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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속에 노닐다

말러 교향곡... 발레리 게르기예프, 마리스 얀손스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런던 심포니는 2007년에 말러 교향곡 전곡 녹음을 시작해 지난해 마무리했다. '대지의 노래'는 빠져 있는 사이클이다. 자체 레이블인 LSO를 통해 발매된 이 음반들의 음질에 대해 사람들의 불만들이 많은 것 같다. 애초에는 나도 그런 축이었다. 처음 들은 곡이 6번이었는데 소리가 답답하고 밀도가 확 떨어졌다. 무슨 SACD가 이렇게 음질이 맹탕이람! 그렇게 생각했다. 역시 말러는 LP로 들어야지, CD는 정말 못 쓰겠구만 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며칠 후 친구 W의 작업실에서 같은 음반을 다시 들었다. 이 친구의 오디오 시스템은 내 것과 완전히 다른 쪽이다. 하나밖에 없는 나의 '저렴한 시스템'은 최대한 LP쪽에 맞춰져 있다. 쿼드2 진공관에 토렌스 520 턴테이블, 탄노이 스피커로 옛날 음반을 듣는 게 나의 오디오 취향이다. 거의 사용하지 않는 CD플레이어는 영국 아캄에서 몇해 전 제작한 중저가 제품인데, 가뭄에 콩 날 정도로 돌리는 정도다. 그런데 친구 W의 시스템은 방향이 많이 다르다. 이 자리에서 시시콜콜 밝히기는 좀 그렇지만, 내 것보다는 훨씬 현대적인, 하이파이를 지향하는 쪽이라고 봐야겠다. 

한데, 이럴 수가! 6번 교향곡 CD를 그 시스템으로 돌리자 완전히 다른 소리가 터져나왔다. 내 딸내미 잘 쓰는 표현을 빌려오자면, 한마디로 '헐~!'이다. 이전에 들은 것과 확연히 다른, 촘촘하면서도 쭉쭉 뻗어나가는 음향이다. 마지막 악장에서 육중하게 터져나오는 햄머의 타격은 온몸을 떨리게 만들 정도다. 다 듣고 나자 "이런 제길헐!" 소리가 절로 나왔다. 게르기예프와 런던 심포니는 왜 이렇게 사람을 약 올리는 음반을 만들었단 말인가.

사실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말러는 내 취향은 아니다. 마리스 얀손스의 섬세한 해석에 더 마음이 끌린다. 이 역시 SACD 포맷의 음반이어서, 제대로 맛을 보려면 전용 플레이어를 비롯한 다소 고가의 오디오 시스템이 필요하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MP3로 음악을 다운로드 해서 들으니 아예 음질을 고급화한 CD를 발매해서, 살 사람만 사라는 뜻인 것 같다. 이래저래 양극화다. 아래 박스는 두 지휘자의 말러 교향곡 해석을 비교한 1월20일자 기사다.




게르기예프 ‘마초같이 강렬하게’… 얀손스 ‘귀족적이고 세련되게’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1860~1911)가 생전에 완성한 교향곡은 모두 10곡. 삶의 불안함에 대한 묘사, 이성보다는 감성에 집중하는 말러의 교향곡이 대중적으로 확산된 것은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다. 이때부터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는 일이 지휘자들에게 일종의 화두로 떠올랐다. 대표적인 지휘자는 레너드 번스타인이다. 그는 말러 교향곡의 어두운 낭만성과 극단적 탐미주의를 한껏 부각시킨 해석을 선보여 지금까지도 애호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물론 라파엘 쿠벨릭, 클라우디오 아바도, 리카르도 샤이, 게오르그 솔티, 주빈 메타 등이 지휘한 말러 교향곡 음반도 지난 세기의 중요한 녹음으로 남아 있다. 

