이라면서 “서른살까지 사용을 허락받았다”고 말했다.

8월26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콘서트는 지휘자 정명훈과의 실내악 협연. ‘7인의 음악인들’이라는 제목대로 7명의 연주자들이 무대에 오른다. 지휘봉을 내려놓고
피아노 앞에 앉을 정명훈을 비롯해 신예 김선욱(피아노), 김수연과 이유라(바이올린), 양성원과 송영훈(첼로), 최은식(비올라) 등이 연주한다. 또 같은 달 발매될 음반에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세 곡을 비롯, 리처드 용재 오닐과 함께 연주하는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듀오’, 역시 두 대의 악기로 편곡한 ‘어머니께 말씀드리죠’ 변주곡이 수록된다. 독일 노이마르크트에 위치한 라이츠슈타델 홀, 피아니스트 브렌델과 리히테르도 즐겨 사용했다는 이 홀에서 지난 4월 중순께 녹음한 음반이다. 9월6일 LG아트센터에서 있을 연주회에서는 모차르트와 브람스, 라벨의 소나타를 연주할 예정이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그는 “요즘 읽는 책이 뭐냐”는 질문에 “소설가 김형경의 에세이 <천 개의 공감>”이라고 답했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깊은 우애로 만든 이심전심의 앙상블
  
ㆍ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
ㆍ내달 4일 서울 예술의전당서 콘서트

2인 이상이 함께 연주하는 실내악에서 찰떡같은 궁합을 이뤄내는 것을 ‘앙상블’이라고 한다. 한데 이것은 양보의 미덕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치고 나갈 때와 받쳐줘야 할 때를 적확하게 꿰뚫어야 최상의 앙상블이 나온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마음이 통(通)하는 것. 아무리 테크닉이 뛰어나다 해도 피차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열번 스무번의 리허설이 무용지물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이 미묘한
음악적 조화를 ‘이심전심의 앙상블’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23)과 더블베이스 연주자 성민제(20)가 처음으로 앙상블을 펼친다. 날렵한 고음과 육중한 저음을 대변하는 두 현악기의 ‘이중창’도 특이하거니와, 각자 솔리스트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김수연과 성민제가 어떻게 ‘한 팀’이 됐는지도 궁금했다. 둘은 20대 초반 연주자들 가운데 각자의 악기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차세대 스타들. 지난 17일 정오, 서울 정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그들을 만났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은 가뿐하게 나타나 바나나주스와 케이크를 주문했는데, 성민제는 영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키가 2m에 가까운 더블베이스를 차량에 싣고 이동하는 게 쉽지 않았던 탓이다. 10분쯤 늦게 허겁지겁 나타난 그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세살 위의 김수연은 ‘동생’이 땀을 식힐 틈을 잠시 줬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두 연주자의 우애는 뜻밖에도 깊었다.

김수연과 성민제는 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각자의 악기를 바꿔들었다. 김수연이 “재미있을 것 같다”며 제안했다. 성민제는 바이올린을 들고 사진을 찍는 게 영 어색한 듯 “이상해”를 연발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유럽에서는 바이올린과 더블베이스의  협연이 별로 낯설지 않아요. 특히 현대음악 쪽으로 올수록 두 악기의 만남이 잦아요. 제가 뮌스터음대 다닐 때 바이올린 선생님이 더블베이스와 협연을 자주 하셨거든요. 그때 제가 겨우 아홉살 때였잖아요. 그런데도 두 악기가 같이 연주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생긴 모습도 그렇고 음역도 확연히 다른, 양극단의 악기잖아요.”

김수연은 말 끝에 “더블베이스는 대단히 매력적이지만, 뛰어난 연주자가 아니면 솔리스트로 나설 엄두를 내기 힘든 악기”라고 했다. 옆자리의 성민제를 슬쩍 바라보면서 “(한국 출신으로 첫 번째 솔리스트의 길을 걷는) 민제는 그 한계를 뛰어넘은 연주자”라고도 했다. “앞으로도 잘하는지 누나가 지켜볼 것”이라고 엄포를 놓으며 깔깔 웃기도 했다. 둘의 입에서 “누나”와 “민제”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맞아요. 현대음악으로 오면 더블베이스가 반주 악기에서 솔로 악기로 위상이 높아지죠. 윤이상 선생님도 바이올린과 더블베이스의 앙상블을 위한 곡을 썼어요. 물론 온몸을 다 쓰는 악기여서 다루기 힘든 건 분명해요. 하지만 그게 매력이기도 하죠. 음역이 8옥타브나 되기 때문에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고, 커다란 더블베이스와 연주자가 한 덩어리로 움직이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상당히 볼 만하죠. 바이올린에 비한다면, 남자의 굵은 목소리라고 할 수 있죠.”

