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6-11-17:41:47ㅣ수정 : 2009-06-11 22:27:45
1990년대 초반에 개봉했던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Tous les matins du monde)은 두 명의 음악가 이야기다. 루이 14세가 집정했던 17세기 중반, 프랑스의 음악가였던 생트 콜롱브와 마랭 마레가 그 주인공들이다. 둘 다 실존 인물들이다. 바로크 시대의 현악기인 비올라 다 감바의 대가였던 생트 콜롱브는 세속의 영화를 마다하고 초야에 묻혀 사는 ‘은둔형 거장’이고, 반면에 그의 제자인 마랭 마레는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음악가로서의 성공과 명예를 꿈꾸는 야심가다.
영화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두 사람의 삶을 대비시키면서 펼쳐진다. 물론 그 ‘대비’가 때때로 극단적이어서 현실감이 떨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인물과 상황 전개라는 것이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으면 ‘보는 재미’가 적은 법 아니겠는가. 이 영화는 두 인물의 극적 대비와 함께 그들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미묘한 조명, 수첩에 적어두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는 아포리즘적 대사 등으로 꽤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물론 <세상의 모든 아침>은 허구다. 사실에 대한 고증보다, ‘아마, 그렇지 않았을까’라는 추측과 상상으로 두 음악가의 삶을 재구성했다.
20세기의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1930~2004·사진). 그도 영화 속의 생트 콜롱브처럼 은둔의 삶을 살았다. 그는 슈투트가르트 가극장의 음악감독직을 사임했던 1973년부터 세상을 떠나던 2004년까지, 적어도 생애의 마지막 30년간 어디에도 몸을 담지 않았던 ‘은둔의 프리랜서’였다. 그리고는 아주 가끔씩, 그것이 빈필하모닉이든 베를린필하모닉이든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특별한 명연’을 남기곤 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원했을 때 어느 오케스트라든 지휘할 수 있었던 ‘공인된’ 명인이었다.
이 ‘은둔형 마에스트로’는 인터뷰를 싫어했다. 음반 녹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녹음을 “공포스럽다”고 말하며 저어했다. 이 때문에 극히 소량의 음반만을 남겼으며, 그것들은 당연히 ‘희소가치’가 더해지면서 명반의 반열에 이름을 속속 올렸다.
클라이버가 보여준 ‘은둔’의 절정은 언제였던가? 그것은 베를린필하모닉의 종신지휘자였던 ‘황제’ 카라얀이 세상을 떠난 89년에 찾아왔다. 당시 음악계의 호사가들은 클라이버가 당연히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점쳤지만, 그는 이 ‘영예로운 포디엄’의 주인이 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돌이켜보자면 그것은 얼마나 탁월한 선택이었던가? 클라이버는 그렇게 자신의 노선을 끝까지 지켰고, 덕분에 카라얀과는 또 다른 ‘지휘의 신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2004년 클라이버가 세상을 떠난 후, 미국의 음악평론가 헨리 포겔은 이렇게 썼다. “이상한 수수께끼의 주인공. 하지만 부인할 수 없이 세계 음악계에 우뚝 솟은 지휘자. 가장 위대한 지휘자라고 추앙받으면서도 거의 지휘를 하지 않았던 사람.”
