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2-26 17:29:52ㅣ수정 : 2009-02-26 22:34:17
19세기 중반, 파리 센강 오른편의 라틴구(La Quartier Latin)는 예술가들의 거리였다. 소르본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된 그 거리에는 고만고만한 술집과 카페들이 모여 있었고, 그곳은 수많은 시인과 작가, 화가들로 늘 북적였다.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의 발자크가 그 거리를 거닐었을 것이고, 시인 보들레르가 어느 구석진 술집에서 ‘파리의 우울’의 한 구절을 떠올렸을 것이다. 화가 고흐도 그 거리의 방랑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전해진다.
그 라틴구의 한 모퉁이에 ‘모뮈스’라는 카페가 있었다. 이곳은 특히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예술가로서 아직 이름을 떨치진 못했지만, 당대에 서서히 뿌리내리던 ‘리얼리즘’에 막 눈을 떠가던 젊은 예술가들이 모뮈스에 모여들어 술을 마시고 토론을 나눴다. 아마 가끔은 주정도 부리고 다투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모뮈스에 죽치고 앉아 있던 패거리 중 한 명이었던 앙리 뮈르제(1822~1861).
어찌보면 그는 아직 ‘작가 지망생’이라 불러도 좋을 신출내기였다. 나이로 치자면 발자크의 다음 세대쯤 되는 작가였지만, 불행히도 마흔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 데다 후대에 길이 남을 만한 걸작을 쓰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지금 ‘뮈르제’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당시 함께 어울렸던 뮈르제의 동료들도 대개 비슷한 길을 걸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 가운데 현재까지 가장 선명히 기억되는 예술가는 아마도 세 살 위의 친구였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 정도일 터. 리얼리즘 미술사의 초입에 등장하는 쿠르베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 것”을 강조하면서 ‘돌 깨는 사람들’ 같은 걸작을 남긴 화가다.
그렇다면 뮈르제는 과연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던 것일까? 하루에 커피를 열 잔 가까이 마셨던 카페인 중독자. 카페 모뮈스에 출근하다시피 드나들며 ‘위대한 작가’를 꿈꿨던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커피만 들이켜다 마흔도 안돼 세상을 등진 것일까?
꼭 그렇진 않다. 다행스럽게도 뮈르제는 당시 어울렸던 가난한 친구들, 함께 사랑을 나눴던 비슷한 계층의 여인들을 등장시켜 한 권의 소설을 썼다. 여러 개의 연작 단편으로 이뤄진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Scenes de la Vie de Boheme)이라는 작품이었다.
시인 로돌포와 화가 마르첼로, 음악가 쇼나르와 철학자 콜리네, 다락방에서 삯바느질로 살아가는 노동자 루실과 그녀의 친구인 뮤제타.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은 이렇게 여섯명의 젊은이들이 파리의 하늘 밑에서 펼쳐가는 꿈과 사랑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것은 달콤하고 낭만적인 판타지가 아니라 당대 하층민들의 궁핍한 삶, 인생살이의 고달픔을 생생하게 그려낸 리얼리즘 소설에 가까웠다. 그 시절, 프랑스에서는 시민계급의 기운이 한창 커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마터면 잊혀질 뻔했던 이 소설을 오늘까지 기억하게 만든 일등 공신은 뭐니뭐니해도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일 터. 오페라의 귀재 푸치니는 이 작품을 4막의 오페라로 만들어 1896년 초연했고, 원작의 내용을 무시하고 대중적 신파극을 만들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라 보엠>은 푸치니의 다른 작품들, 이를테면 <나비부인>이나 <토스카>와 더불어 오늘날 가장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로 손꼽힌다. 푸치니는 아버지뻘이었던 베르디보다 진지하지 못한 작곡가였음에 틀림없지만, 적어도 그는 청중의 귀를 사로잡는 매혹적인 아리아와 색채감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 작곡가였다.
소설 속에 등장했던 착하고 예쁜 루실은 오페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름을 미미(Mimi)로 바꿨다. 그녀는 1막에서부터 ‘내 이름은 미미’라는 절창으로 청중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미미로는 소프라노 넬리 멜바의 이름이 당연히 거론되겠지만, 최근의 생생한 <라 보엠>을 만나고 싶다면 지난해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공연됐던 실황(사진)이 좋을 성싶다. 로돌포 역에 라몬 바르가스, 미미역에는 안젤라 게오르규. 좋은 캐스팅이다. 특히 음울한 3막에서 미미가 보여주는 가창력과 연기력이 눈부시다. EMI 발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음악 속에 노닐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흐마니노프의 격정, 쇼스타코비치의 냉소 (0) | 2010.09.22 |
---|---|
광폭한, 춘래불사춘의 음악 (0) | 2010.09.22 |
FM라디오, 착하고 친절한 음악 친구 (0) | 2010.09.22 |
모차르트 명연 남긴 여성 피아니스트들 (0) | 2010.09.22 |
바르샤바 생존자들이 부르는 시온의 노래 (0) | 2010.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