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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에서

연극 ‘마릴린 먼로의 삶과 죽음’…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녀

기사입력 2010-07-07 17:35



이 연극은 ‘괴물의 삶’을 강요받았던 한 여인의 분열된 자아에 대한 이야기다. 1926년생. 본명은 노마 제인 모텐슨.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수용된 어머니 때문에 애정결핍에 시달렸던 아이. 어머니의 친구집과 보육원을 전전하며 살았던 소녀. 열여섯에 처음 결혼한 후,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 재혼해 9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고 극작가 아서 밀러와 세번째 결혼해 5년 만에 결별했던 여자. 과학자 아인슈타인,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와 이브 몽탕, 대통령 케네디와 그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등 당대의 명사들과 염문을 일으켰던 스캔들의 여왕. 하얀 원피스에 풍성한 금발, 빨간 입술 옆에 선명한 점 하나가 찍혀 있던 백치미의 상징. 그녀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죽어가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가지만, 그대들은 세상을 버텨내세요.”

지난 3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막올린 연극 <마릴린 먼로의 삶과 죽음>(사진)은 그녀의 생애 전부를 관통한다. 짧지만 지난했던 36년의 삶. 하지만 이 연극은 유장한 서사보다 단편적인 에피소드의 중첩으로 먼로의 삶이 가진 ‘비극성’을 드러낸다. 원작자는 독일의 여성 극작가인 게를린트 라인스하겐. 그는 ‘자본’이라는 폭력이 만들어낸 미국 대중문화의 우상에게 가없는 연민을 투사한다. 여성의 일그러진 삶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써온 이 원로작가는 먼로의 삶에 대해서도 가슴 아릿한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가 바라보는 먼로는 문화산업의 권력자들에게 철저히 이용당한 후 버려진 ‘가여운 희생양’일 뿐이다.

한국의 연출가 조최효정은 먼로의 비극적 생애를 다소 경쾌한 템포로 묘사했다. 모두 14개의 장면으로 이뤄진 연극. 남자배우 10명이 헐렁한 트렁크 팬티만 입은 채 등장한다. 그 가운데 3명의 배우가 번갈아가며 먼로의 분열된 내면과 외면을 연기한다. 빠른 대사와 코믹한 몸연기로 연극의 유희적 측면을 한층 끌어올렸다. 그러나 주제의식은 원작과 동일하다. 오히려 원작이 보여주는 ‘희생된 여성’이라는 표상을 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로 치환함으로써, 연극적 프레임을 넓게 확장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극중의 먼로는 왜 자신의 외모에만 탐닉하느냐고 사람들에게, 20세기 폭스사에, 컬럼비아사에 항의한다. “내게는 다른 가치 있는 것들도 있어요. 저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었어요. 전 문학을 사랑해요. 시를 쓰기도 해요.” 그녀는 그렇게 절규한다. 그러나 대중문화의 카메라가 먼로의 내면을 읽어낼 이유는 없었다. 그들은 먼로의 어깨와 다리를, 가슴과 엉덩이를, 입술과 눈빛을 핥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녀는 남자들의 지갑 속에,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들의 사물함 속에 갇혔다. 남학생들은 그녀의 사진으로 책을 포장했고, 공장의 남성 노동자들은 꿈속에서 그녀를 만났다.

먼로의 자아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음’뿐이었다. 그래서 이 연극은, 인간은 죽음에 직면했을 때 비로소 운명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괴테의 말을 인용한다. 먼로가 남기는 마지막 말은 “그대들, 끝까지 이겨내요”라는 것. 하지만 죽음 이후에도 먼로에게 가해졌던 문화산업의 폭력적 메커니즘은 여전하다. 우상을 향해 몰입하는 대중의 광기도 마찬가지다. 먼로는 팬티만 입고 등장했다가 팬티만 입은 채 죽었지만, 사람들은 먼로가 남긴 거울과 머리카락, 전화기, 보석, 잠옷, 벨트에 집착한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소비되는 것은 ‘36, 23, 35’라는 먼로의 사이즈다.

이제 겨우 두번째 작품을 선보이는 신예 조최효정은 ‘준비된 연출가’로 손색없어 보인다. 연극의 사회성과 유희성을 동시에 끌어안는 작가적 균형감, 이미지를 추구하되 이미지에만 함몰되지 않는 미학적 절제도 듬직하다. 다만 극의 초반에 연출가의 패를 다 보여주는 순진함 때문에 후반부의 지루함을 자초하고 말았다. 11일까지.

<문학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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