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6-18 17:57
어떤 이들은 무대에 펼쳐질 ‘장관(壯觀)’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과 사회의 정치적 상관성을 날선 언어로 묘파하는 ‘센 연극’을 기대했을 수도 있겠다. ‘20세기 연극의 신화’ ‘모든 연극학도들의 스승’ 등 연출가 피터 브룩(85)에게 쏟아져온 전설적 수사들은 <11 그리고 12>(사진)라는 연극에 대한 빗나간 환상을 부풀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축구 경기가 펼쳐졌던 17일, 거의 같은 시간에 서울 LG아트센터에서 막 올린 <11 그리고 12>는 역시 텅 비어 있었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빈 공간’에서 배우들은 연극적 액션을 보여주기보다 그저 담담하게 관객에게 이야기를 건네왔으며, ‘이쪽으로 들어와 저쪽으로 나가시오’라는 강요의 언어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피터 브룩의 연극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개념인 ‘열린 문’은 그렇게 관객의 눈 앞에 활짝 펼쳐졌다. ‘연극적으로 꾸민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진즉 깨달은 노장은 아무 것도 힘주어 말하지 않았으며, 현란한 연출로 관객을 사로잡으려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단순성’이 전해주는 울림은 가볍지 않았다. 함께 연극을 본 연출가 양정웅(극단 여행자 대표)은 “그저 감동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며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은 채, 예술은 다만 ‘질문’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연극”이라고 했다.
연극의 배경은 아프리카 서부의 말리. 무대 전면 벽에 커다란 붉은 천 한 장이 내걸렸다. 바닥에도 깔렸다. 곳곳에 잎사귀가 다 떨어진 앙상한 나무 둥치 몇 개가 서 있고 나무 의자 서너 개가 놓여 있다. 그 단순한 무대에 청년 암쿠렐이 등장해 염주 얘기를 꺼낸다. ‘암쿠렐’은 아프리카 말로 ‘작은 이야기꾼’이라는 뜻. “이건 염주알입니다. 제 어린 시절의 기억이 가득 담겼죠. 이 작은 구슬에서 시기와 혐오, 살인과 학살이 다 나옵니다. 제 눈으로 직접 봤어요.”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숫자 ‘11’과 ‘12’는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키워드다. 기도문을 11번 외우느냐, 12번 외우느냐로 시작된 신비주의 종교 수피즘의 신학적 논쟁. 그 마찰은 눈덩이처럼 커져 마을과 마을이 대립하고, 마침내 말리를 통치하는 프랑스 정부까지 개입하는 사태로 발전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감금과 고문과 학살.
암쿠렐의 이야기 속에 가장 중요하게 등장하는 스승 티에노 보카는 그 분쟁의 한복판에 평화의 씨를 뿌리려는 아프리카의 현자(賢者)다. 이 평화주의자가 제자 암쿠렐과 나누는 대화야말로 연극의 메시지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며, 그것은 또한 피터 브룩의 연극적 세계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스승님, 신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당황스러운 마음이지. 왜냐하면 네가 생각으로 담고 말로 형언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신 자체가 아니라 네가 인지한 방식의 신일 뿐이지.” 암쿠렐은 또 묻는다. “그렇다면 진리는 무엇입니까?” “암쿠렐, 세상엔 세 가지 진리가 있다. 나의 진리, 너의 진리, 그리고 진정한 진리. 진리는 누구의 것도 아니란다.” 브룩은 이 몇 마디 대사를 통해 숱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분쟁의 정체를 드러낸다. ‘하나뿐인 신’ 혹은 ‘진리의 절대성’이라는 도그마에서 비롯하는 광기어린 폭력과 전쟁. 그래서 스승 보카는 기도문 암송을 ‘11번’으로 바꾸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종족의 분쟁을 끝내기 위해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한다.
브룩은 이 모든 것을 담담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펼쳐놓는다. 젊은 시절(1971년)에 이미 영국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라는 ‘문화적 중심’을 박차고 떠났던 이 노장은 이번에도 역시 다국적 배우들을 무대에 세웠다. 무대에 오른 7명의 출신은 다양하다. 아프리카, 스페인, 영국, 팔레스타인 배우들을 비롯해 일본 음악가가 무대 오른쪽에서 일본 전통악기를 공연 내내 연주한다.
