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도의 최강 레퍼토리 '말러'... 그는 갔지만 음반은 남았다
기사입력 2014-01-22 20:52 최종수정 2014-01-23 13:39
1960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지휘자로 데뷔한 이후, 생전의 그가 모두 몇 타이틀의 음반을 남겼는 지 현재로서는 추정이 쉽지 않다. 그가 현역 지휘자로 활약한 기간이 50년이 넘는 까닭에, 절판·단종된 레코딩이 적지 않은 까닭이다. 다만 현재 유통중인 아바도의 음반은 160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최대의 수입음반 유통사인 N3컴퍼니가 21일 내놓은 리스트에는 모두 167개의 타이틀이 올라와 있다. 거장에 대한 세계적인 추모의 물결이 여전한 가운데,생전의 아바도가 남긴 주요 명연들을 간추려본다.
지휘자로서 아바도의 본격 행보는 라 스칼라 필하모닉의 음악감독(1968~1986)으로 시작됐다. 당시 아바도는 이른바 ‘진보적 지휘자’의 아이콘이었다. 라 스칼라 극장의 주류 레퍼토리였던 이탈리아 오페라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현대 오페라까지 영역을 확장한 것은 물론, 저렴한 입장료로 젊은 층을 극장으로 불러들였고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찾아가는 연주회’를 스스로 기획하기도 했다. 정장 차림의 지휘자에 익숙했던 음악팬들이 셔츠 바람으로 지휘하는 그를 음반 커버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던 것도 신선한 경험으로 꼽힌다. 아바도는 그렇게, 앞 시대의 엄격함과 획일화에서 벗어나 청중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새로운 지휘자상의 등장을 선언했다.
그는 라 스칼라 필하모닉뿐아니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1979~1988)를 겸하면서 세계적 지휘자로서의 입지를 굳힌다. 이 시기의 아바도를 대표하는 명연으로는 주로 오페라와 성악 작품들이 손꼽힌다. 특히 라 스칼라 필하모닉과 녹음한 베르디의 <멕베스>, 런던 심포니와 연주한 비제의 <카르멘>은 음악 애호가들의 필청반으로 남았다. 소프라노 테레사 베르간자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등이 출연한 오페라 <카르멘> 음반은 국내에 라이선스 LP로도 출반돼 큰 호응을 얻었다. 음반비평가 박제성은 아바도의 <멕베스>에 대해 “셰익스피어 작품의 비극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명연”이라고 말했다. <카르멘>에 대해서는 “40대 아바도의 팽팽한 긴장감과 불같은 열정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라고 평했다.
이 시절의 교향곡 연주로는 런던 심포니를 이끌고 녹음했던 멘델스존의 교향곡들을 꼽을 만하다. 음악컬럼니스트 류태형은 “특히 3번과 4번은 음악에 꽃처럼 피어나는 생명력을 부여했다”면서 “데카 녹음팀은 아날로그의 그윽하고 따스한 감성을 잘 살려냈다. 나중에 도이치그라모폰에서도 재녹음하지만 데카의 음반에 더 마음이 끌린다”고 말했다.
아바도가 지휘자 경력의 정점을 찍은 것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하면서였다. 1989년 세상을 떠난 카라얀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장으로 취임한 그는 “나는 보스가 아니다. 우리는 같이 일하는 것이다”는 말로 자신의 지휘 철학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 시기의 아바도는 교향곡과 협주곡 명연들을 잇따라 발표했다.
교향곡으로는 역시 말러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의 아바도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2번 ‘부활’을 제외한 말러의 교향곡 거의 전부를 녹음했다. 그 중에서도 명연으로 손꼽히는 것은 6번과 7번이다. 박제성은 “말러야말로 아바도의 최강 레퍼토리”라면서 “그가 지휘한 7번은 시카고 심포니를 지휘해 연주했던 자신의 전작(1980년대 연주)를 뛰어넘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또 “오케스트라의 높은 집중력을 이끌어내면서 급박한 템포 속에서 찰나적인 음향을 포착해내고 있는 전례 없는 연주”라는 호평을 내놨다. 협주곡으로는 역시 피아니스트 폴리니와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이 손꼽힌다. 박제성은 “현대적인 감성과 고전적 균형미가 조화를 이룬 명연”이라고 호평했다.
아쉽게도 아바도는 2000년 발병한 위암 때문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대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투병 속에서도 연주를 멈추지 않는 의지로 세계의 음악팬들을 감동시켰다. 이 시기의 그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 모차르트 등을 스스로 조직하는 열정을 보여주면서 지휘를 이어갔다. 특히 아바도를 존경하는 일급 연주자들이 대거 포진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유례가 없는 ‘올스타 악단’이었다.
아바도는 암과 싸우면서 다시 말러 교향곡에 도전했다. 그중에서도 2번 ‘부활’은 잊을 수 없는 명연으로 손꼽힌다. 류태형은 “경지에 오른 말러”라고 극찬했다. “사운드는 과거보다 더 윤택해졌고, 특히 합창 부분의 음악적 깊이는 한마디로 감동”이라는 것이다. 오케스트라 모차르트를 이끌고 연주한 모차르트 교향곡들도 아바도의 말년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남았다. 29·33·35·38·41번이 두 장의 CD에 담겨 있다. 류태형은 “젊은 단원들로 이뤄진 당대연주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음악의 미답지를 개척해가는 노거장의 설레임이 느껴지는 명연”이라고 평했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지난 20일 지휘의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가 향년 81세로 타계했다. 이제 그가 남긴 음악의 유산은 음반으로 남았다.
