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성시연과 지금까지 세번 만났다. 일단, 눈과 입을 전부 사용하는 큼직한 미소가 보기 좋은 친구다.
야무지지만 차갑지 않다. 누구 앞에서라도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피력하는, 그러면서도 겸손하게 예의를 차릴 줄 아는 사람이다. 게다가 난 그가 독일의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공부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음악밖에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넓은 시야와 안목을 갖춘 지휘자다. 물론 그의 연주회를 몇차례 대면하면서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케스트라를 완벽하게 장악해 고도의 집중력을 끌어내는 카리스마, 아울러 관객의 눈과 귀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당기는 에너지는 아직 좀 아쉽다. 하지만 이제 그는 30대 중반이다. 성시연에게는 분명 또 한번의 점프가 남아 있다. 아마도 그는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만난 성시연은, 외유내강의 기운을 조용히 풍기던 사람이었다.
지휘자 성시연, “말러 교향곡은 내면을 흔드는 마술”
기사입력 2008-09-17 17:39 최종수정 2008-09-17 20:11
ㆍ말러가 겪은 세기말 불안감…현대인의 파편적 삶과 통해
ㆍ4일 예술의전당서 ‘대지의 노래’ 공연
올해 음악계의 최대 화두는 역시 ‘말러’다. 탄생 150주년을 맞은 작곡가 말러를 전면에 내세운 연주회가 국내에서만 20회 남짓 이어질 예정이다. 테이프를 끊는 이는 지휘자 성시연(34). 미국 보스턴 심포니와 서울시향의 부지휘자를 겸하고 있는 이 젊은 지휘자가 4일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이는 교향곡 ‘대지의 노래’가 올해 펼쳐질 ‘말러 향연’의 첫 무대다. 이른바 ‘말러리안’으로 불리는 충성도 높은 애호가층을 거느린 세기말 작곡가 말러. 지난 2일 서울시향 음악감독실에서 만난 지휘자 성시연이 말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말러를 전혀 몰랐어요. 1990년대 후반에 베를린으로 유학을 가서야 비로소 말러를 접할 수 있었죠. 저는 여전히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주종목’으로 듣고 있었는데, 어느날 한 친구가 그러는 거예요. ‘너는 왜 말러를 안 듣니?’라고요. 그때 그 친구가 권해줬던 것이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한 말러 교향곡들이었죠. 완전히 빠졌어요. 특히 2번 ‘부활’에 심하게 매료됐죠. 그렇게 음반으로 듣다가 말러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드디어 악보를 보기 시작했는데, 아, 대단했어요. 짧은 마디 안에서도 모든 악기가 각자 개성을 갖고 제 소리를 냈어요. 인간의 내면을 흔드는, 마술 같은 음악이었어요.”
성시연은 2007년 독일 밤베르크에서 열렸던 제2회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차지했다. 당시 지휘했던 곡은 교향곡 1번 ‘거인’. 그보다 한 해 앞선 1회 대회에서 1위를 했던 베네수엘라 출신의 구스타포 두다멜(29)은 현재 미국 LA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다.
‘한창 잘나가는’ 두다멜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좀 아쉽지 않으냐?”고 묻자 성시연은 그저 커다랗게 웃었다. 부산 태생의 그는 잘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이 언제나 밝고 경쾌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말러의 허무와 비탄에 마음을 빼앗기진 않았을 터. 그는 “말러 음악에 매혹된 것은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며 “음악은 결국 삶에서 나오는데, 이상주의자 말러의 방황과 좌절이야말로 그의 음악적 요체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말러는 불행했죠. 오케스트라 단원들과의 불화, 아내의 외도, 자신의 심장병에 대한 공포, 딸의 죽음 등등 정말 갖가지 고통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어요. 워낙 감성적인 사람인 데다 완벽주의적 성향까지 있었으니까 더 힘들었겠죠. 자신의 작품을 리허설하면서 다 바꿔버리고, 연주 후에 또 바꾸고…. 말러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물론 그의 음악에도 밝고 경쾌한 부분은 있지요. 하지만 그것은 슬픔을 숨기고 있는 웃음 같은 거죠.”
