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5-21-17:46:27ㅣ수정 : 2009-05-21 17:46:27
사교계의 윤활유 역할을 해왔던 음악은 19세기를 거치면서 ‘절대적이고 숭고한 예술’로 격상됐다. 낭만의 시대를 열어젖힌 베토벤은 ‘성인’의 경지로 추앙받으며 음악의 종주로 자리매김했고,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로 가득했던 연주회장은 조용한 경배의 장소로 바뀌었다. 음악은 그렇게 100년의 세월을 거치며 스스로의 존재를 육중하게 키웠다. 선율과 구조도 점점 복잡하고 무겁고 드라마틱해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19세기 후반, 낭만의 만개(滿開)였던 동시에 소멸이었던 ‘후기 낭만’의 시대가 도래했다. 바그너의 음악극과 베르디의 오페라, 리스트의 교향시가 음악을 주도했고 그 뒤를 이어 프랑크와 브루크너, 브람스가 등장했다. 그보다 더 젊은 세대로는 말러와 드뷔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이 있었다.
바로 그때, 엉뚱한 곳을 바라보던 이단아. 그가 바로 에릭 사티(1866~1925)였다. 이 프랑스 작곡가야말로 19세기 끝 무렵의 음악 지형도에서 가장 ‘독특한’ 개성을 보여준 음악가였다. 첫곡은 피아노를 위해 작곡한 짧고 단순한 음악 ‘오지브’(Ogives). 사티가 스무살에 쓴 이 데뷔작은 복잡하고 장대한 음악이 유행하던 당시에 느닷없이 튀어나온 중세 그레고리안 성가 스타일의 ‘단순 음악’이었다. 당연히 청중과 평론가들의 관심 밖이었을 터. 한마디로 말해 음악으로 인정받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파리 음악원을 중도에 때려치운 사티는 프랑스의 음악적 주류사회에 들어설 만한 백그라운드가 전혀 없었고, 카바레와 클럽을 전전하며 피아노 연주로 밥벌이를 하던 가난한 작곡가 지망생에 불과했다. 그러나 ‘단순함’을 향한 사티의 추구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듬해 완성한 ‘3개의 사라방드’, 또 그 이듬해에 작곡한 ‘3개의 짐노페디’에서도 신비하면서도 단순한 선율을 계속 반복했다. 1889년 썼던 ‘6개의 그노시엔느’에서도 마찬가지. 오늘날 ‘짐노페디’와 함께 가장 자주 연주되는 이 음악도 짧은 악절을 쉼없이 반복하다 어느새 스르르 사라진다. 바로 이 단순하고도 흐릿한 존재감, 그것이 바로 1925년 세상을 떠난 사티의 음악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어일 터다.
사티는 자신의 독특한 작법을 고수하면서도, 한편으론 스스로에게 작곡가로서의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닌지 늘 불안해 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자신의 작품에 조롱기 가득한 제목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를 테면 ‘엉성한 전주곡’(1912), ‘정말로 엉성한 개를 위한 전주곡’(1912), ‘말라빠진 태아’(1913) 같은 곡이 그렇다. 그것은 자신의 음악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풍자였을까, 아니면 스스로를 향한 조롱이었을까?
일본 도쿄대 대학원 미학과 교수인 와타나베 히로시(56)가 쓴 <청중의 탄생>이라는 책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사티를 20세기 음악의 방향성을 제시한 선구자로 평가한다. 엄숙한 콘서트홀을 빠져나와 일상의 삶 속에서 구현되는 음악, 바로 그것을 사티가 최초로 구현했다는 게 와타나베의 평이다. 와타나베는 “연주회장에서 연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배경음악으로 흐르도록 작곡된 음악”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사티는 ‘음이라는 타일을 깐 보도’라는 곡을 초연했을 당시,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려는 청중에게 “계속 말하세요. 움직이세요. 음악을 듣는 게 아닙니다!”라면서 화를 내고 돌아다녔다고 전해진다.
