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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사티, <6개의 그노시엔느> (6 Gnossiennes) 에릭 사티, 6개의 그노시엔느(6 Gnossiennes) 지난 회에 에릭 사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사티가 젊은 시절에 떠돌았던 몽마르트르 언덕과 캬바레 ‘검은 고양이’, 또 사티의 어린 시절과 그의 음악에 담긴 ‘중세적 명상’의 관계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함께 들었던 곡은 사티의 초기작이었던 였지요. 사실, 사티에 대한 언급은 그렇게 한 편의 글로 마무리할까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거론해야 할 음악가, 또 들어야 할 음악이 많아서였습니다. 한데 뭔가 영 아쉽고 찜찜했습니다. 사티는 생존했던 시절보다 20세기 중후반 이후에 그 존재가 더욱 빛나기 시작했고, 피아니스트들이 즐겨 연주하는 레퍼토리는 아니지만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물론 대중이 좋아하는 곡은 사티의 음악 중에서 극.. 더보기
에릭 사티, 3개의 짐노페디(Trois Gymnopedies) 에릭 사티, 3개의 짐노페디(Trois Gymnopedies)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은 지금도 예술가들의 거리로 유명합니다. 이 고갯길에 예술가들이 몰려든 것은 19세기 말부터였지요.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로 손꼽혔던 오스트리아 빈의 영광이 마침내 저물면서 프랑스 파리가 새로운 예술가들의 도시로 떠오릅니다. 19세기 말의 프랑스는 식민지를 급속히 늘리면서 경제적 풍요를 구가하고 있었고 파리에서는 젊은 예술가들의 새로운 에너지가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앞의 칼럼에서 언급했던 말라르메와 드뷔시 같은 이들이 당시 파리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예술가들이었고, 화가로는 고흐와 르누아르, 로트렉 등이 몽마르트르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 아직 10대였던 피카소가 부푼 꿈을 안고 찾.. 더보기
세계적 지휘자 연봉 얼마기에...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올려놓습니다. 세계적 지휘자 연봉 얼마기에… 기사입력 2014-12-10 17:00:59 ㆍ서울시향 사태로 관심… 정명훈, 9년간 총 140억원 받아 ㆍ로린 마젤 329만달러 역대 최고… 2년 전엔 무티, 217만달러 1위 서울시립교향악단 정명훈 예술감독과 박현정 대표이사의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지휘자들의 연봉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세계적 명성의 지휘자들은 과연 어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을까. 오케스트라 비즈니스와 관련한 미국의 한 웹사이트(www.adaptistration.com)는 미국 오케스트라들이 국세청(IRS)에 신고한 자료에 기반을 둬 지휘자들의 연봉을 밝힌 적이 있다. 이에 따르면 2011·2012 시즌에 가장 고액의 연봉을 받은 지휘자는 시카.. 더보기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드뷔시의 음악 중에 이 지면에서 이미 언급한 것으로는 가운데 ‘달빛’, 또 지난 달 게재했던 가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드뷔시의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인 을 골랐습니다. 연대기적으로 보자면 1890년 작곡했던 과 1903년부터 3년간에 걸쳐 썼던 의 중간쯤에 위치합니다. 드뷔시는 을 1892년부터 3년 동안 작곡했습니다. 인상주의 음악의 문을 마침내 열어젖힌 걸작, 독일^오스트리아 음악과 확연히 맛이 다른 프랑스 근대음악의 첫걸음으로 기억되는 관현악곡입니다. 음악으로 들어서기 전에 드뷔시의 성장 과정을 잠시 복기해 보겠습니다. 그는 1862년 8월 22일, 생 제르맹 앙레(Saint-Germain-en-Laye)라는 곳에서 태어났지요. 파리에서 서쪽으로 20km쯤 떨어져 .. 더보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Also sprach Zarathustra)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1864년에 독일 뮌헨에서 태어났습니다. 네 살 위의 구스타프 말러와 더불어 후기낭만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자리매김돼 있지요. 한데 이 시기, 그러니까 슈트라우스와 말러 같은 이들이 활약했던 이른바 세기말과 20세기 초반은 문화사적으로도 큰 변동이 있었던 ‘전환의 시기’입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으로 대중문화와 대중매체의 확산을 꼽을 수 있겠지요. 영화의 탄생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1895년 12월 23일, 뤼미에르 형제의 필름을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에서 유료로 상영한 날을 기점으로 꼽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대중적으로 복제하는 것을 가능케 했던 또 하나의 테크놀로지, 즉 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