살아 있을 당시엔 작곡가보다 지휘자로 명성을 떨쳤던 말러. 성시연은 이런 일화를 전해줬다. 말러가 자신의 교향곡 ‘부활’의 악보를 들고 당대 최고의 지휘자로 꼽혔던 한스 폰 뷜로를 찾아갔다. 말러가 그 곡을 피아노로 연주해보이자, 당시 뷜로가 던졌던 한 마디는 “너는 그냥 지휘만 해라”였다. 하지만 말러 스스로 “나의 시대가 오고야 말 것”이라고 예견했던 것처럼 ‘작곡가 말러’는 60년대에 접어들면서 부활의 날개를 폈다. 특히 레너드 번스타인은 말러 재평가의 일등 공신으로 꼽힐 만한 지휘자였다. 물론 60년대에 접어들어 비약적으로 발전한 오디오 제작 기술도 한몫했을 것이다. 말러 교향곡의 장대하면서도 복합적인 사운드, 약음과 강음의 극단적인 대비는 고급 품질의 오디오와 어울리면서 더욱 빛났을 것이다. 거기에 성시연은 한마디를 더 보탰다.
“서양은 6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말러 붐이 일었는데, 어찌 보면 그건 당연한 거죠. 말러의 음악은 논리적이기보다 감성적이잖아요. 요즘처럼 몸으로 먼저 반응하는 감성의 시대에 아주 잘 어울리는 작곡가라고 할 수 있죠. 말러의 음악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극단적 표현들이 자주 등장해요. 게다가 세기말에 겪었던 말러의 불안감이 현대인들의 파편화된 삶과도 연결되는 것 아닐까요?”
미완성작 한 곡을 포함해 생전에 말러가 남긴 교향곡은 모두 11곡. 성시연이 4일 서울시향을 지휘해 선보일 ‘대지의 노래’는 말러의 아홉번째 교향곡이다. 하지만 말러는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가 자신의 교향곡에 ‘9번’이라는 번호를 붙인 후 더 이상 교향곡을 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실에 늘 강박감을 느꼈다.
결국 이 곡은 번호 없이 ‘대지의 노래’라는 제목만으로 발표됐고, 말러가 세상을 떠난 6개월 후인 1911년 11월20일 브루너 발터의 지휘로 초연됐다. 대편성의 오케스트라를 반주로 해 테너와 알토가 모두 3곡씩 6곡을 번갈아 부르는 곡. 일반적인 교향곡의 틀을 넘어선, ‘노래로 이뤄진 교향곡’이다. 중국의 이백, 맹호연, 왕유 등의 한시를 한스 베트케가 독일어로 번안한 가사에 말러가 곡을 붙였다.
말러의 허무적이고 낭만적인 세계관이 짙게 반영된 이 곡에 대해 성시연은 “다만 허무와 절망으로 음악이 끝나는 건 아니다. 마지막 순간에 여섯번 반복되는 ‘영원히’라는 가사에 이 곡의 메시지가 담겼다”고 말했다. 성시연이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함께 테너 사이먼 오닐과 메조소프라노 예카테리나 구바노바가 무대에 오른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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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4일 예술의전당서 ‘대지의 노래’ 공연
올해 음악계의 최대 화두는 역시 ‘말러’다. 탄생 150주년을 맞은 작곡가 말러를 전면에 내세운 연주회가 국내에서만 20회 남짓 이어질 예정이다. 테이프를 끊는 이는 지휘자 성시연(34). 미국 보스턴 심포니와 서울시향의 부지휘자를 겸하고 있는 이 젊은 지휘자가 4일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이는 교향곡 ‘대지의 노래’가 올해 펼쳐질 ‘말러 향연’의 첫 무대다. 이른바 ‘말러리안’으로 불리는 충성도 높은 애호가층을 거느린 세기말 작곡가 말러. 지난 2일 서울시향 음악감독실에서 만난 지휘자 성시연이 말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말러를 전혀 몰랐어요. 1990년대 후반에 베를린으로 유학을 가서야 비로소 말러를 접할 수 있었죠. 저는 여전히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주종목’으로 듣고 있었는데, 어느날 한 친구가 그러는 거예요. ‘너는 왜 말러를 안 듣니?’라고요. 그때 그 친구가 권해줬던 것이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한 말러 교향곡들이었죠. 완전히 빠졌어요. 특히 2번 ‘부활’에 심하게 매료됐죠. 그렇게 음반으로 듣다가 말러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드디어 악보를 보기 시작했는데, 아, 대단했어요. 짧은 마디 안에서도 모든 악기가 각자 개성을 갖고 제 소리를 냈어요. 인간의 내면을 흔드는, 마술 같은 음악이었어요.”
