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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속에 노닐다

아바도 선생에게 꽃 한 송이 바칩니다 아바도의 최강 레퍼토리 '말러'... 그는 갔지만 음반은 남았다 | 기사입력 2014-01-22 20:52 | 최종수정 2014-01-23 13:39 지난 20일 지휘의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가 향년 81세로 타계했다. 이제 그가 남긴 음악의 유산은 음반으로 남았다. 1960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지휘자로 데뷔한 이후, 생전의 그가 모두 몇 타이틀의 음반을 남겼는 지 현재로서는 추정이 쉽지 않다. 그가 현역 지휘자로 활약한 기간이 50년이 넘는 까닭에, 절판·단종된 레코딩이 적지 않은 까닭이다. 다만 현재 유통중인 아바도의 음반은 160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최대의 수입음반 유통사인 N3컴퍼니가 21일 내놓은 리스트에는 모두 167개의 타이틀이 올라와 있다.. 더보기
말러 교향곡... 발레리 게르기예프, 마리스 얀손스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런던 심포니는 2007년에 말러 교향곡 전곡 녹음을 시작해 지난해 마무리했다. '대지의 노래'는 빠져 있는 사이클이다. 자체 레이블인 LSO를 통해 발매된 이 음반들의 음질에 대해 사람들의 불만들이 많은 것 같다. 애초에는 나도 그런 축이었다. 처음 들은 곡이 6번이었는데 소리가 답답하고 밀도가 확 떨어졌다. 무슨 SACD가 이렇게 음질이 맹탕이람! 그렇게 생각했다. 역시 말러는 LP로 들어야지, CD는 정말 못 쓰겠구만 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며칠 후 친구 W의 작업실에서 같은 음반을 다시 들었다. 이 친구의 오디오 시스템은 내 것과 완전히 다른 쪽이다. 하나밖에 없는 나의 '저렴한 시스템'은 최대한 LP쪽에 맞춰져 있다. 쿼드2 진공관에 토렌스 520 턴테이블, 탄노이 스피커로.. 더보기
클라리넷의 재발견, 실내악의 완성 입력 : 2009-07-30-17:22:08ㅣ수정 : 2009-07-30 17:22:09 모차르트가 생애 마지막 무렵에 가장 사랑했던 악기 가운데 클라리넷을 빼놓을 순 없다. 기악 음악의 발전은 악기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게 마련. 목관악기 클라리넷은 모차르트가 맹활약을 펼치던 18세기 후반에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정확한 음정과 풍부한 표현력, 적절한 음량을 갖춘 악기로 점차 발전하면서 오케스트라 속에도 클라리넷 연주자의 자리가 마련되기에 이른다. 그렇게 음악성을 차츰 인정받아가던 클라리넷은 모차르트의 말년에 이르러 악기로서의 존재감을 선명하게 부여받는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이었던 1789년 썼던 ‘클라리넷 5중주 A장조’. 기존의 현악 4중주 편성에 클라리넷 한.. 더보기
카를로스 클라이버, 은둔의 거장 입력 : 2009-06-11-17:41:47ㅣ수정 : 2009-06-11 22:27:45 1990년대 초반에 개봉했던 영화 (Tous les matins du monde)은 두 명의 음악가 이야기다. 루이 14세가 집정했던 17세기 중반, 프랑스의 음악가였던 생트 콜롱브와 마랭 마레가 그 주인공들이다. 둘 다 실존 인물들이다. 바로크 시대의 현악기인 비올라 다 감바의 대가였던 생트 콜롱브는 세속의 영화를 마다하고 초야에 묻혀 사는 ‘은둔형 거장’이고, 반면에 그의 제자인 마랭 마레는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음악가로서의 성공과 명예를 꿈꾸는 야심가다. 영화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두 사람의 삶을 대비시키면서 펼쳐진다. 물론 그 ‘대비’가 때때로 극단적이어서 현실감이 떨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더보기
사티, 먼 곳을 홀로 바라봤던 기인 입력 : 2009-05-21-17:46:27ㅣ수정 : 2009-05-21 17:46:27 사교계의 윤활유 역할을 해왔던 음악은 19세기를 거치면서 ‘절대적이고 숭고한 예술’로 격상됐다. 낭만의 시대를 열어젖힌 베토벤은 ‘성인’의 경지로 추앙받으며 음악의 종주로 자리매김했고,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로 가득했던 연주회장은 조용한 경배의 장소로 바뀌었다. 음악은 그렇게 100년의 세월을 거치며 스스로의 존재를 육중하게 키웠다. 선율과 구조도 점점 복잡하고 무겁고 드라마틱해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19세기 후반, 낭만의 만개(滿開)였던 동시에 소멸이었던 ‘후기 낭만’의 시대가 도래했다. 바그너의 음악극과 베르디의 오페라, 리스트의 교향시가 음악을 주도했고 그 뒤를 이어 프랑크와 브루크너, 브람스가 등장했다. 그보다.. 더보기
