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속에 노닐다 썸네일형 리스트형 광폭한, 춘래불사춘의 음악 입력 : 2009-03-05 18:33:22ㅣ수정 : 2009-03-05 18:33:24 “봄에 들을 만한 음악은 뭐가 있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이탈리아와 러시아 음악의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처럼, 일조량과 기온의 변화는 사람의 감성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계절에 따라 마음에 와닿는 음악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따사로운 봄을 만끽할 수 있는 곡은 아주 많다.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종달새’, 베토벤의 교향곡 ‘전원’의 1악장,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의 4악장 등등, 일일이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다. 아예 곡명을 ‘봄’으로 내건 음악도 적지 않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이다. 하지만 베토벤 자신이 이 소나타를 ‘봄’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아.. 더보기 음표로 그린 보헤미안의 정경 입력 : 2009-02-26 17:29:52ㅣ수정 : 2009-02-26 22:34:17 19세기 중반, 파리 센강 오른편의 라틴구(La Quartier Latin)는 예술가들의 거리였다. 소르본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된 그 거리에는 고만고만한 술집과 카페들이 모여 있었고, 그곳은 수많은 시인과 작가, 화가들로 늘 북적였다.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의 발자크가 그 거리를 거닐었을 것이고, 시인 보들레르가 어느 구석진 술집에서 ‘파리의 우울’의 한 구절을 떠올렸을 것이다. 화가 고흐도 그 거리의 방랑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전해진다. 그 라틴구의 한 모퉁이에 ‘모뮈스’라는 카페가 있었다. 이곳은 특히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예술가로서 아직 이름을 떨치진 못했지만, 당대에 서서히 뿌리내리던 ‘리얼리.. 더보기 FM라디오, 착하고 친절한 음악 친구 입력 : 2009-02-12 17:07:35ㅣ수정 : 2009-02-12 17:07:38 어떤 이들은 45만원을 내고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회를 보러 간다. 또 어떤 이들은 45만원으로 한 달을 산다. 이 격차는 사라질 기미가 통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해가 갈수록 커질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음악 듣기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수십만원, 적어도 10만원이 훌쩍 넘는 연주회를 갈 수 없다고 해서 기죽을 필요도 없다. 당신이 진정 음악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경제적으로 좀 쪼들리는 형편이라면, 용돈을 아끼고 아껴서 한 달에 한 번쯤 음반가게에 들러보는 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시간과 더불어 소멸하는 연주를 ‘녹음’이라는 테크놀로지에 가둬놓은 탓에 현장감은 당연히 부족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반의 .. 더보기 모차르트 명연 남긴 여성 피아니스트들 입력 : 2009-01-22 17:09:11ㅣ수정 : 2009-06-18 18:22:34 피아노는 과연 남성의 악기일까. 얼마 전 해외에서 주로 활동하는 한국인 피아니스트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남자였고, 대화의 중심은 아무래도 피아니스트들에 대한 것이었다. 20세기 중반의 거장이었던 에드빈 피셔에서부터 길렐스, 리히테르 같은 러시아 출신의 비르투오소들, 또 최근의 예브게니 키신에 이르기까지 여러 피아니스트들을 도마에 올려놓고 한참이나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가 말했다. “피아노는 역시 남자의 악기죠. 여자들의 연주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요. 여성 피아니스트들이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사실은 사실이죠.” 그 말이 끝나고 10분쯤 뒤 역시 피아니스트인 그의 아내가 카페로 들어섰다... 더보기 바르샤바 생존자들이 부르는 시온의 노래 입력 : 2009-01-15-17:10:50ㅣ수정 : 2009-01-15 17:10:52 “끊임없이 ‘타자’를 상상하고, 그들과의 차이를 강조해, 그것을 배제하면서, ‘우리’라는 일체감을 굳혀가는 것.” 도쿄경제대 교수이자 에세이스트인 서경식은 (돌베개)에서 그렇게 쓰고 있다. ‘내셔널리즘’이라는 근대적 상상력에 대한 비판적 언급의 일부다. 종국에는 파괴와 살육을 부채질하게 될 이 부정적 상상력은, 자본주의적 인간관계에서 왜곡된 처세술로 통용되기도 한다. 