성시연은 2007년 독일 밤베르크에서 열렸던 제2회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차지했다. 당시 지휘했던 곡은 교향곡 1번 ‘거인’. 그보다 한 해 앞선 1회 대회에서 1위를 했던 베네수엘라 출신의 구스타포 두다멜(29)은 현재 미국 LA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다.
‘한창 잘나가는’ 두다멜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좀 아쉽지 않으냐?”고 묻자 성시연은 그저 커다랗게 웃었다. 부산 태생의 그는 잘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이 언제나 밝고 경쾌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말러의 허무와 비탄에 마음을 빼앗기진 않았을 터. 그는 “말러 음악에 매혹된 것은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며 “음악은 결국 삶에서 나오는데, 이상주의자 말러의 방황과 좌절이야말로 그의 음악적 요체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말러는 불행했죠. 오케스트라 단원들과의 불화, 아내의 외도, 자신의 심장병에 대한 공포, 딸의 죽음 등등 정말 갖가지 고통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어요. 워낙 감성적인 사람인 데다 완벽주의적 성향까지 있었으니까 더 힘들었겠죠. 자신의 작품을 리허설하면서 다 바꿔버리고, 연주 후에 또 바꾸고…. 말러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물론 그의 음악에도 밝고 경쾌한 부분은 있지요. 하지만 그것은 슬픔을 숨기고 있는 웃음 같은 거죠.”
살아 있을 당시엔 작곡가보다 지휘자로 명성을 떨쳤던 말러. 성시연은 이런 일화를 전해줬다. 말러가 자신의 교향곡 ‘부활’의 악보를 들고 당대 최고의 지휘자로 꼽혔던 한스 폰 뷜로를 찾아갔다. 말러가 그 곡을 피아노로 연주해보이자, 당시 뷜로가 던졌던 한 마디는 “너는 그냥 지휘만 해라”였다. 하지만 말러 스스로 “나의 시대가 오고야 말 것”이라고 예견했던 것처럼 ‘작곡가 말러’는 60년대에 접어들면서 부활의 날개를 폈다. 특히 레너드 번스타인은 말러 재평가의 일등 공신으로 꼽힐 만한 지휘자였다. 물론 60년대에 접어들어 비약적으로 발전한 오디오 제작 기술도 한몫했을 것이다. 말러 교향곡의 장대하면서도 복합적인 사운드, 약음과 강음의 극단적인 대비는 고급 품질의 오디오와 어울리면서 더욱 빛났을 것이다. 거기에 성시연은 한마디를 더 보탰다.
“서양은 6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말러 붐이 일었는데, 어찌 보면 그건 당연한 거죠. 말러의 음악은 논리적이기보다 감성적이잖아요. 요즘처럼 몸으로 먼저 반응하는 감성의 시대에 아주 잘 어울리는 작곡가라고 할 수 있죠. 말러의 음악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극단적 표현들이 자주 등장해요. 게다가 세기말에 겪었던 말러의 불안감이 현대인들의 파편화된 삶과도 연결되는 것 아닐까요?”