라흐마니노프, 망명지에서 꽃핀 초인적 기교 입력 : 2009-05-14-17:42:36ㅣ수정 : 2009-05-14 17:42:37 라흐마니노프(1873~1943·사진)는 1918년에 미국으로 망명했다. 조국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난 이듬해였다. 그는 특별한 정치적 견해를 밝혔던 적은 없었지만, 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혁명 직후의 러시아를 떠나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조부와 부친은 차르 군대의 장교였고 어머니도 장군의 딸이었다. 10월혁명 3주 후, 라흐마니노프는 스웨덴 스톡홀름으로부터 연주 요청을 받고는 가족과 함께 기차를 탔다. 그후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스톡홀름 연주회를 마친 그는 이듬해 미국으로 망명, 세상을 떠날 때까지 러시아계 미국인으로 살았다. 그렇다고 라흐마니노프가 미국을 ‘자유의 땅’으로 생각하면서 동경했던 .. 더보기
목숨과 맞바꾼 연주 ‘심장이 터질 듯’ 입력 : 2009-04-16 17:29:05ㅣ수정 : 2009-04-16 17:29:07 오늘은 재즈 색소폰 연주자 스탄 게츠의 이야기로 문을 열어야겠다. 1991년 3월3일부터 6일까지, 그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몽마르트르 클럽에서 연주했다. 세상을 떠나기 정확히 석달 전이었다. 당시 그는 골수까지 쳐들어온 암과 싸우고 있었다. 결국 유작이 되고 만 몽마르트르 실황. 이 앨범에서 최고의 연주는 타이틀곡 ‘People Time’이다. 그것은 지금 들어도 가슴 절절한 명연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스탄 케츠는 평상시처럼 상쾌하고 부드러운 리듬을 구사하지 못하고,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듯한 특유의 몽환적 비브라토도 들려주지 못한다. 그날 스탄 게츠의 테너 색소폰은 목쉰 소리로 힘겹게 운다. 매끈하게 이어져야 할.. 더보기
호로비츠... 61년만의 귀환 입력 : 2009-03-26 17:06:41ㅣ수정 : 2009-03-26 19:22:13 피아니스트 호로비츠(1904~89)는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늘 자신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만을 고집했으며, 그것을 보잉 747로 공수해 연주회를 펼치곤 했다. 연주 여행 중에는 언제나 호화로운 호텔방에 묵었고 전속 요리사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었다. 정수기도 자신의 것만을 가지고 다니며 사용했다. 연주회는 반드시 일요일 오후 4시에 열었으며, 담배는 하루에 딱 두 개비, 연습 시간은 하루 두 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그는 거의 평생에 걸쳐 이런 습관들을 고수했다. 호로비츠보다 열한 살 아래인 리히테르는 어땠던가? 무척 대비된다. 러시아 태생의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두 사람은 인간적 풍모뿐 아니라 삶의 궤적에서도 많이 달.. 더보기
청력 잃고 더 빛난 예술 입력 : 2009-03-19 17:46:02ㅣ수정 : 2009-03-19 18:35:27 베토벤은 26세 때부터 청력을 잃기 시작했다. 50세 무렵이 되면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된다. 말하자면 그의 청력 상실은 2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서서히 진행됐다. 하지만 체코의 작곡가 스메타나(1824~1884)는 경우가 달랐다. 그는 느닷없이 청력을 잃는다. 50세였던 1874년. 환청이 점점 심해지더니 그해 10월에 접어들면서 완전히 들리지 않는 상태가 됐다. 스메타나는 왜 갑자기 청력을 잃었을까. 가장 유력하게 제기되는 것은 ‘매독설’이다. 독일의 내과의사 디터 케르너는 (현암사)이라는 책에서 스메타나의 청력 상실을 “매독에서 비롯된 진행성 마비”로 설명한다. 그는 베토벤에 대해서도 같은 설명을 내놓는다. 다.. 더보기
라흐마니노프의 격정, 쇼스타코비치의 냉소 입력 : 2009-03-12 17:25:18ㅣ수정 : 2009-03-12 23:49:10 첼로 소나타’의 역사에 러시아 작곡가의 이름이 확실하게 등재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였다. 라흐마니노프가 ‘첼로 소나타 g단조’를 작곡했던 것이 1901년. 이 곡은 러시아 작곡가에 의해 쓰여진 첼로 소나타 중에서 오늘날 가장 빈번히 연주되는 곡이다. 물론 그 전에도 러시아에 첼로 소나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안톤 루빈스타인(1829~1894)은 1852년에 ‘소나타 D장조’를, 1857년에는 ‘소나타 G장조’를 썼다. 하지만 이 두 곡은 오늘날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라흐마니노프에 이르러서야 ‘첼로 소나타’라는 장르의 문이 제대로 열렸고, 이어서 미야스코프스키,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등의 작곡가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