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통화는 몇번 한 적이 있지만, 이경숙 선생과 직접 만난 건 처음이다. 호암아트홀의 착한 다미가 이선생이 모차르트 전곡 연주회를 내리닫이로 때린다는 소식을 알려줬다. 흠...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나는 대학에서 정년 퇴임까지 한 이선생이 나흘만에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을 완주한다는 사실 자체에 일단 경외심을 느꼈다. 그래서 만났다. 하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뭐 그냥 피아니스트겠지... 혹시 좀 피곤한 사람은 아닐까... 등등. 그것은 '음악가 일반'에 대한 내 선입견 때문이었다. 까탈스럽고 자기밖에 모르는 깍쟁이들이라는 생각. 사실, 연주자들 가운데는 그런 사람들이 꽤 있기도 하다.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대면한 이선생, 참으로 시원시원하고 화통한 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 편견이 와장창 깨진 건 아니었다. 난 지금도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한데 한가지 주지할 만한 사실은, 그래도 피아니스트들 중에는 이것저것 기분좋게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들이 꽤 많다는 점이다. 그것이 음악에 대한 것이든 아니면 세상살이에 대한 것이든.
왜 그럴까? 아마 피아니스트야말로 음악에 대해 가장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래서 이선생과의 대화는 여러 가지 갈래로 뻗어나가면서 두어시간쯤 신나게 이어졌던 것 같다.
마지막에 그가 말했다. "문부장은 내 연주회에 오지 마세요." "왜요?" "에이 그냥, 문부장이 갖고 있는 옛날 LP로 에드빈 피셔 선생의 연주를 들으세요." 그렇게 과공(過恭)을 내비쳤던 이선생의 연주회에, 나는 결국 가지 못하고 말았다. 본의 아니게. 그래도 이선생이 전곡 연주를 라이브로 녹음한 생생한 음반을 보내주셨으니 다행이다.
나는 대학에서 정년 퇴임까지 한 이선생이 나흘만에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을 완주한다는 사실 자체에 일단 경외심을 느꼈다. 그래서 만났다. 하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뭐 그냥 피아니스트겠지... 혹시 좀 피곤한 사람은 아닐까... 등등. 그것은 '음악가 일반'에 대한 내 선입견 때문이었다. 까탈스럽고 자기밖에 모르는 깍쟁이들이라는 생각. 사실, 연주자들 가운데는 그런 사람들이 꽤 있기도 하다.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대면한 이선생, 참으로 시원시원하고 화통한 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 편견이 와장창 깨진 건 아니었다. 난 지금도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한데 한가지 주지할 만한 사실은, 그래도 피아니스트들 중에는 이것저것 기분좋게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들이 꽤 많다는 점이다. 그것이 음악에 대한 것이든 아니면 세상살이에 대한 것이든.
왜 그럴까? 아마 피아니스트야말로 음악에 대해 가장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래서 이선생과의 대화는 여러 가지 갈래로 뻗어나가면서 두어시간쯤 신나게 이어졌던 것 같다.
마지막에 그가 말했다. "문부장은 내 연주회에 오지 마세요." "왜요?" "에이 그냥, 문부장이 갖고 있는 옛날 LP로 에드빈 피셔 선생의 연주를 들으세요." 그렇게 과공(過恭)을 내비쳤던 이선생의 연주회에, 나는 결국 가지 못하고 말았다. 본의 아니게. 그래도 이선생이 전곡 연주를 라이브로 녹음한 생생한 음반을 보내주셨으니 다행이다.
이경숙 “모차르트보다 2배 더 살고 나니 음악이 제대로 들려”
ㆍ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릴레이 연주
‘노익장’이라고 해도 되겠다. 피아니스트 이경숙(66)이 모차르트의 소나타 전곡을 나흘에 걸쳐 완주한다. 약 1년의 시간을 갖고 전곡을 소화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나흘 동안 18곡을 잇달아 몰아붙이는 연주회는 드물었다. 엄청난 연습량을 감당하기 어려운 탓이다. 게다가 모차르트의 소나타는 비슷한 악구가 다른 곡에 또 등장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까닭에, 연주자를 몹시 헷갈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젊은 피아니스트에게도 ‘연속 완주’는 쉽사리 엄두를 내기 힘든 도전. 하물며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 도전을 감행하다니.
아니나 다를까. 지난 23일 만난 피아니스트 이경숙은 왼쪽 팔목의 통증부터 호소했다. “늙긴 늙었나 봐요. 병원에 갔더니 피아노 치지 말고 쉬래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했더니, 약 주고 압박 테이프 둥둥 감아주대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선이 굵고 윤곽이 뚜렷한 외모. 젊은 시절에는 ‘미모의 피아니스트’로도 이름을 날렸던 그는 뜻밖에도 <삼국지>의 ‘장비’처럼 웃었다. 그에게 던진 첫 질문은 “베토벤도 있는데, 왜 하필 모차르트냐?”라는 것. 이에 대한 답변도 화통했다.