미완성작 한 곡을 포함해 생전에 말러가 남긴 교향곡은 모두 11곡. 성시연이 4일 서울시향을 지휘해 선보일 ‘대지의 노래’는 말러의 아홉번째 교향곡이다. 하지만 말러는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가 자신의 교향곡에 ‘9번’이라는 번호를 붙인 후 더 이상 교향곡을 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실에 늘 강박감을 느꼈다.
결국 이 곡은 번호 없이 ‘대지의 노래’라는 제목만으로 발표됐고, 말러가 세상을 떠난 6개월 후인 1911년 11월20일 브루너 발터의 지휘로 초연됐다. 대편성의 오케스트라를 반주로 해 테너와 알토가 모두 3곡씩 6곡을 번갈아 부르는 곡. 일반적인 교향곡의 틀을 넘어선, ‘노래로 이뤄진 교향곡’이다. 중국의 이백, 맹호연, 왕유 등의 한시를 한스 베트케가 독일어로 번안한 가사에 말러가 곡을 붙였다.
말러의 허무적이고 낭만적인 세계관이 짙게 반영된 이 곡에 대해 성시연은 “다만 허무와 절망으로 음악이 끝나는 건 아니다. 마지막 순간에 여섯번 반복되는 ‘영원히’라는 가사에 이 곡의 메시지가 담겼다”고 말했다. 성시연이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함께 테너 사이먼 오닐과 메조소프라노 예카테리나 구바노바가 무대에 오른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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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심포니 부지휘자 성시연 “영혼을 ‘터치’하는 음악을 꿈꾼다”
기사입력 2008-09-17 17:39 최종수정 2008-09-17 20:11
ㆍ120여년 역사 보스턴심포니첫 여성 부지휘자
“서울시향은 대단히 의욕적인 악단이다. 다만 단원들 개개인의 연주력에 편차가 있어 아쉽다.” 지난 7월 미국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로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러낸 성시연(사진)이 고국 무대에 다시 선다. 1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난 1월에 이어 두 번째로 서울시향을 지휘하는 그를 지난 16일 낮에 만났다. 빠른 걸음걸이에 뒤로 질끈 동여맨 머리, 신중하면서도 논리적인 답변…. 서른두 살의 그는 야무지면서도 겸손했다.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보스턴 심포니의 첫 여성 지휘자인 그는 “나는 지휘자로서 이제 걸음마 단계”라는 말을 인터뷰 내내 서너 번쯤 반복했다. 하지만 “음악이란 모름지기 듣는 이의 영혼을 흔들어야 한다”며 자신의 음악관(觀)을 피력하는 모습에선, 가야 할 길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확신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피아노를 전공하다가 지휘로 방향을 바꿨어요. 내 안에 있는 음악이 피아노를 통해 충분히 표출되지 못한다고 느꼈거든요. 다른 탈출구가 필요했죠. 푸르트뱅글러에게 받았던 감동이 저를 지휘의 길로 이끌었어요. 그분이 베를린필을 이끌고 런던에서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연주하는 동영상을 보다가 전율을 느꼈어요. 지휘자와 단원들의 몰입이 정말 굉장했어요.”
성시연은 한국에서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스위스로 유학했다. 2001년 지휘로 방향을 틀면서 독일의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공부했다. 2006년 게오르그 솔티 콩쿠르 우승, 이듬해에는 구스타프 말러 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을 차지하면서 일약 지휘계의 신성(新星)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 화려한 수상 경력이 “푸르트뱅글러의 브람스 4번이 전해준 전율”보다 실감 나고 설득력이 있진 않다. 성시연은 격렬하게 몰아치는 4악장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끓어올랐다”고 말했다. 그 감동은 음악에 대한 그의 관점으로도 이어진다.
“음악은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영혼과 교감하지요. 요즘에는 화려하고 스펙터클하고 센세이셔널한 연주가 각광 받는 추세인데, 제가 갈 길은 아니라고 봐요. 음악에는 영혼을 ‘터치’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연주를 다 듣고 나면 정처없이 헤매고 싶어지는 것, 제가 꿈꾸는 건 바로 그런 음악을 연주하는 거죠.”
