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출가 박근형, "연극에 풍자는 당연… 쓰라린 시대, 시원한 때도 있어야” 나는 연출가 박근형을 좋아한다. 때로는 존경스럽기도 하다. 그 이유를 열거해보자면 이런 것들이다. 연극을 향한 순수한 열정, 작품이 잘 안 풀릴 때 그가 짓는 초초^난감한 표정, 밑바닥에서 시작해 오늘의 박근형을 이뤄낸 뚝심, 작은 몸집 어딘가에 단단히 또아리를 틀고 있는 배짱, 허름한 옷차림, 약간 어리버리해 보이는 촌놈 표정...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만드는 연극에 대한 공감 때문이다. 박근형을 처음 만난 건 대략 10년 전쯤이다. 그는 첫대면에서부터 "한잔 하면서 얘기하죠?"라고 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술집으로 사람을 끌고 간다. 하지만 나는 적당히 둘러대면서 번번히 그와의 대작을 피했으니 공연히 미안할 뿐이다. 하여튼 그는 처음 만난 10년 전에 "앞으로 형이라고 불러도 되겠죠?"라고 했는데, .. 더보기
스메타나, 교향시 <나의 조국> 체코의 음악가로 누가 떠오르시는지요? 아마 안톤 드보르작(1841~1904)이 제일 먼저 생각날 겁니다. 이어서 베드르지히 스메타나가 떠오르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드보르작보다 17년 연상의 음악가입니다. 국제적 명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드보르작보다 조금 덜 알려진 사람이지요. 지금도 그렇고 당대에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체코의 민족음악’이라는 기준에서 보자면 드보르작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민족적인 색채를 보여줬던 음악가입니다. 스메타나는 작곡가였을 뿐 아니라 피아니스트, 지휘자, 비평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순수하게 체코적인 스타일의 음악을 창조한 사람”이라고 자평하기까지 했지요. 물론 음악적 권위가 공고하지 못했던 젊은 시절에는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스메타나는 188.. 더보기
브루크너, 교향곡 7번 E장조 안톤 요제프 브루크너 [출처: 위키피디아] 지난 회에 들었던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에 이어 오늘은 7번을 듣겠습니다. 이 두 곡은 브루크너가 남긴 교향곡 중에서도 오늘날 가장 많이 이들이 좋아하는 음악일 겁니다. 4번은 앞서 설명했듯이 ‘낭만적’이라는 표제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측면이 있고, 브루크너의 다른 교향곡들에 비해 음악의 구조가 좀더 간명하고 곡의 분위기도 비교적 밝습니다. 그런데 7번은 왜 인기가 있는 걸까요? 그에 대한 해답은 아마 느린 2악장에 있을 겁니다. 바그너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약 20분가량의 긴 악장이지요. 듣는 순간에 곧바로 가슴을 파고드는 아름다운 선율이 등장합니다. 누구라도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을 겁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이라는 드라마에서 배.. 더보기
브루크너, 교향곡 4번 E플랫장조 ‘낭만적’ 안톤 요제프 브루크너 [출처: 위키피디아] 음악이 대중적인 것과 순수한 것으로 나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의 일입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그런 식의 이분법으로 음악을 쪼개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하는 19세기의 음악가들은 ‘그냥 음악가’였습니다. 베토벤이나 슈베르트는 물론이거니와, 좀 더 후대로 내려와서는 리스트나 파가니니 같은 비르투오소 계열의 음악가들, 혹은 점잖고 묵직한 이미지로 표상되는 브람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날 ‘순수하고 고급스러운 음악가들’로 인식되는 그들조차도 당대에는 그저 ‘음악가’로만 존재했습니다. 말하자면 음악적 순수함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까지 두루 갖춘 음악을 써내는 것이 그들의 작업이었습니다. 물론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변화인 자본주의.. 더보기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b플랫단조 ‘장송’ 쇼팽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여성이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작가 조르주 상드(1804~1876)입니다. 쇼팽보다 6년 연상이지요. 오늘은 이 유명한 여성 작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이름부터 한번 살펴보지요. 그녀의 본명은 ‘아망틴 오로르 루실 뒤팽’(Amantine Aurore Lucile Dupin)입니다. 자유분방하고 진취적인 여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열여섯 살에 지방 귀족이었던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지만 시골 영주의 안주인으로 살 수 있는 여성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뒤드방 남작과 헤어진 채 두 아이를 데리고 파리로 들어서지요. 그게 1831년의 일이었고 이듬해에 (Indiana)라는 소설을 써서 작가로 데뷔합니다. ‘조르주 상드’라는 이름은 이 소설을 발표하면서 사용한 필명이었는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