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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연극인

연출가 오태석... 간결한 잡종(雜種)의 미학

'오태석'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1970년대 후반에 고려원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무대 밖의 모놀로그>라는 책에서였다. 연극쟁이 11명의 에세이를 묶은 책이었는데 오선생의 글이 맨 앞에 실려 있었다. 너무 오래 전에 읽은 책이어서 내용을 선명하게 기억하진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글을 적어도 서너번쯤 읽었던 것 같다. 오선생이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딩굴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글이었는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입담은 물론이거니와 문장을 다루는 솜씨도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아마 그래서 읽고 또 읽었을 것이다. 자신의 연극 <초분><>에 얽힌 이야기, 드라마센터에서 함께 연극을 했던 이호재, 전무송과의 우정,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고 저지렀던 온갖 해프닝들... 아마도 그런 내용들이었던 것같다.

 

그 책이 언제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한 편의 글을 거푸 읽으면서 연출가 오태석에 대한 어떤 이미지들을 머릿속에 새겼던 것 같다.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 전통문화 애호가, 애 같은 어른, 고주망태 술꾼, 열정적인 돈키호테, 마누라 속 썩일 남편... 아마 그런 이미지들이었던 같다.

 

물론 세월이 흘러 기자와 연출가로 대면하게 된 후, 나는 연출가 오태석에 대한 몇 가지 이미지를 수정하거나 보충해야 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눌변(訥辯)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건 눌변이라기보다 '독특한 화법'이라고 해야겠다. 오선생은 자신의 연극이 그런 것처럼 비유와 상징의 언어를 빈번히 구사하는데다 논리적으로 훌쩍훌쩍 비약한다. 게다가 충청도 서천의 아룽구지에서 나고 자란 그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똑 부러지게 말하는 법이 별로 없다. 애매모호하게 비잉 둘러말한다.

 

 

사실 나는 그와의 4차원 인터뷰를 좀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오선생은 인터뷰 자체를 아주 싫어해서 기자를 별로 반기지 않는다. 이번 인터뷰도 그랬다. 아침에는 인터뷰 약속에 선선히 응했던 오선생이 점심 무렵에 돌연 심사가 뒤틀렸다. 단원들과 연습을 하다가 의도대로 술술 풀리지 않자 짜증이 일었던 모양이다. "경향신문 문아무개 오늘 만나고 싶지 않다"며 스태프들에게 한바탕 신경질을 부렸다고 한다. 연출가 오태석은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좋다. 그 어린애 같은 순수함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오선생은 연습실에서 배우들한테 호통을 치고 있을 때 가장 빛나는 존재가 된다. 대학로의 식당이나 카페, 혹은 공연장 로비 같은 곳에서도 종종 그를 봤지만, 연출가 오태석이 별처럼 빛나는 곳은 역시 연습실이다. 이번 인터뷰도 그런 우여곡절 끝에, 연습실에서 '화기애애'하게 이뤄졌다. 아래 박스가 바로 그 인터뷰 기사다. 오고간 얘기들 중에서 사사로운 얘기는 다 걷어내고, 작품과 관련한 골자만 담았다.

 

가면 쓴 웅녀가 관객의 가면 벗길 것

기사입력 2012-03-28 21:42 | 최종수정 2012-03-29 10:41

 

신작 마늘 먹고 쑥 먹고공연 앞둔 연출가 오태석

 

고령의 연출가 오태석(72·사진)은 여전히 배우들과 함께 뒹굴고 있었다. 27일 오후, 서울 성북동의 한 연습실.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 이 눔아, 넌 왜 거기서 말꼬리를 내려? 그러면 관객한테 전달이 안 되잖아. 다시 해!” “책 읽는 것처럼 하지 말라니까. 산대(山臺)로 하란 말이야, 산대로! 운율을 살리라구!” “너 자꾸 그러면 내일부터 바꿔버릴거야!”

 

불호령은 2시간 내내 계속됐다. 그렇다고 연습장이 공포 분위기였던 것은 아니다. 오태석은 입으로 호통을 치면서도 얼굴로는 헐헐 웃었다. 입을 약간 헤 벌린 채 표정을 온통 허물어뜨리는, 특유의 어린애 같은 웃음이었다. 때로는 손으로 테이블을 탕탕 치면서 파안대소했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동작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가냘픈 노구가 산대놀이의 몸짓으로 나긋하게 움직이다가 훨훨 날갯짓을 했다. 노랫가락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배우들과 함께 목청을 한껏 돋웠다. 서른 명이 넘는 배우들과의 합창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사람이 바로 오태석이었다.

 

신작 <마늘 먹고 쑥 먹고>를 한창 준비 중인 오태석과의 인터뷰는 활기가 넘치는 연습장에서 짬짬이 진행됐다. 연습이 마무리된 뒤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됐다. “리얼리스트, 몽상가, 정신분석가, 철학자, 그 모든 것을 넘나드는 어릿광대”(연극평론가 김방옥)와의 인터뷰는 일종의 선문답과 같았다. 그는 자신의 연극에서 항용 그래왔듯, 인터뷰에서도 비약과 상징의 언어로 상대를 은근히 애먹였다. 이번 연극을 표상하는 이미지가 뭐냐고 묻자, 그는 연습실 벽에 붙어 있던 <마늘 먹고 쑥 먹고>의 포스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포스터의 바탕에 장욱진의 그림이 깔려 있었다.

 

- 제목이 뭔가요. 호랑이와 까치인가요?