“사실은 저도 베토벤을 가장 좋아해요. 만약 생애 마지막으로 딱 한 번의 연주 기회가 주어진다면,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할 겁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가까우면서도 먼 음악가죠. 연주하면 할수록 접근하기 어려워요. 그런데 모차르트는 달라요. 그는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죠. 40년 넘게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어오면서, 항상 그와 같이 살아온 느낌이에요. 그를 베토벤보다 먼저 연주하는 게 순서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말한다면, 여성 연주자들에게서 ‘공주병’을 발견하는 건 별로 드문 일이 아니다. 물론 남자들의 ‘왕자병’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들은 대부분 연주회를 코앞에 둔 음악을 “최고로 사랑하는 곡” 운운하면서 홍보에 열을 올리게 마련이다. 한데 이경숙은 모차르트를 연습하면서도 “베토벤을 더 좋아한다”거나, “모차르트 소나타는 18곡인데, 베토벤은 32곡이어서 너무 벅차다”는 둥, 마케팅을 전혀 개의치 않는 발언으로 기자를 즐겁게 했다.
하지만 그는 “모차르트보다 두 배쯤 살고 나니, 이제야 그의 음악이 제대로 들려온다”며 “그가 남긴 음악은 단순하고 편안하지만 사람의 인생을 관통하는 숱한 이야기를 함축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번에는 녹음 계획도 있어요. 이게 저한테 첫 번째 녹음입니다. 저는 음반을 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눈만 뜨고 나면 세계적 연주자들의 음반이 쏟아져 나오는데, 뭐 나까지 그럴 필요가 있겠냐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나이가 점점 드니까, 이제 내 음악을 정리해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에 모차르트 전곡 연주회를 라이브로 녹음할 겁니다.”
“공식 데뷔가 언제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기억을 되짚더니 “미국에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던 1968년을 데뷔로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는 한 해 전에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에 입상하면서 피아니스트로서의 일보를 내디뎠다. 하지만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미국 전역으로 방영되면서 ‘피아니스트 이경숙’의 이름을 각인시켰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올해로 데뷔 42년. 긴 세월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피란지였던 부산 영도의 이화여고 텐트 가교사(假校舍)에서 힘겹게 열렸던 제1회 이화경향콩쿠르. “남자아이처럼 꾸미고 나왔던 깜찍한 초등학교 2학년”(피아니스트 신수정의 회고)이 어느새 칠순을 바라볼 만큼 세월이 훌쩍 흐르고 말았다. 그는 당시의 이야기가 나오자 또 장비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아유, 말도 마세요. 우리 아버지가 저를 남자처럼 키웠거든. 저는 싫었죠. 치마가 너무 입고 싶었어요. 엄마하고 부산 국제시장에 나갔다가 정말로 예쁜 셔츠와 치마를 봤거든. 토끼가 그려진 셔츠에 초록색 치마였는데, 그게 너무 입고 싶었죠. 그런데 엄마가 ‘콩쿠르에 나가면 저걸 사주마’ 그러시는 거예요. 그 옷을 얻어 입고 싶은 마음에 나갔던 거죠. 그걸 입고 바흐의 ‘인벤션’을 쳤어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추억이다. 그는 콩쿠르로 화제가 넘어가자 “처음으로 털어놓는 이야기”라며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에 출전했던 경험도 꺼내놨다. 뜻밖이었다. 35년 전에, 그 권위 있는 콩쿠르에 한국 출신 피아니스트가 출전했었다니. 이경숙은 “생전의 클라라 하스킬이 보여준 꾸밈없고 진정한 연주를 너무 좋아해서 그 콩쿠르에 나갔다”며 “세 명을 뽑는 최종 결선까지 올랐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우승자는 프랑스 출신의 피아니스트 미셸 달베르토. 그러나 우승자 1인만 선발하는 콩쿠르였던 까닭에 이경숙의 이름은 묻히고 말았다. 본인 스스로도 “떨어졌는데 뭘”이라며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저는 언제나 피아노를 사랑했지만, 음악가로 명성을 떨치고 싶은 야심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연주자로서뿐 아니라 한 여자로서도 힘든 일이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피아노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으니 고마운 일이죠. 게다가 이 나이에 기분 좋게 모차르트 전곡을 연습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죠.” 연주회는 다음달 14일부터 18일까지(16일은 제외), 호암아트홀.
