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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속에 노닐다

카라얀, 20세기 음악권력의 정점 입력 : 2008-11-27 17:39:15ㅣ수정 : 2008-11-27 17:39:30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89)은 나치 당원이었다. 2차대전 종전 후, 그는 자신의 나치 전력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이렇게 ‘해명’한 적이 있다. “나는 1935년 (독일) 아헨에서 음악총감독이 되려할 때 당원이 되었다. 내가 숙원해온 목표를 바로 눈앞에 둔 3일 전에 시장이 와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아직 당원이 아니지요? 지역구 당책임자에 따르자면, 이 자리는 당원이 아니고는 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서명했다.” 카라얀은 그렇게, ‘나는 1935년에 어쩔 수 없이 나치에 가입했다’고 변명했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카라얀에 대한 허다한 자료들도 이 ‘술회’를 대체로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 더보기
느리고 무겁게... 음악 속으로 걸어간 거장 입력 : 2008-11-20 17:19:41ㅣ수정 : 2008-11-20 17:19:59 피아니스트 스비야토슬라프 리히테르(Sviatoslav Richter·1915~97)의 러시아식 애칭은 ‘슬라바’다. 지난해 4월 세상을 떠난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도 같은 애칭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 둘은 성품과 음악적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첼로의 슬라바가 호방하게 뻗어나가는 외향적 음악을 들려줬던 반면에, 피아노의 슬라바는 엄청난 집중력으로 자신과 싸우는 내향적 연주를 보여줬다. 무대로 걸어나올 때의 모습도 아주 달랐다. 로스트로포비치는 뛰어들듯이 성큼성큼 무대 중앙으로 걸어나왔지만, 리히테르는 조용히, 느리게 걸어나와 피아노 앞에 앉고는 했다. 그는 고개를 잠깐 숙여 청중에게 인사한 다음, 아예 눈길을 객석 쪽.. 더보기
파블로 카잘스... 20세기 첼로의 거목 입력 : 2008-11-06 17:21:28ㅣ수정 : 2008-11-06 17:21:28 20세기 첼로의 거목. 거기까지만 얘기해도 단박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바로 파블로 카잘스(1876~1973)다. 본인도 술회했듯 “첼로보다 별로 크지 않은 키”에 두툼한 손을 가진 20세기 첼로의 제왕. 그와 동시대, 혹은 그의 사후에도 숱한 첼리스트가 명멸했지만, 카잘스만한 존재감으로 여지껏 숭앙받는 인물은 찾기 힘들다. 왜일까? 마침 국내 한 음반사에서 카잘스의 명연을 10장의 CD에 담아 ‘파블로 카잘스 스페셜 에디션’을 내놨다. 스테레오 이전에 녹음돼 세월의 때가 뿌옇게 낀 음반들이지만, 아흔살 넘어서도 연주를 멈추지 않았던 카잘스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거친 숨소리가 고스란히 들린다. 소문난 음악애호가.. 더보기
분쟁의 복판에서, 음악으로 공존을 꿈꾸다 입력 : 2008-10-16 17:49:34ㅣ수정 : 2008-10-16 17:49:51 시리아 북부에 ‘알레포’라는 마을이 있다. 이스라엘 건국 시기였던 1948년의 1차 중동전쟁 때 폭격으로 폐허가 됐던 마을이다. 알리자 카신이라는 유대인 여인은 그곳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고향은 완전히 파괴돼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 그 참혹한 전쟁터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그녀는 레바논 산을 넘어 이스라엘로 피신했다. 이제 노년을 맞은 그녀가 이렇게 회상한다. “삶은 행복하고 만족스러웠죠. 집이 불탔던 것은 1948년 전쟁 때뿐이었어요. 우리는 그곳에서 형제자매처럼 살았어요. 유대인과 아랍인, 아르메니아인들이 한데 어울렸죠. 모슬렘과 기독교인들이 같은 마당에서 놀았어요. 명절이면 사람들이 선물과 음식을 가져왔죠. 우.. 더보기
아름다움과 죽음의 비창(悲愴) 입력 : 2008-09-04 17:37:27ㅣ수정 : 2008-09-04 17:37:43 1911년 5월, 독일의 작가 토마스 만(1875~1955)은 이탈리아 베니스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는다. 나이 쉰을 갓 넘긴 말러의 부음은 토마스 만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고 전해진다. 토마스 만은 당대의 어느 작가보다 음악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깊었던 사람이었고, 특히 말러에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그는 말러의 애제자이자 음악적 벗이기도 했던 지휘자 브루노 발터(1876~1962)와 친밀한 우정을 나누던 사이였다. 상심에 빠진 토마스 만은 아름다운 베니스의 풍광에서조차 ‘죽음’의 이미지를 봤던 모양이다. 2년 후 그가 발표한 ‘베니스에서의 죽.. 더보기
월경을 꿈꾸던 여행자, ‘낭만’의 문을 열다 입력 : 2008-08-28 17:34:08ㅣ수정 : 2008-08-28 17:34:14 Keyword Link | x “겨우 이것뿐인가?”라고 질문하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여행할 권리. 소설가 김연수의 산문집 ‘여행할 권리’(창비)의 첫 페이지에 그 짧은 문장이 깃발처럼 걸려 있다. 책을 읽기 전에 심드렁하게 지나쳤던 한 줄의 글귀였는데, 300쪽 가량의 책을 순식간에 다 읽고 들여다보니, 이거, 음미할수록 묘미가 있다. 그에게 ‘여행’이라는 행위는 물리적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정신의 월경(越境)과도 같다. ‘겨우 이것뿐인가’라고 회의하면서 더 넓고 높은 차원으로 자신의 존재를 옮겨보려고 몸부림치는 것. 그래서 이 소설가는, 30년대의 작가 이상과 1950~60년대의 시인 김수영을 ‘여행자’의 전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