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3-26 17:06:41ㅣ수정 : 2009-03-26 19:22:13
피아니스트 호로비츠(1904~89)는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늘 자신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만을 고집했으며, 그것을 보잉 747로 공수해 연주회를 펼치곤 했다. 연주 여행 중에는 언제나 호화로운 호텔방에 묵었고 전속 요리사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었다. 정수기도 자신의 것만을 가지고 다니며 사용했다. 연주회는 반드시 일요일 오후 4시에 열었으며, 담배는 하루에 딱 두 개비, 연습 시간은 하루 두 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그는 거의 평생에 걸쳐 이런 습관들을 고수했다.
하지만 호로비츠는 사람들이 자신의 까다로움을 지적하면 버럭 화를 냈다고 한다. 거기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 그의 항변. 이를테면 자신의 피아노만을 고집했던 것은 손에 익은 악기로 완벽한 연주를 펼치기 위한 결벽증이었고, 연주 여행에 전속 요리사를 대동했던 것은 “고기를 먹지 않는 개인적 신념 때문”이었다. 또 언제나 일요일 오후 4시에 연주회를 시작했던 것은 “그때야말로 내가 가장 생기 넘치는 시간이고, 따라서 관객에게도 최적의 시간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호로비츠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하루에 담배 딱 두 개비는 왜였을까? 아마도 그것은 건강 때문이었던 듯하다. 또 연습을 하루에 두 시간 이상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는 “너무 연습을 많이 하면 연주가 기계적이 돼버린다”고 설명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자신이 연주한 음반도 듣지 않았다. 그는 이에 대해 “그것이 (현재의) 나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연주는 시간과 함께 소멸하며, 과거의 자신마저도 결코 복제하지 않겠다는 것이 호로비츠의 뜻이었다.
이런 식의 결벽증, 다른 이들에게 까다로움으로까지 비쳤던 태도를 고수하며 호로비츠가 도달했던 피아니즘은 어떤 것이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눈부신 테크닉이다. 호로비츠는 누가 보더라도 20세기 피아노 음악사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테크니션이었다. 특히 1930년대의 그는 화려한 기교를 엄청난 음량으로 뿜어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주관성이 농후하게 개입된 낭만적 해석. 호로비츠는 이에 대해 “인쇄된 악보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 내가 평생 동안 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래의 음에 장식을 덧붙이는 등 자신만의 해석으로 연주하는 걸 즐겼고, 같은 곡이더라도 연주할 때마다 음악이 달라지곤 했다. 말하자면 즉흥성이 강했다. 좋게 말하면 ‘마르지 않는 영감’을 가진 연주자였고,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자의적 왜곡을 일삼았던 연주자였던 셈이다. 어쨌든 그는, 객관적이고 역사주의적인 해석이 음악계의 대세를 이루는 20세기 중후반에 들어와서도 낭만적 해석과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는 ‘마지막 로맨티스트’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 호로비츠가 61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86년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귀환 콘서트. 페레스트로이카로 해빙 무드가 한창 번져가던 시절에 마침내 성사됐던 이 연주회는 착잡하면서도 감동적이다. 스카를라티의 소나타에서 라흐마니노프의 ‘WR를 위한 폴카’까지, 82세의 노인이 무려 17곡을 몰아쳤던 연주회. 호로비츠의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달떠 있고 청중은 한 음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음악에 몰입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가 연주되던 순간, 객석 곳곳에서 눈물이 흐른다. 이 역사적인 실황이 최근 국내에 라이선스 DVD(소니비엠지·사진)로 출시됐다. “내가 러시아를 떠날 때 아홉 살이었던 조카가 일흔 살 노인이 됐어”라며 하하 웃던 호로비츠. 그는 3년 후 뉴욕 맨하탄에서 심장마비로 눈을 감는다. 올해는 그가 떠난 지 꼭 20년이 되는 해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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