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7-12 17:52
‘아, 모든 것 이미 사라졌네. 사랑의 행복도 영원히. 내 마음 위로하는 환희의 시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구나.’ 소프라노 홍혜경이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파미나의 아리아 ‘아, 가버린 사랑이여’의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 객석에는 어느새 고요한 슬픔이 번졌다. 오랜만에 맛보는 노래의 진경(眞境)이었다. 화려한 볼거리도 재치있는 쇼맨십도 없이 2시간 내내 담담하게 흘러간 공연이었지만, 관객의 환호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홍혜경은 아무 양념도 가미하지 않은 노래의 진미를 소담한 식탁에 차려냈고, 지난 2년간 자신이 겪었던 슬픔을 그 노래에 투영해 관객을 몰입시켰다.
암투병하던 남편을 하늘로 보내고 한동안 무대를 떠났던 홍혜경이 지난 8일 고양 아람누리에서 관객을 만났다. 3년 만의 내한 무대. 검정색 계열의 드레스를 입은 소프라노 홍혜경이 무대로 나오자 관객은 열렬한 환호로 반겼지만 그는 거의 웃음기 없는 얼굴로 첫곡의 테이프를 끊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등장하는 아리아 ‘어서 오세요, 내 사랑’. 뉴욕에서 날아온 여독 탓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서는 고국 무대의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홍혜경은 첫곡에서 다소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이어지는 곡에서부터 홍혜경은 특유의 서정미로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익히 알려진 대로 그는 서정적인 리릭 소프라노. 하지만 ‘서정성’이라는 틀만으로 그를 설명하긴 어렵다. 이날 무대에서 선보인 아리아들은 소프라노 홍혜경의 넓은 스펙트럼을 그대로 증명했다. 그는 오페라 <라 보엠>의 대조적 캐릭터인 미미와 무제타를 능란하게 노래했을 뿐 아니라, <라 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 비올레타의 아리아에서는 콜로라투라적 기교를 빼어나게 선보이기도 했다. 본인의 말마따나 “밝고 경쾌한 레지에로에서 좀 더 무겁고 서정적인 리리코, 화려한 기교의 콜로라투라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나는 건재하다”는 말(경향신문 6월24일자 인터뷰)이 허언이 아님을 보여준 셈이다. 심지어 그에게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토스카>의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프로그램에 포함시키면서, 넓은 표현력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 모든 것을 ‘편안하게’ 노래한다는 것이야말로 홍혜경의 미덕이었다.
<피가로의 결혼> 가운데 ‘어서 오세요, 내사랑’부터 카탈라니의 오페라 <라 왈리>의 ‘나 이제 멀리 떠나가리’까지, 본인이 직접 고른 이날의 선곡은 먼저 떠난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와도 같았다. 마스네의 <마농>에 등장하는 아리아 ‘우리의 작은 테이블이여 안녕히’와 ‘아, 꿈속에 살고 싶어라’에는 추억과 그리움이 한껏 배어 있었다. 홍혜경은 그렇게 자신의 심정을 노래에 담았고, 그것은 청중의 마음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던 것 같다. 마지막 노래가 끝난 후 터져나온 객석의 박수는 여느 공연과 ‘질감’이 달랐다. 아울러 이날 공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장점은 고양 아람누리 음악당의 빼어난 음향. 음악애호가들이 너나 없이 칭찬하는 “국내 최고의 음향 시설”은 오케스트라 반주의 독창 무대에서도 여실히 빛났다. 고양문화재단 조석준 대표는 “(지난 5월) 이곳에서 공연했던 테너 호세 쿠라가 음향에 완전히 반했다”면서 “개런티가 없어도 좋으니, 내년에 또 와서 공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홍혜경은 이날 앙코르로 3곡을 노래했다. 두 번째로 부른 가곡 ‘동심초’는 또 한번 객석을 감동으로 몰아넣었다. 마지막 곡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의 마무리 부분에서 이른바 ‘삑사리’가 살짝 나고 말았지만, 그것은 공연의 질적 가치와 하등 무관해 보였다. 홀몸으로 공연 전부를 책임지는 독창회는 단체로 협업하는 오페라와 다르기 마련. 성악가도 사람인 까닭에 지칠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래서 앙코르 요청에는 언제나 아티스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홍혜경은 앞으로 세 차례 더 공연을 남긴 상태. 