그들이 <11 그리고 12>에서 선보이는 몸짓과 말투는 우리가 지금껏 봐왔던 열정적인 무대 연기와 사뭇 맛이 다르다. 일체의 감정 몰입이나 과장 없이, 그저 내가 너에게 말을 건네듯이 연기한다. 그것은 분명 브룩의 의도였을 게다. 또한 감정의 절제야말로 현재 세계 연극계의 두드러지는 경향이기도 할 터이다. 다만 공연 전반부가 유머러스하고 경쾌했던 것에 비해, 후반부가 다소 지루하게 풀어졌음을 부인하긴 어렵겠다. 오랜 세월 동안 작품과 저서로 세계 연극계의 후학들에게 ‘영감’을 선사해온 브룩은 이번 작품에 대해 프랑스 TV와 나눈 인터뷰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정의된 단어들”이라며 “내 작품에 도그마가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그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단순함을 추구하게 된다”고도 했다. 공연은 20일까지.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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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무대에 펼쳐질 ‘장관(壯觀)’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과 사회의 정치적 상관성을 날선 언어로 묘파하는 ‘센 연극’을 기대했을 수도 있겠다. ‘20세기 연극의 신화’ ‘모든 연극학도들의 스승’ 등 연출가 피터 브룩(85)에게 쏟아져온 전설적 수사들은 <11 그리고 12>(사진)라는 연극에 대한 빗나간 환상을 부풀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축구 경기가 펼쳐졌던 17일, 거의 같은 시간에 서울 LG아트센터에서 막 올린 <11 그리고 12>는 역시 텅 비어 있었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빈 공간’에서 배우들은 연극적 액션을 보여주기보다 그저 담담하게 관객에게 이야기를 건네왔으며, ‘이쪽으로 들어와 저쪽으로 나가시오’라는 강요의 언어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피터 브룩의 연극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개념인 ‘열린 문’은 그렇게 관객의 눈 앞에 활짝 펼쳐졌다. ‘연극적으로 꾸민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진즉 깨달은 노장은 아무 것도 힘주어 말하지 않았으며, 현란한 연출로 관객을 사로잡으려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단순성’이 전해주는 울림은 가볍지 않았다. 함께 연극을 본 연출가 양정웅(극단 여행자 대표)은 “그저 감동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며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은 채, 예술은 다만 ‘질문’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연극”이라고 했다.
연극의 배경은 아프리카 서부의 말리. 무대 전면 벽에 커다란 붉은 천 한 장이 내걸렸다. 바닥에도 깔렸다. 곳곳에 잎사귀가 다 떨어진 앙상한 나무 둥치 몇 개가 서 있고 나무 의자 서너 개가 놓여 있다. 그 단순한 무대에 청년 암쿠렐이 등장해 염주 얘기를 꺼낸다. ‘암쿠렐’은 아프리카 말로 ‘작은 이야기꾼’이라는 뜻. “이건 염주알입니다. 제 어린 시절의 기억이 가득 담겼죠. 이 작은 구슬에서 시기와 혐오, 살인과 학살이 다 나옵니다. 제 눈으로 직접 봤어요.”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숫자 ‘11’과 ‘12’는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키워드다. 기도문을 11번 외우느냐, 12번 외우느냐로 시작된 신비주의 종교 수피즘의 신학적 논쟁. 그 마찰은 눈덩이처럼 커져 마을과 마을이 대립하고, 마침내 말리를 통치하는 프랑스 정부까지 개입하는 사태로 발전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감금과 고문과 학살.
암쿠렐의 이야기 속에 가장 중요하게 등장하는 스승 티에노 보카는 그 분쟁의 한복판에 평화의 씨를 뿌리려는 아프리카의 현자(賢者)다. 이 평화주의자가 제자 암쿠렐과 나누는 대화야말로 연극의 메시지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며, 그것은 또한 피터 브룩의 연극적 세계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스승님, 신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당황스러운 마음이지. 왜냐하면 네가 생각으로 담고 말로 형언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신 자체가 아니라 네가 인지한 방식의 신일 뿐이지.” 암쿠렐은 또 묻는다. “그렇다면 진리는 무엇입니까?” “암쿠렐, 세상엔 세 가지 진리가 있다. 나의 진리, 너의 진리, 그리고 진정한 진리. 진리는 누구의 것도 아니란다.” 브룩은 이 몇 마디 대사를 통해 숱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분쟁의 정체를 드러낸다. ‘하나뿐인 신’ 혹은 ‘진리의 절대성’이라는 도그마에서 비롯하는 광기어린 폭력과 전쟁. 그래서 스승 보카는 기도문 암송을 ‘11번’으로 바꾸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종족의 분쟁을 끝내기 위해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한다.
브룩은 이 모든 것을 담담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펼쳐놓는다. 젊은 시절(1971년)에 이미 영국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라는 ‘문화적 중심’을 박차고 떠났던 이 노장은 이번에도 역시 다국적 배우들을 무대에 세웠다. 무대에 오른 7명의 출신은 다양하다. 아프리카, 스페인, 영국, 팔레스타인 배우들을 비롯해 일본 음악가가 무대 오른쪽에서 일본 전통악기를 공연 내내 연주한다.
그들이 <11 그리고 12>에서 선보이는 몸짓과 말투는 우리가 지금껏 봐왔던 열정적인 무대 연기와 사뭇 맛이 다르다. 일체의 감정 몰입이나 과장 없이, 그저 내가 너에게 말을 건네듯이 연기한다. 그것은 분명 브룩의 의도였을 게다. 또한 감정의 절제야말로 현재 세계 연극계의 두드러지는 경향이기도 할 터이다. 다만 공연 전반부가 유머러스하고 경쾌했던 것에 비해, 후반부가 다소 지루하게 풀어졌음을 부인하긴 어렵겠다. 오랜 세월 동안 작품과 저서로 세계 연극계의 후학들에게 ‘영감’을 선사해온 브룩은 이번 작품에 대해 프랑스 TV와 나눈 인터뷰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정의된 단어들”이라며 “내 작품에 도그마가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그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단순함을 추구하게 된다”고도 했다. 공연은 20일까지.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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