언젠가 시내의 한 대형서점에서 잠시 들여다봤던 처세술 책에는, “지금 맞은편에 있는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려면 제3자를 함께 헐뜯으라”고 쓰여 있었다. 그 비뚤어진 상상력의 극치를 최근에 질리도록 목격하고 있다. 며칠 전 외신으로 들어온 두 컷의 사진... 더보기 톨스토이가 소설로 그려낸 '파멸의 이중주' 입력 : 2009-01-08-18:23:35ㅣ수정 : 2009-01-08 18:23:36 음악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독약’일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때때로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이 운율과 하모니를 통해 정신을 조화롭게 하고 감정을 순화시키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치우치면 사람을 유약하게 만들 뿐이라고 경고했다. 음악을 ‘하찮은 것’으로 여겼던 이 철학자는, 그렇게 나쁜 영향을 주는 음악을 지상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고까지 설파했다. 음악에 대한 이 부정적 견해는 19세기 말 러시아의 소설가 톨스토이에게서 다시 발견된다. 19세기는 이른바 낭만의 시대. 베토벤 이후 점점 확고해진 음악의 절대성과 신성함이 반론의 여지없이 통용되던 때였다. 음악은 고통스러운 세계에서 구원으로 나아가는.. 더보기 차이코프스키... 겨울날의 우울한 몽상 입력 : 2008-12-25 17:26:59ㅣ수정 : 2008-12-25 17:26:59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은 겨울에 들으면 더욱 제맛이다. 베토벤의 7번과 드보르자크의 8번 교향곡이 여름에 한층 어울리는 것처럼, 음악에는 나름대로 계절과의 어울림이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은 ‘겨울의 음악’이다. 아예 ‘겨울날의 몽상’(Winter Daydreams)이라 이름 붙인 1번부터 ‘비창’(悲愴)으로 불리는 6번까지, 어느 곡에서건 가슴 시린 북국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러시아적 비애감과 때때로 폭발하는 광기 어린 열정.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은 번호가 없는 ‘만프레드 교향곡’까지 포함해 모두 7곡이다. 그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곡은 4, 5, 6번. 교향곡으로서의 구조가 취약하고 선율.. 더보기 브렌델, 마침내 무대에서 내려오다 입력 : 2008-12-18 17:33:27ㅣ수정 : 2008-12-18 17:33:30 알프레트 브렌델(77)이 떠났다. 18일 저녁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라인 홀. “올해를 마지막으로 연주활동을 접겠다”고 이미 선언했던 브렌델이 생애 마지막 연주를 펼쳤다. 20세기 후반의 피아노 음악을 이끌어온 거장. 언제나 신뢰할 수 있었던 브렌델의 진지한 피아니즘이 마침내 ‘과거’라는 시간 속으로 떠났다. 7년 전 프랑스의 음악잡지 와 진행했던 인터뷰. 그것을 다시 들춰본다. 당시 70세의 브렌델이 ‘늙음’에 대해 담담하게 말한다. “사람이 늙으면 체력에 한계가 오는 법이지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연주만을 선택할 겁니다. 연주회 요구에 휘둘리지 않는 게 잘 늙어가는 방법이지요. 내 육체가 앞으로도 잘 버텨 주.. 더보기 라흐마니노프, 찬란한 서정의 광휘 입력 : 2008-12-11 17:30:15ㅣ수정 : 2008-12-11 17:30:16 러시아의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19세기 후반에 태어나 거의 20세기 중반까지 살았다. 덕분에 남아 있는 사진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198㎝의 껑충한 키에 늘 굳어 있는 얼굴. 피아니스트 리히테르는 러시아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얼마나 내성적인 사람인가를 회고했던 적이 있지만, 그보다 한 세대 앞선 라흐마니노프는 한층 더 우울한 초상을 후대에 남겼다. 그는 꼭 필요한 얘기가 아니면 하루 종일 거의 입을 열지 않았고, 우스갯소리 따위는 아예 자신의 ‘사전’에 올려놓지도 않았던 사람이었다. 마침 KBS 클래식FM에서 14일부터 6일간 ‘라흐마니노프의 밤’이라는 특집을 마련하는 모.. 더보기 동양과 서양, 신과 인간... 거대한 벽화로 그리다 입력 : 2008-12-04 17:21:38ㅣ수정 : 2008-12-04 17:21:38 올리비에 메시앙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스무개의 시선' 1941년 초, 그는 갇혀 있었다. 프랑스군으로 참전했다가 나치에게 붙잡힌 포로 신세였다. 폴란드 서남부와 체코 동북부에 걸쳐 있는 슐레지엔 지역의 괴를리츠(Goerlitz) 수용소.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는 그 담장 안에서 작곡돼 초연됐다. 1월15일이었다. 3명의 수용소 동료와 4중주를 초연했던 당시 상황을, 그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살을 에듯 추웠다. 수용소 전체가 눈에 묻힌 상태였다. 3만명에 이르는 포로들은 주로 프랑스인들이었고 폴란드, 벨기에인들도 일부 있었다. 악기는 엉망이었다. 첼로는 현이 세 개뿐이었고, 내가 연주할 피아노의 오른쪽 .. 더보기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