이번에는 독창회가 아니라 테너 김우경과 함께하는 듀오 콘서트다. 13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23일 대구 수성아트피아로 이어진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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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하던 남편을 하늘로 보내고 한동안 무대를 떠났던 홍혜경이 지난 8일 고양 아람누리에서 관객을 만났다. 3년 만의 내한 무대. 검정색 계열의 드레스를 입은 소프라노 홍혜경이 무대로 나오자 관객은 열렬한 환호로 반겼지만 그는 거의 웃음기 없는 얼굴로 첫곡의 테이프를 끊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등장하는 아리아 ‘어서 오세요, 내 사랑’. 뉴욕에서 날아온 여독 탓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서는 고국 무대의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홍혜경은 첫곡에서 다소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이어지는 곡에서부터 홍혜경은 특유의 서정미로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익히 알려진 대로 그는 서정적인 리릭 소프라노. 하지만 ‘서정성’이라는 틀만으로 그를 설명하긴 어렵다. 이날 무대에서 선보인 아리아들은 소프라노 홍혜경의 넓은 스펙트럼을 그대로 증명했다. 그는 오페라 <라 보엠>의 대조적 캐릭터인 미미와 무제타를 능란하게 노래했을 뿐 아니라, <라 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 비올레타의 아리아에서는 콜로라투라적 기교를 빼어나게 선보이기도 했다. 본인의 말마따나 “밝고 경쾌한 레지에로에서 좀 더 무겁고 서정적인 리리코, 화려한 기교의 콜로라투라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나는 건재하다”는 말(경향신문 6월24일자 인터뷰)이 허언이 아님을 보여준 셈이다. 심지어 그에게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토스카>의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프로그램에 포함시키면서, 넓은 표현력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 모든 것을 ‘편안하게’ 노래한다는 것이야말로 홍혜경의 미덕이었다.
<피가로의 결혼> 가운데 ‘어서 오세요, 내사랑’부터 카탈라니의 오페라 <라 왈리>의 ‘나 이제 멀리 떠나가리’까지, 본인이 직접 고른 이날의 선곡은 먼저 떠난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와도 같았다. 마스네의 <마농>에 등장하는 아리아 ‘우리의 작은 테이블이여 안녕히’와 ‘아, 꿈속에 살고 싶어라’에는 추억과 그리움이 한껏 배어 있었다. 홍혜경은 그렇게 자신의 심정을 노래에 담았고, 그것은 청중의 마음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던 것 같다. 마지막 노래가 끝난 후 터져나온 객석의 박수는 여느 공연과 ‘질감’이 달랐다. 아울러 이날 공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장점은 고양 아람누리 음악당의 빼어난 음향. 음악애호가들이 너나 없이 칭찬하는 “국내 최고의 음향 시설”은 오케스트라 반주의 독창 무대에서도 여실히 빛났다. 고양문화재단 조석준 대표는 “(지난 5월) 이곳에서 공연했던 테너 호세 쿠라가 음향에 완전히 반했다”면서 “개런티가 없어도 좋으니, 내년에 또 와서 공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홍혜경은 이날 앙코르로 3곡을 노래했다. 두 번째로 부른 가곡 ‘동심초’는 또 한번 객석을 감동으로 몰아넣었다. 마지막 곡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의 마무리 부분에서 이른바 ‘삑사리’가 살짝 나고 말았지만, 그것은 공연의 질적 가치와 하등 무관해 보였다. 홀몸으로 공연 전부를 책임지는 독창회는 단체로 협업하는 오페라와 다르기 마련. 성악가도 사람인 까닭에 지칠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래서 앙코르 요청에는 언제나 아티스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홍혜경은 앞으로 세 차례 더 공연을 남긴 상태. 이번에는 독창회가 아니라 테너 김우경과 함께하는 듀오 콘서트다. 13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23일 대구 수성아트피아로 이어진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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