21세기에 들어 두 명의 지휘자가 포문을 열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59)와 마리스 얀손스(69)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장인 사이먼 래틀과 더불어 우리 시대의 가장 주목받는 지휘자들이다. 러시아 출신의 게르기예프는 2007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 상임지휘자로 취임하는 것과 동시에 말러 교향곡 전곡 녹음 계획을 발표, 지난해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대지의 노래’를 제외한 아홉 곡으로 전곡 녹음 종결을 선언했다.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헤보(RCO)의 상임지휘자 얀손스는 여전히 전곡 녹음을 진행 중이다. 2006년 5월 ‘교향곡 6번’을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모두 5곡을 녹음해 세상에 내놓았다. 두 오케스트라의 자체 레이블인 LSO와 RCO에서 발매한 이 음반들의 서로 다른 스타일은 국내 애호가들 사이에 관심의 대상이다. 

두 지휘자의 개성은 확연히 다르다. 게르기예프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오케스트라를 몰아간다. 사운드의 굴곡, 강약의 대비가 매우 선명하다. 한마디로 ‘마초적 강렬함’을 느끼게 하는 지휘다. 해외에서는 비교적 호평이 많으나 국내에서는 호불호가 크게 엇갈린다. 그의 연주에 쏟아지는 불평은 대체로 ‘깊이와 신중함의 부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반면에 얀손스는 곡의 전체적 구조와 세부적 조탁을 모두 실현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균형감 있는 해석으로 정확하고 깔끔한 연주를 선보인다는 얘기다. 그래서 ‘귀족적인 세련미’가 넘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그의 침착한 해석은 가슴을 뒤흔드는 강렬한 호소력을 맛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아쉬운 뒷맛을 남기기도 한다. 

게르기예프와 LSO의 연주 중에서 특히 호평받는 것은 ‘비극적’이라는 부제가 붙은 6번이다. 영국의 음악전문지 ‘그라모폰’에서 ‘에디터스 초이스’로 선정됐고, 프랑스 ‘르 몽드 드 라 뮈지크’에서 ‘쇼크상’을 받았다. 마지막에 녹음한 9번, 말러의 교향곡 중에 가장 규모가 큰 8번도 호평이 쏟아진다. 미국의 ‘시카고 트리뷴’은 게르기예프의 8번에 대해 “악보 그대로의 힘을 보여주는, 가장 파워풀한 경쟁작”이라고까지 극찬했다. 

반면에 말러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밝고 부드러운 곡으로 평가받는 4번은 논쟁거리다. 게르기예프는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지적한 대로 “밝고 천진한 목가풍을 거부”한다. “고요한 노스탤지어보다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면서 평온과 불안의 대결”을 보여주려는 해석이다. 듣는 이에 따라서는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1번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가디언’은 “본능적이고 스릴 넘치는, 다소 위험스러운 말러”라고 평했다. 

얀손스와 RCO의 연주에서 백미로 꼽을 만한 장면은 역시 느린 악장이다. 얀손스는 말러 교향곡의 그로테스크함과 낙차 큰 변화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내진 않았지만, 특유의 섬세함으로 느린 악장의 서정미를 포착해낸다. 음악에서 드러나는 작곡가 말러의 인간적인 내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망설임의 뉘앙스를 얀손스처럼 감각적으로 잡아내는 지휘자는 찾아보기 드물다. 특히 2번 ‘부활’의 4악장, 5번의 2악장과 4악장은 그의 미덕을 여실히 보여준다. 

 
현재 시중에서 음반으로 구할 수 있는 얀손스와 RCO의 말러 교향곡 녹음은 1번, 2번, 3번, 5번, 6번이다. 불만의 소리들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 뒤집어 말하자면, 과격한 해석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얀손스의 취향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얀손스와 RCO의 음반에서 느껴지는 또 하나의 미덕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따뜻한 소통이다. 그들은 실내악단에서나 가능한 깊은 신뢰의 앙상블을 보여준다. 다음 음반은 ‘천인교향곡’으로 불리는 8번으로 예정돼 있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