그의 답변은 언뜻 ‘청산유수’처럼 보인다. 하지만 말과 말 사이에는 짧지 않은 ‘사이’가 존재했다. 상당히 신중한 편이다. “존경한다”는 지휘자의 계보도 아니나 다를까 ‘일관성’이 있다. 그는 “푸르트뱅글러, 카를로스 클라이버,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꼽았다. 젊은 시절의 아바도보다는 2000년 이후, 그러니까 암과 싸우면서 새로운 음악의 진경(珍景)을 펼쳐내는 최근의 아바도에게 존경을 표했다.
그가 올해 들어 보여준 바쁜 행보는 ‘여성 지휘자’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주목할 차세대 지휘자’라는 평가를 들을 만하다. 그는 지난 7월20일 보스턴 심포니의 부지휘자로서 드디어 첫 지휘봉을 들었다. 보스턴 글로브는 “그녀의 지휘봉은 우아하면서도 정확했다. 오케스트라와 완벽하게 소통하며 존재감을 빛냈다”고 썼다. 그리고 4일 후, 상임지휘자 제임스 레바인(65)이 신장암 수술로 포디엄에 설 수 없게 되자 그 자리를 대신했다.
기회는 또 찾아왔다. 8월26일에는 미국 할리우드 볼에서 LA필하모닉의 지휘봉을 들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명지휘자 에도 드 바르트가 컨디션 난조로 지휘를 취소한 때문이었다. 성시연은 갑작스레 오른 무대에서 브람스 ‘교향곡 1번’ 등을 연주했다. LA타임스는 “급박한 상황에도 LA필을 잘 이끌 만큼 충분히 준비된 지휘자”라는 호평을 내놨다.
고국에서 두 번째로 지휘봉을 드는 성시연에게 서울시향에 대한 소감과 평가를 어찌 묻지 않을 수 있을까. 그는 이 답변에서 가장 뜸을 들였다. “의욕이 대단하죠. 정명훈 선생이 세계적 수준을 지향한다고 공표한 만큼, 단원들도 그 점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봐요. 물론 단원들 개개인의 실력 차이는 아쉬운 부분이죠. 지휘자 입장에선 어떤 기준에 맞춰 오케스트라와 소통해야 할지 난감할 때도 가끔 있어요.”
그것이 마지막 질문과 대답이었다. 성시연은 서둘러 서울시향 연습실로 향했다. 19일 연주곡은 시벨리우스의 ‘레민카이넨의 귀향’,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 피아노 협연자로는 최근 세계적으로 각광 받는 크로아티아 출신의 데얀 라지치(31)가 무대에 오른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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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9-17 17:39 최종수정 2008-09-17 20:11
ㆍ120여년 역사 보스턴심포니첫 여성 부지휘자
“서울시향은 대단히 의욕적인 악단이다. 다만 단원들 개개인의 연주력에 편차가 있어 아쉽다.” 지난 7월 미국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로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러낸 성시연(사진)이 고국 무대에 다시 선다. 1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난 1월에 이어 두 번째로 서울시향을 지휘하는 그를 지난 16일 낮에 만났다. 빠른 걸음걸이에 뒤로 질끈 동여맨 머리, 신중하면서도 논리적인 답변…. 서른두 살의 그는 야무지면서도 겸손했다.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보스턴 심포니의 첫 여성 지휘자인 그는 “나는 지휘자로서 이제 걸음마 단계”라는 말을 인터뷰 내내 서너 번쯤 반복했다. 하지만 “음악이란 모름지기 듣는 이의 영혼을 흔들어야 한다”며 자신의 음악관(觀)을 피력하는 모습에선, 가야 할 길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확신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피아노를 전공하다가 지휘로 방향을 바꿨어요. 내 안에 있는 음악이 피아노를 통해 충분히 표출되지 못한다고 느꼈거든요. 다른 탈출구가 필요했죠. 푸르트뱅글러에게 받았던 감동이 저를 지휘의 길로 이끌었어요. 그분이 베를린필을 이끌고 런던에서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연주하는 동영상을 보다가 전율을 느꼈어요. 지휘자와 단원들의 몰입이 정말 굉장했어요.”