‘은둔’의 삶을 시작했던 73년, 클라이버가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오페라단을 지휘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를 연주했던 음반이 최근 국내에 수입됐다. 그동안 DVD로, 혹은 해적판 음반으로 종종 접할 수 있었던 실황이다. 하지만 이번에 수입된 음반은 오스트리아의 ‘오르페오’ 레이블에서 원본 마스터를 SACD로 재생해낸 공식 음반. 지난해 말부터 해외 사이트를 통해 개별적으로 구입 해온 애호가들도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국내 음반가게 어디서라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음질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지금까지 들었던 클라이버의 그 어떤 ‘장미의 기사’보다도 생생하다. 일본의 음악평론가 기요미 쓰토시는 이 음반에 대해 “오케스트라가 살아 있는 것처럼 요동친다”는 평을 내놓았다. 물론 약간의 ‘주례사’ 혐의가 있긴 하지만, 사실을 크게 벗어난 평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클래식 초심자여서 ‘장미의 기사’ 전곡을 듣는 것이 좀 버겁다면, 클라이버가 지휘한 베토벤의 교향곡 4번과 5번, 7번 등을 권한다. 브람스의 교향곡 4번도 클라이버와의 첫 만남으로 적절하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영화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두 사람의 삶을 대비시키면서 펼쳐진다. 물론 그 ‘대비’가 때때로 극단적이어서 현실감이 떨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인물과 상황 전개라는 것이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으면 ‘보는 재미’가 적은 법 아니겠는가. 이 영화는 두 인물의 극적 대비와 함께 그들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미묘한 조명, 수첩에 적어두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는 아포리즘적 대사 등으로 꽤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물론 <세상의 모든 아침>은 허구다. 사실에 대한 고증보다, ‘아마, 그렇지 않았을까’라는 추측과 상상으로 두 음악가의 삶을 재구성했다.
20세기의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1930~2004·사진). 그도 영화 속의 생트 콜롱브처럼 은둔의 삶을 살았다. 그는 슈투트가르트 가극장의 음악감독직을 사임했던 1973년부터 세상을 떠나던 2004년까지, 적어도 생애의 마지막 30년간 어디에도 몸을 담지 않았던 ‘은둔의 프리랜서’였다. 그리고는 아주 가끔씩, 그것이 빈필하모닉이든 베를린필하모닉이든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특별한 명연’을 남기곤 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원했을 때 어느 오케스트라든 지휘할 수 있었던 ‘공인된’ 명인이었다.
이 ‘은둔형 마에스트로’는 인터뷰를 싫어했다. 음반 녹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녹음을 “공포스럽다”고 말하며 저어했다. 이 때문에 극히 소량의 음반만을 남겼으며, 그것들은 당연히 ‘희소가치’가 더해지면서 명반의 반열에 이름을 속속 올렸다.
클라이버가 보여준 ‘은둔’의 절정은 언제였던가? 그것은 베를린필하모닉의 종신지휘자였던 ‘황제’ 카라얀이 세상을 떠난 89년에 찾아왔다. 당시 음악계의 호사가들은 클라이버가 당연히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점쳤지만, 그는 이 ‘영예로운 포디엄’의 주인이 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돌이켜보자면 그것은 얼마나 탁월한 선택이었던가? 클라이버는 그렇게 자신의 노선을 끝까지 지켰고, 덕분에 카라얀과는 또 다른 ‘지휘의 신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2004년 클라이버가 세상을 떠난 후, 미국의 음악평론가 헨리 포겔은 이렇게 썼다. “이상한 수수께끼의 주인공. 하지만 부인할 수 없이 세계 음악계에 우뚝 솟은 지휘자. 가장 위대한 지휘자라고 추앙받으면서도 거의 지휘를 하지 않았던 사람.”
‘은둔’의 삶을 시작했던 73년, 클라이버가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오페라단을 지휘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를 연주했던 음반이 최근 국내에 수입됐다. 그동안 DVD로, 혹은 해적판 음반으로 종종 접할 수 있었던 실황이다. 하지만 이번에 수입된 음반은 오스트리아의 ‘오르페오’ 레이블에서 원본 마스터를 SACD로 재생해낸 공식 음반. 지난해 말부터 해외 사이트를 통해 개별적으로 구입 해온 애호가들도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국내 음반가게 어디서라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음질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지금까지 들었던 클라이버의 그 어떤 ‘장미의 기사’보다도 생생하다. 일본의 음악평론가 기요미 쓰토시는 이 음반에 대해 “오케스트라가 살아 있는 것처럼 요동친다”는 평을 내놓았다. 물론 약간의 ‘주례사’ 혐의가 있긴 하지만, 사실을 크게 벗어난 평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클래식 초심자여서 ‘장미의 기사’ 전곡을 듣는 것이 좀 버겁다면, 클라이버가 지휘한 베토벤의 교향곡 4번과 5번, 7번 등을 권한다. 브람스의 교향곡 4번도 클라이버와의 첫 만남으로 적절하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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