1960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지휘자로 데뷔한 이후, 생전의 그가 모두 몇 타이틀의 음반을 남겼는 지 현재로서는 추정이 쉽지 않다. 그가 현역 지휘자로 활약한 기간이 50년이 넘는 까닭에, 절판·단종된 레코딩이 적지 않은 까닭이다. 다만 현재 유통중인 아바도의 음반은 160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최대의 수입음반 유통사인 N3컴퍼니가 21일 내놓은 리스트에는 모두 167개의 타이틀이 올라와 있다. 거장에 대한 세계적인 추모의 물결이 여전한 가운데,생전의 아바도가 남긴 주요 명연들을 간추려본다.
지휘자로서 아바도의 본격 행보는 라 스칼라 필하모닉의 음악감독(1968~1986)으로 시작됐다. 당시 아바도는 이른바 ‘진보적 지휘자’의 아이콘이었다. 라 스칼라 극장의 주류 레퍼토리였던 이탈리아 오페라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현대 오페라까지 영역을 확장한 것은 물론, 저렴한 입장료로 젊은 층을 극장으로 불러들였고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찾아가는 연주회’를 스스로 기획하기도 했다. 정장 차림의 지휘자에 익숙했던 음악팬들이 셔츠 바람으로 지휘하는 그를 음반 커버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던 것도 신선한 경험으로 꼽힌다. 아바도는 그렇게, 앞 시대의 엄격함과 획일화에서 벗어나 청중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새로운 지휘자상의 등장을 선언했다.
그는 라 스칼라 필하모닉뿐아니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1979~1988)를 겸하면서 세계적 지휘자로서의 입지를 굳힌다. 이 시기의 아바도를 대표하는 명연으로는 주로 오페라와 성악 작품들이 손꼽힌다. 특히 라 스칼라 필하모닉과 녹음한 베르디의 <멕베스>, 런던 심포니와 연주한 비제의 <카르멘>은 음악 애호가들의 필청반으로 남았다. 소프라노 테레사 베르간자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등이 출연한 오페라 <카르멘> 음반은 국내에 라이선스 LP로도 출반돼 큰 호응을 얻었다. 음반비평가 박제성은 아바도의 <멕베스>에 대해 “셰익스피어 작품의 비극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명연”이라고 말했다. <카르멘>에 대해서는 “40대 아바도의 팽팽한 긴장감과 불같은 열정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라고 평했다.
이 시절의 교향곡 연주로는 런던 심포니를 이끌고 녹음했던 멘델스존의 교향곡들을 꼽을 만하다. 음악컬럼니스트 류태형은 “특히 3번과 4번은 음악에 꽃처럼 피어나는 생명력을 부여했다”면서 “데카 녹음팀은 아날로그의 그윽하고 따스한 감성을 잘 살려냈다. 나중에 도이치그라모폰에서도 재녹음하지만 데카의 음반에 더 마음이 끌린다”고 말했다.
아바도가 지휘자 경력의 정점을 찍은 것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하면서였다. 1989년 세상을 떠난 카라얀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장으로 취임한 그는 “나는 보스가 아니다. 우리는 같이 일하는 것이다”는 말로 자신의 지휘 철학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 시기의 아바도는 교향곡과 협주곡 명연들을 잇따라 발표했다.
교향곡으로는 역시 말러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의 아바도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2번 ‘부활’을 제외한 말러의 교향곡 거의 전부를 녹음했다. 그 중에서도 명연으로 손꼽히는 것은 6번과 7번이다. 박제성은 “말러야말로 아바도의 최강 레퍼토리”라면서 “그가 지휘한 7번은 시카고 심포니를 지휘해 연주했던 자신의 전작(1980년대 연주)를 뛰어넘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또 “오케스트라의 높은 집중력을 이끌어내면서 급박한 템포 속에서 찰나적인 음향을 포착해내고 있는 전례 없는 연주”라는 호평을 내놨다. 협주곡으로는 역시 피아니스트 폴리니와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이 손꼽힌다. 박제성은 “현대적인 감성과 고전적 균형미가 조화를 이룬 명연”이라고 호평했다.
아쉽게도 아바도는 2000년 발병한 위암 때문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대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투병 속에서도 연주를 멈추지 않는 의지로 세계의 음악팬들을 감동시켰다. 이 시기의 그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 모차르트 등을 스스로 조직하는 열정을 보여주면서 지휘를 이어갔다. 특히 아바도를 존경하는 일급 연주자들이 대거 포진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유례가 없는 ‘올스타 악단’이었다.
아바도는 암과 싸우면서 다시 말러 교향곡에 도전했다. 그중에서도 2번 ‘부활’은 잊을 수 없는 명연으로 손꼽힌다. 류태형은 “경지에 오른 말러”라고 극찬했다. “사운드는 과거보다 더 윤택해졌고, 특히 합창 부분의 음악적 깊이는 한마디로 감동”이라는 것이다. 오케스트라 모차르트를 이끌고 연주한 모차르트 교향곡들도 아바도의 말년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남았다. 29·33·35·38·41번이 두 장의 CD에 담겨 있다. 류태형은 “젊은 단원들로 이뤄진 당대연주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음악의 미답지를 개척해가는 노거장의 설레임이 느껴지는 명연”이라고 평했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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