19세기 말의 ‘왕따 음악가’였던 사티. 가난한 독신자로 평생을 산 그는 세상을 떠난 지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미니멀 음악’으로 부활한다. 단순한 패턴을 반복적으로 연주하는 미니멀 음악은 60년대에 들어서면서 현대 음악의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잡았고, 프랑스의 영화감독 루이 말은 자신의 영화 <도깨비불>(1963)에서 사티의 음악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와타나베는 앞서 언급한 책에서 “(사티는) 미니멀로 대표되는 현대 음악의 한 경향을 완벽하게 선취하고 있는 음악가”라고 평한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바로 그때, 엉뚱한 곳을 바라보던 이단아. 그가 바로 에릭 사티(1866~1925)였다. 이 프랑스 작곡가야말로 19세기 끝 무렵의 음악 지형도에서 가장 ‘독특한’ 개성을 보여준 음악가였다. 첫곡은 피아노를 위해 작곡한 짧고 단순한 음악 ‘오지브’(Ogives). 사티가 스무살에 쓴 이 데뷔작은 복잡하고 장대한 음악이 유행하던 당시에 느닷없이 튀어나온 중세 그레고리안 성가 스타일의 ‘단순 음악’이었다. 당연히 청중과 평론가들의 관심 밖이었을 터. 한마디로 말해 음악으로 인정받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파리 음악원을 중도에 때려치운 사티는 프랑스의 음악적 주류사회에 들어설 만한 백그라운드가 전혀 없었고, 카바레와 클럽을 전전하며 피아노 연주로 밥벌이를 하던 가난한 작곡가 지망생에 불과했다. 그러나 ‘단순함’을 향한 사티의 추구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듬해 완성한 ‘3개의 사라방드’, 또 그 이듬해에 작곡한 ‘3개의 짐노페디’에서도 신비하면서도 단순한 선율을 계속 반복했다. 1889년 썼던 ‘6개의 그노시엔느’에서도 마찬가지. 오늘날 ‘짐노페디’와 함께 가장 자주 연주되는 이 음악도 짧은 악절을 쉼없이 반복하다 어느새 스르르 사라진다. 바로 이 단순하고도 흐릿한 존재감, 그것이 바로 1925년 세상을 떠난 사티의 음악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어일 터다.
사티는 자신의 독특한 작법을 고수하면서도, 한편으론 스스로에게 작곡가로서의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닌지 늘 불안해 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자신의 작품에 조롱기 가득한 제목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를 테면 ‘엉성한 전주곡’(1912), ‘정말로 엉성한 개를 위한 전주곡’(1912), ‘말라빠진 태아’(1913) 같은 곡이 그렇다. 그것은 자신의 음악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풍자였을까, 아니면 스스로를 향한 조롱이었을까?
일본 도쿄대 대학원 미학과 교수인 와타나베 히로시(56)가 쓴 <청중의 탄생>이라는 책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사티를 20세기 음악의 방향성을 제시한 선구자로 평가한다. 엄숙한 콘서트홀을 빠져나와 일상의 삶 속에서 구현되는 음악, 바로 그것을 사티가 최초로 구현했다는 게 와타나베의 평이다. 와타나베는 “연주회장에서 연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배경음악으로 흐르도록 작곡된 음악”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사티는 ‘음이라는 타일을 깐 보도’라는 곡을 초연했을 당시,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려는 청중에게 “계속 말하세요. 움직이세요. 음악을 듣는 게 아닙니다!”라면서 화를 내고 돌아다녔다고 전해진다.
19세기 말의 ‘왕따 음악가’였던 사티. 가난한 독신자로 평생을 산 그는 세상을 떠난 지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미니멀 음악’으로 부활한다. 단순한 패턴을 반복적으로 연주하는 미니멀 음악은 60년대에 들어서면서 현대 음악의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잡았고, 프랑스의 영화감독 루이 말은 자신의 영화 <도깨비불>(1963)에서 사티의 음악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와타나베는 앞서 언급한 책에서 “(사티는) 미니멀로 대표되는 현대 음악의 한 경향을 완벽하게 선취하고 있는 음악가”라고 평한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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