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마지막날이다. 오후 4시경 숙명여대 이혜전 교수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그의 부군인 피아니스트 강충모 교수(한예종)가 줄리어드 음대 교수로 확정됐다는 것. 미국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대신해 소식을 전한다는 것.
기쁜 일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피아니스트 강충모이기 때문에, 나 역시 기쁘다. 언론 플레이에 젬병인, 인간적이고 겸손한 피아니스트. 무지하게 연습하는 사람. 남의 제자를 칭찬하면서, 자기 제자 자랑은 감추는 사람. 음악계 장삿꾼들의 꼼수, 불성실한 연주자들의 엉터리 연주에 분노할 줄 아는 사람.
나보다 한살 많은, 마이 프렌드 강충모.
-한국의 클래식 음악가들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왜 그런가?
“음악은 근본적으로 자아 도취에서 출발한다. 음악인들이 자기중심적 사고에 익숙하고 주변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음악을 깊이 공부하다 보면 또 다른 해답을 얻게 된다. 음악은 결국 사회와 인간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위대한 음악적 모티브는 대부분 역사의 한 장면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크로스오버나 퓨전에 대한 생각은?
“난 거부감을 느낀다. 취지나 정체성이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음악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상업주의의 소산이다. 난 가요도 좋아하고 재즈도 좋아한다. 하지만 모차르트 소나타를 재즈로 연주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요즘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음악적 이해도와 열정은?
“인터넷이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많이 미친다. 너무 쉽게 답을 얻으니까. 스스로 고민해서 해답을 찾아가는 훈련이 무척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해석의 깊이가 떨어진다. ‘이 부분에서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서 연주해라’라고 주문하면 이해를 잘 못한다. ‘작게 쳐요, 크게 쳐요?’라고 되묻는다. 답답한 노릇이다.”
-앞으로 기대되는 젊은 연주자로 누굴 꼽을 만한가?
“피아니스트로는 쇼팽 콩쿠르를 통해 널리 알려진 임동민·동혁 형제와 손열음을 역시 꼽아야겠다. 바이올린에서는 권혁주, 신현수, 신아라가 많이 기대된다. 첼로에는 강승민이 있다. 아, 첼로에서 고봉인도 빼놓을 수 없는 재목이다.”
〈문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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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일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피아니스트 강충모이기 때문에, 나 역시 기쁘다. 언론 플레이에 젬병인, 인간적이고 겸손한 피아니스트. 무지하게 연습하는 사람. 남의 제자를 칭찬하면서, 자기 제자 자랑은 감추는 사람. 음악계 장삿꾼들의 꼼수, 불성실한 연주자들의 엉터리 연주에 분노할 줄 아는 사람.
나보다 한살 많은, 마이 프렌드 강충모.
피아니스트 강충모 “클래식의 대중화? 그건 난센스”
기사입력 2008-11-09 17:37
피아니스트 강충모(48·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참 ‘미련한’ 사람이다. 서울이 월드컵 열기로 한창 뜨겁던 2002년 초여름, 그는 바흐의 피아노 음악을 암보(暗譜)로 연주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바흐의 느리고 차분한 음악을 연주하면서 “월드컵도 중요하지만 나같은 사람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었다.
그의 고집스러운 행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바흐 전곡 연주’를 펼친 그는, 곧바로 해설과 연주를 병행하는 ‘렉처 콘서트’를 시작했다. 이 또한 5년 계획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이달 15일에 마침내 마지막 방점을 찍는다. 6일 서초동에서 만난 강충모는 “이제 좀 지쳤다. 앞으로 4~5년 연주를 쉬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두 가지 문제를 풀어보려고 렉처 콘서트를 시작했지요. 피아노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악보만 들여다보는 게 답답했어요. 음악은 오선지 속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작곡가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해야 하고, 왜 그 곡을 작곡했는가, 담겨 있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등등, 악보의 이면(裏面)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죠. 또 하나의 동기는 ‘클래식 대중화’라는 구호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죠. 제가 9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당시 한창 인기있던 <열린 음악회>를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클래식을 ‘대중화’한다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 아닙니까? 대중화라는 말만 앞세우면서, 오히려 사람들을 클래식에서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방식이죠.”