성시연은 한국에서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스위스로 유학했다. 2001년 지휘로 방향을 틀면서 독일의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공부했다. 2006년 게오르그 솔티 콩쿠르 우승, 이듬해에는 구스타프 말러 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을 차지하면서 일약 지휘계의 신성(新星)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 화려한 수상 경력이 “푸르트뱅글러의 브람스 4번이 전해준 전율”보다 실감 나고 설득력이 있진 않다. 성시연은 격렬하게 몰아치는 4악장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끓어올랐다”고 말했다. 그 감동은 음악에 대한 그의 관점으로도 이어진다.
“음악은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영혼과 교감하지요. 요즘에는 화려하고 스펙터클하고 센세이셔널한 연주가 각광 받는 추세인데, 제가 갈 길은 아니라고 봐요. 음악에는 영혼을 ‘터치’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연주를 다 듣고 나면 정처없이 헤매고 싶어지는 것, 제가 꿈꾸는 건 바로 그런 음악을 연주하는 거죠.”
그의 답변은 언뜻 ‘청산유수’처럼 보인다. 하지만 말과 말 사이에는 짧지 않은 ‘사이’가 존재했다. 상당히 신중한 편이다. “존경한다”는 지휘자의 계보도 아니나 다를까 ‘일관성’이 있다. 그는 “푸르트뱅글러, 카를로스 클라이버,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꼽았다. 젊은 시절의 아바도보다는 2000년 이후, 그러니까 암과 싸우면서 새로운 음악의 진경(珍景)을 펼쳐내는 최근의 아바도에게 존경을 표했다.
그가 올해 들어 보여준 바쁜 행보는 ‘여성 지휘자’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주목할 차세대 지휘자’라는 평가를 들을 만하다. 그는 지난 7월20일 보스턴 심포니의 부지휘자로서 드디어 첫 지휘봉을 들었다. 보스턴 글로브는 “그녀의 지휘봉은 우아하면서도 정확했다. 오케스트라와 완벽하게 소통하며 존재감을 빛냈다”고 썼다. 그리고 4일 후, 상임지휘자 제임스 레바인(65)이 신장암 수술로 포디엄에 설 수 없게 되자 그 자리를 대신했다.
기회는 또 찾아왔다. 8월26일에는 미국 할리우드 볼에서 LA필하모닉의 지휘봉을 들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명지휘자 에도 드 바르트가 컨디션 난조로 지휘를 취소한 때문이었다. 성시연은 갑작스레 오른 무대에서 브람스 ‘교향곡 1번’ 등을 연주했다. LA타임스는 “급박한 상황에도 LA필을 잘 이끌 만큼 충분히 준비된 지휘자”라는 호평을 내놨다.
고국에서 두 번째로 지휘봉을 드는 성시연에게 서울시향에 대한 소감과 평가를 어찌 묻지 않을 수 있을까. 그는 이 답변에서 가장 뜸을 들였다. “의욕이 대단하죠. 정명훈 선생이 세계적 수준을 지향한다고 공표한 만큼, 단원들도 그 점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봐요. 물론 단원들 개개인의 실력 차이는 아쉬운 부분이죠. 지휘자 입장에선 어떤 기준에 맞춰 오케스트라와 소통해야 할지 난감할 때도 가끔 있어요.”
그것이 마지막 질문과 대답이었다. 성시연은 서둘러 서울시향 연습실로 향했다. 19일 연주곡은 시벨리우스의 ‘레민카이넨의 귀향’,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 피아노 협연자로는 최근 세계적으로 각광 받는 크로아티아 출신의 데얀 라지치(31)가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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