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9-04 17:37:27ㅣ수정 : 2008-09-04 17:37:43
1911년 5월, 독일의 작가 토마스 만(1875~1955)은 이탈리아 베니스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는다. 나이 쉰을 갓 넘긴 말러의 부음은 토마스 만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고 전해진다. 토마스 만은 당대의 어느 작가보다 음악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깊었던 사람이었고, 특히 말러에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그는 말러의 애제자이자 음악적 벗이기도 했던 지휘자 브루노 발터(1876~1962)와 친밀한 우정을 나누던 사이였다.
상심에 빠진 토마스 만은 아름다운 베니스의 풍광에서조차 ‘죽음’의 이미지를 봤던 모양이다. 2년 후 그가 발표한 ‘베니스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은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쓸쓸히 죽어가는 어느 중년 예술가의 마지막 순간을 그린다. 미(美)와 죽음의 문제. 결국 토마스 만은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라는 중편을 통해 세기말을 관통했던 이 탐미적 주제를 다시 끄집어내며, 그 직접적 계기는 흠모했던 작곡가 말러의 죽음이었던 셈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과로와 무기력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50세의 작가 구스타프 폰 에센바흐는 휴양차 베니스의 리도섬을 찾아간다. 그는 그곳에서 미소년 타치오를 만나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사랑. 그의 시선은 타치오에게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그 매혹은 50 평생을 도덕주의자로 살아온 중년의 영혼을 뒤흔들 만큼 강렬하다. 그는 베니스에 콜레라가 창궐해도 떠나지 못한다. 거리 곳곳을 배회하며 타치오의 뒷모습을 고통스럽게 좇는다. 결국 그는 수영을 즐기던 타치오를 넋놓고 바라보던 바닷가 벤치에 홀로 앉아 죽음을 맞는다.
소설은 분량도 짧고 줄거리도 단순하지만 쉽게 읽히진 않는다. 독일 소설 특유의 관념적 표현들이 자주 등장하는데다, 문학적 상징도 많은 탓이다. 대신 이탈리아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1906~1976)가 71년에 만든 동명의 영화라면 좀더 접근이 용이하다. 비스콘티 감독은 주인공의 직업을 아예 작곡가로 바꿨고, 어린 딸을 잃고 상심에 빠지는 에피소드 등을 곁들이면서 ‘말러’의 실제 모습을 화면 속에 노골적으로 심어놓는다. 영상도 탐미적이라고 할 만큼 아름답다. 게다가 영화의 시종(始終)을 장식하는 교향곡 5번의 4악장은, 이 영화가 결국 비스콘티가 말러에게 바치는 ‘헌사’임을 보여준다.
마지막 낭만주의 작곡가 말러는 모두 10개의 교향곡을 완성했다. 그것들은 고전이나 낭만 초기의 교향곡들에 비해 연주시간이 길고 구조도 복잡하다. 그래서 적잖은 이들이 말러 교향곡의 산맥에 오르기를 꺼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1번, 4번, 5번부터 접근하는 것이 좋다. 특히 아름다움과 죽음의 친연성을 그려낸 5번 교향곡은 선율미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트럼펫이 장송 팡파르를 울리며 시작하는 1악장. 바이올린과 첼로가 연주하는 주제 선율은 슬프다. 마치 한 곡의 ‘노래’와도 같은 이 선율은 몇 번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로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을 가졌다. 타악기조차도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연주되는 비애감 넘치는 악장이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4악장 아다지에토(Adagietto)는 느리디 느리다. 현악기와 하프 한 대만으로 연주되는 8분이 조금 넘는 악장. 1악장과 더불어 말러 음악의 비창미(悲愴美)를 대표하는 4악장은 꺼지는 촛불처럼 잦아들면서 짙은 허무를 풍긴다.
영화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은 라파엘 쿠벨릭이 지휘하는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의 연주. OST보다는 5번 교향곡 전체를 수록한 71년 연주(DG)를 구하는 것이 용이하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87년에 빈필하모닉과 연주한 녹음(DG)은 고전 반열에 오른 필청반이다. 특히 4악장 아다지에토는 한 번 들으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명연. 비교적 최근 연주로는 지휘자 루돌프 바르샤이와 융에 도이치 필하모닉의 99년 녹음(브릴리언트)이 좋다. 청소년들로 이뤄진 교향악단이 발군의 연주를 들려준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1911년 5월, 독일의 작가 토마스 만(1875~1955)은 이탈리아 베니스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는다. 나이 쉰을 갓 넘긴 말러의 부음은 토마스 만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고 전해진다. 토마스 만은 당대의 어느 작가보다 음악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깊었던 사람이었고, 특히 말러에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그는 말러의 애제자이자 음악적 벗이기도 했던 지휘자 브루노 발터(1876~1962)와 친밀한 우정을 나누던 사이였다.
