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7-30-17:22:08ㅣ수정 : 2009-07-30 17:22:09
모차르트가 생애 마지막 무렵에 가장 사랑했던 악기 가운데 클라리넷을 빼놓을 순 없다. 기악 음악의 발전은 악기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게 마련. 목관악기 클라리넷은 모차르트가 맹활약을 펼치던 18세기 후반에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정확한 음정과 풍부한 표현력, 적절한 음량을 갖춘 악기로 점차 발전하면서 오케스트라 속에도 클라리넷 연주자의 자리가 마련되기에 이른다.
그렇게 음악성을 차츰 인정받아가던 클라리넷은 모차르트의 말년에 이르러 악기로서의 존재감을 선명하게 부여받는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이었던 1789년 썼던 ‘클라리넷 5중주 A장조’. 기존의 현악 4중주 편성에 클라리넷 한 대를 덧붙인 이 곡이야말로 클라리넷의 재발견인 동시에 모차르트 실내악의 완성이라고 부를 만하다. 우아한 음색에 화려한 기교, 인생의 희로애락을 사람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듯한 표현력. 이렇게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클라리넷 곡은 모차르트 이전에는 당연히 없었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오랫동안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적어도 100년 후, 브람스가 1891년에 ‘클라리넷 5중주 b단조’를 쓸 때까지 그랬다.
모차르트로 하여금 ‘클라리넷 5중주곡’을 쓰게 한 또 하나의 동기는 ‘우정’이었다. 그것은 베토벤이 루돌프 대공과의 우정을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과 피아노 트리오 ‘대공’으로 표현했던 것과도 흡사하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어려운 말년을 보내던 모차르트도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안톤 슈타틀러(1753~1812)와의 우정에 음악으로 답했으며, 그 첫번째 열매가 바로 ‘클라리넷 5중주’였다.
알려져 있다시피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를 떠나 빈으로 간 것은 1781년, 그의 나이 25세 때였다. 그러니 꼭 10년을 빈에서 살았다. 그 10년은 모차르트가 궁정의 ‘족쇄’를 벗어나 프리랜서 음악가로 보낸 세월과 같을 터. 빈 시절 초창기의 모차르트는 소위 ‘잘 나가는’ 음악가였다. 그는 빈에서 작곡과 연주로, 또 학생들을 가르치며 적잖은 인기를 끌었다. 특히 빈 사람들은 피아노 연주에서 모차르트가 보여줬던 능력에 환호했으며, 이에 자극받은 모차르트는 피아노 협주곡 14번부터 25번까지를 단숨에 써내기도 했다.
하지만 권력의 울타리를 벗어난 그는 점차 힘들어졌다. 모차르트를 아꼈던 하이든이 “이 유일무이한 인물 모차르트가 군주의 것이든 황제의 것이든, 어느 궁정에서도 지위를 얻지 않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라는 개탄조의 글을 남긴 것도 이 무렵이었다. 물론 여기엔 약간의 이견도 있는 게 사실이다. 빈 시절 후반부에도 모차르트의 수입은 별로 줄지 않았으며, 오히려 도박 등으로 돈을 날려 어려워졌을 거라는 추측이 존재한다. 그렇게 모차르트 생애의 마지막 무렵은 몇몇 미스터리를 남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3~4년 전부터 극심한 궁핍에 시달렸다는 것. 당시 모차르트는 자신이 몸 담았던 계몽주의 비밀결사 ‘프리메이슨’의 동료 푸흐베르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까지 도움을 청해야 할 만큼 안 좋은 상황이라네. 좋은 친구, 형제인 당신마저 나를 버린다면, 나와 가련한 병든 아내 그리고 아이도 파멸해 버릴 것이라네.”
앞서 언급한 슈타틀러는 바로 이 시절의 모차르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친구였다. 그 역시 프리메이슨의 동료였으며 당대 최고의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 헌사한 ‘클라리넷 5중주’는 전곡이 모두 아름답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악장은 2악장 라르게토(Larghetto). 그것은 마치 한 마리 백조의 춤처럼 우아하며 때때로 관능적이다. 동시에 모차르트 말년의 슬픔이 아릿하게 배어난다. 2년 후 작곡한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도 역시 슈타틀러에게 헌사한 곡. 이 곡에서 클라리넷은 좀 더 저역으로 내려가면서 마치 오보에 같은 소리로 운다. 모차르트는 이 곡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협주곡’을 쓰지 않았으며, 두 달 뒤 눈을 감는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 1년에 걸쳐 연재해온 ‘주제와 변주’를 오늘자로 마칩니다. 그동안 애정을 갖고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차르트가 생애 마지막 무렵에 가장 사랑했던 악기 가운데 클라리넷을 빼놓을 순 없다. 기악 음악의 발전은 악기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게 마련. 목관악기 클라리넷은 모차르트가 맹활약을 펼치던 18세기 후반에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정확한 음정과 풍부한 표현력, 적절한 음량을 갖춘 악기로 점차 발전하면서 오케스트라 속에도 클라리넷 연주자의 자리가 마련되기에 이른다.