그는 “한국의 음악문화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불편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했다. “외국 연주자들이 내한해 한국 청중을 우습게 보는 연주를 펼치는 걸 심심찮게 본다”면서 “그 무성의한 연주를 지켜보노라면 같은 연주자로서 분노가 치민다”고 했다. 또 “허명(虛名)뿐인 연주에 청중이 열렬히 기립박수를 치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고도 했다.
“제가 한창 바흐를 연주하고 있을 때, 외국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한 분이 내한했어요. 저도 그 콘서트에 갔었지요. 그 사람이 연주할 곡도 바흐였거든요. 바흐의 ‘프랑스 모음곡’이었어요. 상당히 기대를 하고 갔었는데, 연주가 아주 무성의한 겁니다. 심지어 펼쳐놓은 악보를 군데군데 건너뛰면서, 그야말로 ‘대충’ 하더라고요. 한국 청중을 너무 ‘쉽게’ 본 거죠. 또 어떤 연주회에서는 중간에 그냥 나와버린 적도 있어요.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 문제 많았던 연주에 청중이 열광하더라고요.”
한국의 연주회장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일부 청중의 키치(Kitsch)적 태도. 강충모는 신분이나 교양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음악회장을 찾아오는, 속물적인 ‘문화 귀족’들에게도 일침을 놨다. 그는 “입장료가 비싼 연주회일수록 그런 청중이 많다”며 “콘서트홀이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사교장으로 변질돼선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연주자를 꿈꾸는 후학들에게는 ‘해석의 깊이’를, 콘서트홀을 찾는 청중에겐 음악에 대한 ‘이해와 견해’를 갖게 해주고 싶어서 5년간 렉처 콘서트를 이끌어왔다는 강충모. 그는 ‘인투 더 클래식’이라고 이름붙인 이 장기 프로젝트를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마감하면서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한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 대곡(大曲)으로 꼽히는 ‘21번 B플랫장조 D.960’, 베토벤 후기의 초탈한 음악성을 대변하는 ‘소나타 32번 c단조’, 쇼팽이 작곡한 3곡의 소나타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는 ‘3번 b단조’ 등이다. 3곡의 공통점은 세 작곡가의 마지막 소나타라는 점. 그래서 연주회 이름도 ‘마지막 소나타’로 붙였다. 특히 베토벤의 소나타 32번은 강충모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이라며 애착을 표하는 곡이다.
그는 “죽을 때 가져가고 싶은 음악이 있는가?”라는 마지막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있다”고 답했다. “어떤 곡이냐?”고 묻자, “베토벤의 32번, 말러의 ‘대지의 노래’,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의 2악장”이라고 답했다.
<글·문학수 선임기자 | 사진·서성일기자 sachimo@kyunghyang.com>
기사입력 2008-11-09 17:37
피아니스트 강충모(48·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참 ‘미련한’ 사람이다. 서울이 월드컵 열기로 한창 뜨겁던 2002년 초여름, 그는 바흐의 피아노 음악을 암보(暗譜)로 연주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바흐의 느리고 차분한 음악을 연주하면서 “월드컵도 중요하지만 나같은 사람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었다.
그의 고집스러운 행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바흐 전곡 연주’를 펼친 그는, 곧바로 해설과 연주를 병행하는 ‘렉처 콘서트’를 시작했다. 이 또한 5년 계획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이달 15일에 마침내 마지막 방점을 찍는다. 6일 서초동에서 만난 강충모는 “이제 좀 지쳤다. 앞으로 4~5년 연주를 쉬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두 가지 문제를 풀어보려고 렉처 콘서트를 시작했지요. 피아노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악보만 들여다보는 게 답답했어요. 음악은 오선지 속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작곡가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해야 하고, 왜 그 곡을 작곡했는가, 담겨 있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등등, 악보의 이면(裏面)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죠. 또 하나의 동기는 ‘클래식 대중화’라는 구호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죠. 제가 9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당시 한창 인기있던 <열린 음악회>를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클래식을 ‘대중화’한다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 아닙니까? 대중화라는 말만 앞세우면서, 오히려 사람들을 클래식에서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방식이죠.”