상심에 빠진 토마스 만은 아름다운 베니스의 풍광에서조차 ‘죽음’의 이미지를 봤던 모양이다. 2년 후 그가 발표한 ‘베니스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은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쓸쓸히 죽어가는 어느 중년 예술가의 마지막 순간을 그린다. 미(美)와 죽음의 문제. 결국 토마스 만은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라는 중편을 통해 세기말을 관통했던 이 탐미적 주제를 다시 끄집어내며, 그 직접적 계기는 흠모했던 작곡가 말러의 죽음이었던 셈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과로와 무기력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50세의 작가 구스타프 폰 에센바흐는 휴양차 베니스의 리도섬을 찾아간다. 그는 그곳에서 미소년 타치오를 만나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사랑. 그의 시선은 타치오에게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그 매혹은 50 평생을 도덕주의자로 살아온 중년의 영혼을 뒤흔들 만큼 강렬하다. 그는 베니스에 콜레라가 창궐해도 떠나지 못한다. 거리 곳곳을 배회하며 타치오의 뒷모습을 고통스럽게 좇는다. 결국 그는 수영을 즐기던 타치오를 넋놓고 바라보던 바닷가 벤치에 홀로 앉아 죽음을 맞는다.
소설은 분량도 짧고 줄거리도 단순하지만 쉽게 읽히진 않는다. 독일 소설 특유의 관념적 표현들이 자주 등장하는데다, 문학적 상징도 많은 탓이다. 대신 이탈리아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1906~1976)가 71년에 만든 동명의 영화라면 좀더 접근이 용이하다. 비스콘티 감독은 주인공의 직업을 아예 작곡가로 바꿨고, 어린 딸을 잃고 상심에 빠지는 에피소드 등을 곁들이면서 ‘말러’의 실제 모습을 화면 속에 노골적으로 심어놓는다. 영상도 탐미적이라고 할 만큼 아름답다. 게다가 영화의 시종(始終)을 장식하는 교향곡 5번의 4악장은, 이 영화가 결국 비스콘티가 말러에게 바치는 ‘헌사’임을 보여준다.
마지막 낭만주의 작곡가 말러는 모두 10개의 교향곡을 완성했다. 그것들은 고전이나 낭만 초기의 교향곡들에 비해 연주시간이 길고 구조도 복잡하다. 그래서 적잖은 이들이 말러 교향곡의 산맥에 오르기를 꺼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1번, 4번, 5번부터 접근하는 것이 좋다. 특히 아름다움과 죽음의 친연성을 그려낸 5번 교향곡은 선율미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트럼펫이 장송 팡파르를 울리며 시작하는 1악장. 바이올린과 첼로가 연주하는 주제 선율은 슬프다. 마치 한 곡의 ‘노래’와도 같은 이 선율은 몇 번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로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을 가졌다. 타악기조차도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연주되는 비애감 넘치는 악장이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4악장 아다지에토(Adagietto)는 느리디 느리다. 현악기와 하프 한 대만으로 연주되는 8분이 조금 넘는 악장. 1악장과 더불어 말러 음악의 비창미(悲愴美)를 대표하는 4악장은 꺼지는 촛불처럼 잦아들면서 짙은 허무를 풍긴다.
영화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은 라파엘 쿠벨릭이 지휘하는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의 연주. OST보다는 5번 교향곡 전체를 수록한 71년 연주(DG)를 구하는 것이 용이하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87년에 빈필하모닉과 연주한 녹음(DG)은 고전 반열에 오른 필청반이다. 특히 4악장 아다지에토는 한 번 들으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명연. 비교적 최근 연주로는 지휘자 루돌프 바르샤이와 융에 도이치 필하모닉의 99년 녹음(브릴리언트)이 좋다. 청소년들로 이뤄진 교향악단이 발군의 연주를 들려준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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