그렇게 음악성을 차츰 인정받아가던 클라리넷은 모차르트의 말년에 이르러 악기로서의 존재감을 선명하게 부여받는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이었던 1789년 썼던 ‘클라리넷 5중주 A장조’. 기존의 현악 4중주 편성에 클라리넷 한 대를 덧붙인 이 곡이야말로 클라리넷의 재발견인 동시에 모차르트 실내악의 완성이라고 부를 만하다. 우아한 음색에 화려한 기교, 인생의 희로애락을 사람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듯한 표현력. 이렇게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클라리넷 곡은 모차르트 이전에는 당연히 없었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오랫동안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적어도 100년 후, 브람스가 1891년에 ‘클라리넷 5중주 b단조’를 쓸 때까지 그랬다.
모차르트로 하여금 ‘클라리넷 5중주곡’을 쓰게 한 또 하나의 동기는 ‘우정’이었다. 그것은 베토벤이 루돌프 대공과의 우정을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과 피아노 트리오 ‘대공’으로 표현했던 것과도 흡사하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어려운 말년을 보내던 모차르트도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안톤 슈타틀러(1753~1812)와의 우정에 음악으로 답했으며, 그 첫번째 열매가 바로 ‘클라리넷 5중주’였다.
알려져 있다시피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를 떠나 빈으로 간 것은 1781년, 그의 나이 25세 때였다. 그러니 꼭 10년을 빈에서 살았다. 그 10년은 모차르트가 궁정의 ‘족쇄’를 벗어나 프리랜서 음악가로 보낸 세월과 같을 터. 빈 시절 초창기의 모차르트는 소위 ‘잘 나가는’ 음악가였다. 그는 빈에서 작곡과 연주로, 또 학생들을 가르치며 적잖은 인기를 끌었다. 특히 빈 사람들은 피아노 연주에서 모차르트가 보여줬던 능력에 환호했으며, 이에 자극받은 모차르트는 피아노 협주곡 14번부터 25번까지를 단숨에 써내기도 했다.
하지만 권력의 울타리를 벗어난 그는 점차 힘들어졌다. 모차르트를 아꼈던 하이든이 “이 유일무이한 인물 모차르트가 군주의 것이든 황제의 것이든, 어느 궁정에서도 지위를 얻지 않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라는 개탄조의 글을 남긴 것도 이 무렵이었다. 물론 여기엔 약간의 이견도 있는 게 사실이다. 빈 시절 후반부에도 모차르트의 수입은 별로 줄지 않았으며, 오히려 도박 등으로 돈을 날려 어려워졌을 거라는 추측이 존재한다. 그렇게 모차르트 생애의 마지막 무렵은 몇몇 미스터리를 남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3~4년 전부터 극심한 궁핍에 시달렸다는 것. 당시 모차르트는 자신이 몸 담았던 계몽주의 비밀결사 ‘프리메이슨’의 동료 푸흐베르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까지 도움을 청해야 할 만큼 안 좋은 상황이라네. 좋은 친구, 형제인 당신마저 나를 버린다면, 나와 가련한 병든 아내 그리고 아이도 파멸해 버릴 것이라네.”
앞서 언급한 슈타틀러는 바로 이 시절의 모차르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친구였다. 그 역시 프리메이슨의 동료였으며 당대 최고의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 헌사한 ‘클라리넷 5중주’는 전곡이 모두 아름답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악장은 2악장 라르게토(Larghetto). 그것은 마치 한 마리 백조의 춤처럼 우아하며 때때로 관능적이다. 동시에 모차르트 말년의 슬픔이 아릿하게 배어난다. 2년 후 작곡한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도 역시 슈타틀러에게 헌사한 곡. 이 곡에서 클라리넷은 좀 더 저역으로 내려가면서 마치 오보에 같은 소리로 운다. 모차르트는 이 곡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협주곡’을 쓰지 않았으며, 두 달 뒤 눈을 감는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 1년에 걸쳐 연재해온 ‘주제와 변주’를 오늘자로 마칩니다. 그동안 애정을 갖고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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