그는 “한국의 음악문화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불편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했다. “외국 연주자들이 내한해 한국 청중을 우습게 보는 연주를 펼치는 걸 심심찮게 본다”면서 “그 무성의한 연주를 지켜보노라면 같은 연주자로서 분노가 치민다”고 했다. 또 “허명(虛名)뿐인 연주에 청중이 열렬히 기립박수를 치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고도 했다.
“제가 한창 바흐를 연주하고 있을 때, 외국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한 분이 내한했어요. 저도 그 콘서트에 갔었지요. 그 사람이 연주할 곡도 바흐였거든요. 바흐의 ‘프랑스 모음곡’이었어요. 상당히 기대를 하고 갔었는데, 연주가 아주 무성의한 겁니다. 심지어 펼쳐놓은 악보를 군데군데 건너뛰면서, 그야말로 ‘대충’ 하더라고요. 한국 청중을 너무 ‘쉽게’ 본 거죠. 또 어떤 연주회에서는 중간에 그냥 나와버린 적도 있어요.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 문제 많았던 연주에 청중이 열광하더라고요.”
한국의 연주회장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일부 청중의 키치(Kitsch)적 태도. 강충모는 신분이나 교양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음악회장을 찾아오는, 속물적인 ‘문화 귀족’들에게도 일침을 놨다. 그는 “입장료가 비싼 연주회일수록 그런 청중이 많다”며 “콘서트홀이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사교장으로 변질돼선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연주자를 꿈꾸는 후학들에게는 ‘해석의 깊이’를, 콘서트홀을 찾는 청중에겐 음악에 대한 ‘이해와 견해’를 갖게 해주고 싶어서 5년간 렉처 콘서트를 이끌어왔다는 강충모. 그는 ‘인투 더 클래식’이라고 이름붙인 이 장기 프로젝트를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마감하면서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한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 대곡(大曲)으로 꼽히는 ‘21번 B플랫장조 D.960’, 베토벤 후기의 초탈한 음악성을 대변하는 ‘소나타 32번 c단조’, 쇼팽이 작곡한 3곡의 소나타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는 ‘3번 b단조’ 등이다. 3곡의 공통점은 세 작곡가의 마지막 소나타라는 점. 그래서 연주회 이름도 ‘마지막 소나타’로 붙였다. 특히 베토벤의 소나타 32번은 강충모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이라며 애착을 표하는 곡이다.
그는 “죽을 때 가져가고 싶은 음악이 있는가?”라는 마지막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있다”고 답했다. “어떤 곡이냐?”고 묻자, “베토벤의 32번, 말러의 ‘대지의 노래’,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의 2악장”이라고 답했다.
[한국을 이끌 60인] 6. 피아니스트 강충모 교수
기사입력 2006-02-12 17:25 최종수정 2006-02-12 17:25
한 나라의 음악적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는 무엇일까. 피아니스트 강충모 교수(46·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는 “청중의 음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라고 단언한다. 1970~80년대 이후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 출신의 연주자가 많아졌지만, 강교수는 “그것은 그저 피상적인 발전일 뿐”이라고 못박는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연주자의 내한공연도 빈번해졌지만, “문화적 허영심을 채우는 이벤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진단한다.
“불행한 일이지만, 우리 사회가 겉치레에 현혹되는 경향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현상이 음악계에서도 나타납니다. 이름만 번지르르하고 실제 내용은 빈곤한 경우가 적지 않아요. 얼마 전에 어느 유명 연주자의 연주를 듣다가 너무 실망해서 그냥 나와 버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날 청중의 반응은 굉장했습니다. 이런 일이 콘서트장에서 다반사로 일어나요.”
기사입력 2006-02-12 17:25 최종수정 2006-02-12 17:25
한 나라의 음악적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는 무엇일까. 피아니스트 강충모 교수(46·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는 “청중의 음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라고 단언한다. 1970~80년대 이후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 출신의 연주자가 많아졌지만, 강교수는 “그것은 그저 피상적인 발전일 뿐”이라고 못박는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연주자의 내한공연도 빈번해졌지만, “문화적 허영심을 채우는 이벤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진단한다.