‘노익장’이라고 해도 되겠다. 피아니스트 이경숙(66)이 모차르트의 소나타 전곡을 나흘에 걸쳐 완주한다. 약 1년의 시간을 갖고 전곡을 소화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나흘 동안 18곡을 잇달아 몰아붙이는 연주회는 드물었다. 엄청난 연습량을 감당하기 어려운 탓이다. 게다가 모차르트의 소나타는 비슷한 악구가 다른 곡에 또 등장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까닭에, 연주자를 몹시 헷갈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젊은 피아니스트에게도 ‘연속 완주’는 쉽사리 엄두를 내기 힘든 도전. 하물며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 도전을 감행하다니.
“사실은 저도 베토벤을 가장 좋아해요. 만약 생애 마지막으로 딱 한 번의 연주 기회가 주어진다면,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할 겁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가까우면서도 먼 음악가죠. 연주하면 할수록 접근하기 어려워요. 그런데 모차르트는 달라요. 그는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죠. 40년 넘게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어오면서, 항상 그와 같이 살아온 느낌이에요. 그를 베토벤보다 먼저 연주하는 게 순서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말한다면, 여성 연주자들에게서 ‘공주병’을 발견하는 건 별로 드문 일이 아니다. 물론 남자들의 ‘왕자병’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들은 대부분 연주회를 코앞에 둔 음악을 “최고로 사랑하는 곡” 운운하면서 홍보에 열을 올리게 마련이다. 한데 이경숙은 모차르트를 연습하면서도 “베토벤을 더 좋아한다”거나, “모차르트 소나타는 18곡인데, 베토벤은 32곡이어서 너무 벅차다”는 둥, 마케팅을 전혀 개의치 않는 발언으로 기자를 즐겁게 했다.
하지만 그는 “모차르트보다 두 배쯤 살고 나니, 이제야 그의 음악이 제대로 들려온다”며 “그가 남긴 음악은 단순하고 편안하지만 사람의 인생을 관통하는 숱한 이야기를 함축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번에는 녹음 계획도 있어요. 이게 저한테 첫 번째 녹음입니다. 저는 음반을 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눈만 뜨고 나면 세계적 연주자들의 음반이 쏟아져 나오는데, 뭐 나까지 그럴 필요가 있겠냐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나이가 점점 드니까, 이제 내 음악을 정리해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에 모차르트 전곡 연주회를 라이브로 녹음할 겁니다.”
“공식 데뷔가 언제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기억을 되짚더니 “미국에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던 1968년을 데뷔로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는 한 해 전에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에 입상하면서 피아니스트로서의 일보를 내디뎠다. 하지만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미국 전역으로 방영되면서 ‘피아니스트 이경숙’의 이름을 각인시켰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올해로 데뷔 42년. 긴 세월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피란지였던 부산 영도의 이화여고 텐트 가교사(假校舍)에서 힘겹게 열렸던 제1회 이화경향콩쿠르. “남자아이처럼 꾸미고 나왔던 깜찍한 초등학교 2학년”(피아니스트 신수정의 회고)이 어느새 칠순을 바라볼 만큼 세월이 훌쩍 흐르고 말았다. 그는 당시의 이야기가 나오자 또 장비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아유, 말도 마세요. 우리 아버지가 저를 남자처럼 키웠거든. 저는 싫었죠. 치마가 너무 입고 싶었어요. 엄마하고 부산 국제시장에 나갔다가 정말로 예쁜 셔츠와 치마를 봤거든. 토끼가 그려진 셔츠에 초록색 치마였는데, 그게 너무 입고 싶었죠. 그런데 엄마가 ‘콩쿠르에 나가면 저걸 사주마’ 그러시는 거예요. 그 옷을 얻어 입고 싶은 마음에 나갔던 거죠. 그걸 입고 바흐의 ‘인벤션’을 쳤어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추억이다. 그는 콩쿠르로 화제가 넘어가자 “처음으로 털어놓는 이야기”라며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에 출전했던 경험도 꺼내놨다. 뜻밖이었다. 35년 전에, 그 권위 있는 콩쿠르에 한국 출신 피아니스트가 출전했었다니. 이경숙은 “생전의 클라라 하스킬이 보여준 꾸밈없고 진정한 연주를 너무 좋아해서 그 콩쿠르에 나갔다”며 “세 명을 뽑는 최종 결선까지 올랐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우승자는 프랑스 출신의 피아니스트 미셸 달베르토. 그러나 우승자 1인만 선발하는 콩쿠르였던 까닭에 이경숙의 이름은 묻히고 말았다. 본인 스스로도 “떨어졌는데 뭘”이라며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저는 언제나 피아노를 사랑했지만, 음악가로 명성을 떨치고 싶은 야심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연주자로서뿐 아니라 한 여자로서도 힘든 일이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피아노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으니 고마운 일이죠. 게다가 이 나이에 기분 좋게 모차르트 전곡을 연습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죠.” 연주회는 다음달 14일부터 18일까지(16일은 제외), 호암아트홀.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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