‘남자의 목소리’라는 대목에서 김수연은 또 한차례 웃음을 터뜨렸다. 독일 중서부의 소도시 뮌스터에서 궁핍한
유학생의 딸로 태어난 김수연은 아홉살에 뮌스터음대 예비학생으로 입학해 21세에 졸업했다. 학비는 한 푼도 들지 않았다. 그는 독일의 공교육 시스템이 발굴해 키워낸 연주자다. 그의 재능을 높이 산 함부르크 음악장학재단은 1750년산 ‘카밀리우스 카밀라’ 바이올린을 “서른살까지 사용하라”며 대여해줬다. 지금도 김수연은 그 애기(愛器)를 들고 무대에 오른다. 만약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면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우리는 ‘김수연’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를 영영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뮌스터음대를 마친 김수연은 뮌헨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으로 진학했다. 국내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성민제도 지난해 여름, 그 학교의 같은 과정으로 유학을 떠나왔다. 그래서 둘은 뮌헨음대 선후배로 인연을 맺었다. 올해 초 발매된 소프라노 조수미의 음반 ‘Ich Liebe Dich’에 반주자로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둘의 우애는 단순한 선후배를 뛰어넘어 ‘의남매’ 수준으로까지 느껴졌다. 성민제는 “누나한테 배고프다는 말도 서슴없이 한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은 타국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의 호소일지도 모른다. 김수연은 “민제를 집으로 불러 된장찌개를 끓여준다”고 했다. “얘가 두부를 굉장히 좋아해서 꼭 두부가 들어간 된장찌개를 원한다”며 타박을 주기도 했다. 성민제가 “두 번밖에 안 해줬잖아”라고 투덜대자 “넌 왜 설거지를 제대로 안하냐”며 다시 한번 타박을 안겼다.

성민제는 최근 ‘크라이슬러 인 스타일’이라는 제목의 새 음반을 녹음했다. 오는 10월에는 유럽의 5인조 더블베이스 앙상블인 ‘바시오네 아모로사’의 일원으로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도 설 예정이다. 김수연은 로스트로포비치가 설립한 ‘크론뵈크 아카데미’의 엄격한
오디션을 최근 통과했다. 그는 “앞으로 1~2년 그곳에서 더 공부할 것”이라며 “기돈 크레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같은 명장들의 마스터클래스뿐 아니라, 안드라스 시프의 피아노 수업도 들을 것”이라고 했다. 한층 다행스러운 것은 뮌헨음대 시절의 은사였던 안나 추마첸코가 크론뵈크 아카데미로 적을 옮겼다는 것. 김수연은 추마첸코의 추천을 받아 거장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의 오디션을 앞둔 상태이기도 하다.

‘랑데뷰’라는 제목의 이번 콘서트에는 한국계 미국 피아니스트 엘리자베스 조이 로가 함께 참여해 솔로와 듀오, 트리오 편성을 오간다. 김수연과 성민제가 듀오로 협연할 곡은 크라이슬러가 작곡한 ‘푸냐니 스타일의 프렐류드와 알레그로’. 한층 더 기대되는 레퍼토리는 마지막에 연주할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4계’를 트리오로 편성한 곡이다. 그밖에 바흐의 ‘바이올린 솔로를 위한 파르티타 2번’(김수연),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과 ‘마르티니 스타일의 기도’(성민제, 엘리자베스 로) 등도 연주한다. 9월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 donevan 2016.06.01 22:39

    언젠가 문학수 기자님의 글을 읽고 김수연 바이올리니스트를 알게되었습니다. 파르티타 앨범에 대해 젊은 나이임에도 무척이나 원숙한 매력으로 가득하다고 평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제가 가장 애장하는 바흐 앨범이 되었습니다. 지난주에는 평생의 숙원이던 바흐 샤콘느를 lg아트센터에서 직접 들으며 벅찬 감동에 한참을 울던게 생각이 나네요. 제 인생에 소중한 음악가를 한명 보태주신 기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 문학수 2016.06.05 13:26 신고

      수연이 참 좋은 음악가입니다. 이 댓글을 읽으면 얼마나 기뻐할까요. 바흐도 좋지만, 얼마 전에 나온 베토벤 협주곡 음반도 참 좋습니다. 거짓말이나 군더더기 없이, 조곤조곤 할 이야기 다 하고 있는 연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