“불행한 일이지만, 우리 사회가 겉치레에 현혹되는 경향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현상이 음악계에서도 나타납니다. 이름만 번지르르하고 실제 내용은 빈곤한 경우가 적지 않아요. 얼마 전에 어느 유명 연주자의 연주를 듣다가 너무 실망해서 그냥 나와 버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날 청중의 반응은 굉장했습니다. 이런 일이 콘서트장에서 다반사로 일어나요.”
강교수는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베를린필하모닉의 내한공연에 대해서도 편치 않았던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연주는 훌륭했지만 객석의 분위기는 몹시 불편했다”고 말했다. “R석에 앉아 있던 청중 속에서 순수한 음악 관객을 찾기가 힘들었다”며 “그 연주회에 다녀왔다고 자랑하려는, 부자들의 겉치레 의식을 현장에서 목도하면서 음악인으로서 마음이 몹시 아팠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세계적 권위의 ‘쇼팽 콩쿠르’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던 강교수가 수년 전부터 주장해온 것은 ‘클래식 인구의 저변 확대’. 음악 영재를 키워내는 것, 혹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연주자 몇 명을 배출하는 것은 두번째 목표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가 내세우는 지론은 ‘대중의 클래식화’. 음악 장사꾼들이 내세우는 ‘클래식의 대중화’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는 논리다. 음악에 설탕과 조미료를 뿌려 대중을 미혹하는 것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중에게 제대로 된 음악의 길을 안내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강교수는 이를 위해 지난 수년간 해설과 연주를 병행하는 ‘렉처 콘서트’를 숱하게 펼쳐왔다.
“가장 필요한 건 교육이 달라져야 하는 것이죠. 입시 위주의 교육, 실용주의적 교육에서 한발 벗어나서 인성과 정서를 생각하는 교육으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초등학교때부터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해요. 연주자들도 돈과 명예만 좇기보다는 대중과 함께 한국음악을 살찌워나가야 합니다.”
강교수는 국민 5명 가운데 1명이 똑같은 영화를 보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신드롬에 흔들리는 사회는 위험하다”며 “영화 한 편이 1천만명을 돌파하는 것보다 2백만명이 5편의 영화를 보는 사회가 문화적으로 훨씬 건강하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문화다양성’을 가꿔야 한다는 뜻이다. 월드컵 열기로 한국이 한창 뜨겁게 달아올랐던 2002년 여름, 강교수는 콘서트홀에서 ‘느린 음악의 대명사’인 바흐를 연주하면서 청중과 만나고 있었다. 그는 “당시의 월드컵은 국민적 축제였음에 틀림없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 어느 한구석에서 바흐도 숨쉬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진행했던 ‘바흐 전곡 연주’는 피아니스트 ‘강충모’의 이름을 한국음악계에 깊이 새겨넣은 사건이었다. 바흐의 ‘파르티타’로 시작해 ‘평균율 2권’으로 마감한 이 기나긴 연주회는, 영산아트홀, 금호리사이틀홀, 한전아츠풀센터, 호암아트홀, LG아트센터, 예술의전당 등을 순회하며 자그만치 5년 동안 계속됐다. 음악팬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이후 다른 연주자들의 전곡 연주 프로젝트가 이어졌다. 특히 2000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를 녹음한 음반에는 평론가들의 극찬이 쏟아졌다. ‘왼손의 거장’으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78)는 “골드베르크 음반사에 뛰어나게 자리매김할, 가히 장관(壯觀)을 보여주는 연주”라고 이 음반에 찬사를 보냈다.
충남 천안 모 학교의 음악교사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피아노를 쳤던 강교수.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출발한 데다 손마저 작았다. 어린 시절에는 엄지와 검지 사이를 칼로 째는 ‘자학’을 하기도 했고, 고교시절에는 피아노를 아예 포기한 적도 있다. 미국 유학시절에는 어린 학생들을 레슨하고 식당에서 접시를 닦으며 학비를 벌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연주에서는 ‘고통스러웠던 삶의 흔적들’이 언뜻언뜻 드러난다. 이제 세계음악계는 그를 한국의 대표적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로 꼽고 있다. 지난해 한국인 3명이 결선에 오르는 경사를 일궈냈던 쇼팽 콩쿠르의 심사를 맡았던 그는, 5월 아일랜드에서 열리는 ‘더블린 국제 피아노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지난해 세계적 권위의 ‘쇼팽 콩쿠르’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던 강교수가 수년 전부터 주장해온 것은 ‘클래식 인구의 저변 확대’. 음악 영재를 키워내는 것, 혹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연주자 몇 명을 배출하는 것은 두번째 목표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가 내세우는 지론은 ‘대중의 클래식화’. 음악 장사꾼들이 내세우는 ‘클래식의 대중화’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는 논리다. 음악에 설탕과 조미료를 뿌려 대중을 미혹하는 것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중에게 제대로 된 음악의 길을 안내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강교수는 이를 위해 지난 수년간 해설과 연주를 병행하는 ‘렉처 콘서트’를 숱하게 펼쳐왔다.