 

나도 몰라요. 그냥 저 간결한 선이 좋아요. 생선으로 치자면 살을 다 발라 먹고 가시만 남은 거 같죠? 나도 그런 걸 해보려는 거죠. 이번 연극은 배우들한테 전부 마스크를 씌웠고, 움직임도 그렇게 많지 않아요. 세상이 너무 시끄럽잖아요. 정보가 지나치게 많고, 색깔이나 소리도 너무 많아 어지러워요. 그러니 뼈대만 추려야죠. 치장이나 설명을 다 거둬내고 싶어요.”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그림 제목은 호랑이 있는 풍경’(1990년작)이다. 1970년대 초반부터 전통적 소재와 정서에 천착해온 그의 연극은 얼핏 난장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실상은 간결하다. 그렇다고 서구의 앙상하고 차가운 미니멀리즘과 비슷한 것은 아니다. 오태석의 연극은 단순함 속에 한국적 정감을 품으려는 암탉의 몸짓을 보인다. 표준말을 걷어내고 사투리를 구사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는 한국 연극계의 소문난 사투리 애호가이자 수집가다.

 

- 사투리를 애호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이번 작품은 공간적 배경이 아주 넓어서, 사투리 구사의 폭도 넓을 것 같은데요.

 

표준말은 문을 열기보다는 닫는 언어니까요. 자신의 옷깃을 단단히 여미는 언어죠. 하지만 사투리는 틈새가 많아요. 닫힌 문을 열어주는 언어죠. 무대와 객석의 만남은 아주 순식간에 이뤄져야 하니까, 그래서 열린 언어인 사투리가 더 필요한 거죠. 이번 연극에는 팔도 사투리가 다 나와야 하는데, 욕심만 그렇고 다 하진 못했어요. 충청도 사투리가 그중 많고, 이북 사투리, 연변 사투리도 나와요. 요 옆에 식당에서 일하는 연변 아줌마가 자문을 많이 해줘요.”

 

신작 <마늘 먹고 쑥 먹고>는 단군신화에서 모티브만 가져왔을 뿐, 이야기의 구조를 완전히 해체했다. 반만년을 사람으로 살아온 웅녀는 마늘과 쑥의 약발이 다 떨어졌는지 슬슬 곰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참이다. 자고 일어나면 손가락만한 길이의 털이 숭숭 빠지기 일쑤고 등짝도 자꾸만 가렵다.

 

그래서 웅녀는 마늘과 쑥 부대를 이고 굴로 다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한다. 한데 자신을 혼자 남겨두고 중도에 내뺀 호랑이 녀석이 자꾸 떠오른다. 이참에 그 녀석을 다시 만나 인간이 되게 한 다음에 신랑으로 삼아야지 결심하고는 백두산으로 허위허위 길을 떠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갖가지 일들이 벌어진다. 김구 선생이 남순이와 북철이 혼례의 주례를 서고 짐승과 사람들이 한데 어올려 논다. 전체주의의 하수인들로 보이는 인물들이 고만고만한 사람들을 한곳에 몰아넣고는 빨간 양말을 신어라, 파란 양말을 신어라 강요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오태석의 개구쟁이 같은 몽상들은 그렇게 펼쳐진다. 물론 거기에는 과학에 대한 불신, 미래에 대한 비관, 인간과 짐승이 한데 어울리는 유토피아의 꿈 같은 것들이 녹아 있다. 작가 오태석의 근원체험이랄 수 있는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의 상처가 오버랩돼 있음은 물론이다. 11살 때 아버지가 어떤 차에 실려떠나간 이후, 그는 일상사가 다 뒤집히는 삶을 경험해야 했다. 연세대 철학과에 입학해 극예술연구회에 발을 디딘 까닭은 끼니 때마다 라면을 먹을 수 있었고, 선배들한테 술·담배도 얻어낼 수 있어서였다. 그는 한국전쟁을 굳이 의식하지는 않는데도, 자꾸 내 연극 속에 등장하는 걸 나도 어쩔 수가 없어라고, 약간 허허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 가면 얘기를 좀 하죠. 예전에도 가면을 종종 사용하시긴 했지만, 이번처럼 33명의 모든 배우들한테 가면을 씌운 건 처음이죠?

 

가면 위에 가면을 쓴 거죠. 사람들은 서너 살 때부터 가면을 쓰기 시작하잖아요. 성인이 되면 거의 철갑 같은 얼굴이 돼 있죠. 그 가면을 다시 가면으로 가렸어요. 배우들이 쓴 가면은 순수한 자신으로 돌아가려는 장치죠. 억지로 꾸민다거나 누구를 해코지하지 않아요. 그래서 가면을 쓰고 거짓말 연기를 하면 안돼. 그래야 관객들도 자기 가면을 벗고 잠시라도 해방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연극이 고마운 거죠. 잠깐이라도 우리의 가면을 벗게 해주거든.”

 

공연은 48일부터 22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펼쳐진다. 국립극단이 기획한 ‘2012 삼국유사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다. 오태석은 공연이 코앞인데 큰일 났네 큰일 났어를 연발하면서 또 배우들에게 호통을 쳤다. 해외 축제에 초대받은 그는 이번 공연을 마치는 대로 곧바로 이탈리아행 비행기를 타야 할 참이다.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국내외를 오가는 행보로 여전히 분주한 그는 요즘 같아서는 ()현경이 형, ()무송이, ()호재하고 술 마실 시간도 없다며 파안대소했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