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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 오라토리오 ‘천지창조’(Die Schöpfung) 하이든이 영국 런던에 발을 디딘 것은 언제였던가요? 을 지금까지 계속 읽어온 분들은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1791년이었지요. 좀더 정확히 기술하자면, 하이든은 1790년 12월 15일에 오스트리아 빈을 떠나서 다음해 1월 1일 영국에 상륙했고 2일에 런던으로 들어섭니다. 당연히 배를 타고 갔겠지요. 그때부터 이른바 하이든의 ‘런던 시절’, 12개의 교향곡으로 대표되는 시기가 막을 올립니다. 하이든(Joseph Haydn) [출처: 위키피디아] 자, 그런데 당시 런던은 유럽 최고의 음악산업 중심지였습니다. 오스트리아 빈보다도 훨씬 더 음악산업이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인데다 그 진행 속도도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빨랐습니다. 이른바 신흥 부르주아지들이 새로운 사회 계.. 더보기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64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출처: 위키피디아] 멘델스존(1809~1847)의 풀네임은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Jac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입니다. 이렇게 긴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인 아브라함 멘델스존(1776~1835)이 유대교에서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했기 때문이지요. 멘델스존은 7살이 되던 1816년에 세례를 받는데, 이때 ‘바르톨디’라는 세례성(姓)까지 더해지게 됩니다. 바르톨디는 그의 외삼촌 야코프가 소유하고 있던 성(城)의 이름입니다. 한데 펠릭스는 외삼촌의 영지 이름을 성씨로 삼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펠릭스보다 네 살 위의 누나 파니, 두 해 뒤에 태어난 누이동생 레베카, 막내인.. 더보기
브람스, 교향곡 1번 c단조 op.68 가을입니다. 짙은 커피향 같은 브람스의 음악이 떠오르는 계절입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긴 합니다만, 저는 브람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음악적 영향이 상당히 뿌리 깊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미 말했다시피 브람스의 유년기는 몹시 가난했고 그의 아버지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였습니다. 이름 없는 악사로 근근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2월 4일자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브람스의 를 설명하는 글에서였지요. 이 글을 읽기 전에 그 글을 먼저 클릭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 요한 야코프 브람스는 콘트라베이스뿐만 아니라 관악기인 호른도 연주했습니다. 주로 술집에서였지요. 브람스의 고향인 독일 북부의 함부르크는 항구도시입니다. 아버지는 항구 주변의 술집에서 호른을 연주하면서 .. 더보기
모차르트, 레퀴엠 d단조 K.626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날은 1791년 12월 5일입니다. 마지막 오페라인 가 초연되고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입니다. 사실 모차르트는 생애 마지막 해에 들어서면서 잔병치레를 자주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과로로 인해 면역력이 상당히 떨어져 있었을 것으로 충분히 추정되지만, 그 자체로 죽을병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한데 이런 상황에서도 쉬지 못하고 일한 것이 결국 화근이었습니다. 급기야 병증이 폭발하고 맙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무수히 난 좁쌀만한 발열”(hitziges Frieselfieber)로 혼수를 헤매다 사망했다고 합니다. 분명하지만 않지만 아마도 류머티스열로 추정됩니다. 오늘날의 의학이라면 모차르트가 결코 죽음에까진 이르진 않았겠지요. 그의 나이 겨우 서른다섯 살이었습니다. 이틀 후 .. 더보기
베토벤, 교향곡 7번 A장조 op.92 오늘은 ‘교향곡’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클래식 음악의 여러 장르 가운데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즐겨 듣는 장르는 아마도 교향곡일 듯합니다. 독일어와 프랑스어로는 symphonie, 영어로는 symphony로 씁니다.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보다 이 용어를 더 먼저 썼던 이탈리아에서는 sinfonia라고 씁니다. 어원은 그리스어 symphonia입니다. ‘함께 소리를 낸다’는 뜻이지요. 사람의 목소리가 음악의 중심이었던 시절에, 그러니까 거의 18세기에 다다를 때까지, 노래 없이 악기만으로 연주되는 부분을 ‘신포니아’라고 칭했습니다. 말하자면 당시의 신포니아는 음악 전체에서 아주 부수적인 존재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러다가 18세기 초반 이탈리아에서 오페라의 ‘서곡’을 신포니아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