“가장 필요한 건 교육이 달라져야 하는 것이죠. 입시 위주의 교육, 실용주의적 교육에서 한발 벗어나서 인성과 정서를 생각하는 교육으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초등학교때부터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해요. 연주자들도 돈과 명예만 좇기보다는 대중과 함께 한국음악을 살찌워나가야 합니다.”
강교수는 국민 5명 가운데 1명이 똑같은 영화를 보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신드롬에 흔들리는 사회는 위험하다”며 “영화 한 편이 1천만명을 돌파하는 것보다 2백만명이 5편의 영화를 보는 사회가 문화적으로 훨씬 건강하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문화다양성’을 가꿔야 한다는 뜻이다. 월드컵 열기로 한국이 한창 뜨겁게 달아올랐던 2002년 여름, 강교수는 콘서트홀에서 ‘느린 음악의 대명사’인 바흐를 연주하면서 청중과 만나고 있었다. 그는 “당시의 월드컵은 국민적 축제였음에 틀림없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 어느 한구석에서 바흐도 숨쉬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충남 천안 모 학교의 음악교사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피아노를 쳤던 강교수.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출발한 데다 손마저 작았다. 어린 시절에는 엄지와 검지 사이를 칼로 째는 ‘자학’을 하기도 했고, 고교시절에는 피아노를 아예 포기한 적도 있다. 미국 유학시절에는 어린 학생들을 레슨하고 식당에서 접시를 닦으며 학비를 벌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연주에서는 ‘고통스러웠던 삶의 흔적들’이 언뜻언뜻 드러난다. 이제 세계음악계는 그를 한국의 대표적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로 꼽고 있다. 지난해 한국인 3명이 결선에 오르는 경사를 일궈냈던 쇼팽 콩쿠르의 심사를 맡았던 그는, 5월 아일랜드에서 열리는 ‘더블린 국제 피아노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한국을 이끌 60인] 강충모의 ‘클래식 생각’
기사입력 2006-02-12 17:26 최종수정 2006-02-12 17:26-한국의 클래식 음악가들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왜 그런가?
“음악은 근본적으로 자아 도취에서 출발한다. 음악인들이 자기중심적 사고에 익숙하고 주변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음악을 깊이 공부하다 보면 또 다른 해답을 얻게 된다. 음악은 결국 사회와 인간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위대한 음악적 모티브는 대부분 역사의 한 장면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크로스오버나 퓨전에 대한 생각은?
“난 거부감을 느낀다. 취지나 정체성이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음악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상업주의의 소산이다. 난 가요도 좋아하고 재즈도 좋아한다. 하지만 모차르트 소나타를 재즈로 연주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요즘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음악적 이해도와 열정은?
“인터넷이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많이 미친다. 너무 쉽게 답을 얻으니까. 스스로 고민해서 해답을 찾아가는 훈련이 무척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해석의 깊이가 떨어진다. ‘이 부분에서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서 연주해라’라고 주문하면 이해를 잘 못한다. ‘작게 쳐요, 크게 쳐요?’라고 되묻는다. 답답한 노릇이다.”
-앞으로 기대되는 젊은 연주자로 누굴 꼽을 만한가?
“피아니스트로는 쇼팽 콩쿠르를 통해 널리 알려진 임동민·동혁 형제와 손열음을 역시 꼽아야겠다. 바이올린에서는 권혁주, 신현수, 신아라가 많이 기대된다. 첼로에는 강승민이 있다. 아, 첼로에서 고봉인도 빼놓을 수 없는 재목이다.”
〈문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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