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연극인 썸네일형 리스트형 영원한 배우 백성희 선생, 천상의 무대로 백성희 선생의 영결식에 다녀왔다. 2016년 1월 12일 오전,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몇몇 장면들이 있다. 손숙 선생은 울음을 참아가며 이날 영결식 사회를 봤다. 그 모습이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또 손진책 선생은 조사를 읽다가 몇번이나 멈췄다. 간신히 울음을 삼키고는 다시 읽어내려갔다. 그만큼 그에게, 백성희 선생은 특별한 존재였다. 특히 그는 말년의 백선생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사람이다. 노선과 진영에 상관없이 '의리'를 지키는 그의 모습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일흔을 훌쩍 넘긴 그분들이 그렇게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보면서, 오십대 중반의 나는 그들이 함께 보냈던 시절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형님'이라고 부르는 장사익 선생이 고인.. 더보기 연출가 박근형, "연극에 풍자는 당연… 쓰라린 시대, 시원한 때도 있어야” 나는 연출가 박근형을 좋아한다. 때로는 존경스럽기도 하다. 그 이유를 열거해보자면 이런 것들이다. 연극을 향한 순수한 열정, 작품이 잘 안 풀릴 때 그가 짓는 초초^난감한 표정, 밑바닥에서 시작해 오늘의 박근형을 이뤄낸 뚝심, 작은 몸집 어딘가에 단단히 또아리를 틀고 있는 배짱, 허름한 옷차림, 약간 어리버리해 보이는 촌놈 표정...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만드는 연극에 대한 공감 때문이다. 박근형을 처음 만난 건 대략 10년 전쯤이다. 그는 첫대면에서부터 "한잔 하면서 얘기하죠?"라고 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술집으로 사람을 끌고 간다. 하지만 나는 적당히 둘러대면서 번번히 그와의 대작을 피했으니 공연히 미안할 뿐이다. 하여튼 그는 처음 만난 10년 전에 "앞으로 형이라고 불러도 되겠죠?"라고 했는데, .. 더보기 연출가 이상우... “울고 웃고 아! 감탄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라야지” “울고 웃고 아! 감탄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라야지” |기사입력 2013-08-28 21:59 ㆍ연극 ‘광부화가들’ 3년 만에 재연출… ‘풍자의 달인’ 이상우 그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걸음걸이가 절룩절룩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무릎에 마침내 탈이 나고 말았다. 주말마다 기를 쓰고 감행했던 북한산 등반 탓일까. 여섯달째 지팡이 신세를 지고 있는 연출가 이상우(62)는 “연골이 닳은데다 찢어지기까지 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껄껄 웃으며 농을 던졌다. “다리만 이렇지 상체는 멀쩡해요. 내 친구 황지우보다 내가 훨씬 건강하다니까.” 영국의 극작가 리 홀의 연극 을 준비 중인 연출가 이상우를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났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극장 옆 골목의 작고 저렴한 일식집에서다. 지난 27일 점심 무렵,.. 더보기 연출가 임영웅…왜 아직도 ‘고도’냐고? “왜 아직도 ‘고도’냐고? 여전히 우리의 이야기, 이보다 잘 쓴 희곡 못 봤거든” |기사입력 2013-10-09 22:39 ㆍ병상에서 돌아온 ‘리얼리즘 연극의 거목’ 임영웅 지난봄, 여든을 바라보는 연출가는 쓰러졌다. 발단은 척추 디스크였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병석에 누워 있었던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수술 이후의 진통제와 항생제가 의식을 아예 앗아간 탓이다. 그는 “몸이 침대에 누워 있었던 것만 흐릿하게 기억날 뿐, 병실에 누가 다녀갔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연극판의 지인들 사이에서는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다녀와야 되는 것 아니냐는 설왕설래까지 떠돌았다. 그만큼 상태는 심각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일어섰다. 지난 8일 서울 홍대앞의 산울림소극장. 연출가 임영웅은.. 더보기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 "내 아버지는 일본군 헌병이었다" 예전부터 그를 한번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으나, 이래저래 기회가 없었다. 이번에 그의 신작 에 관한 보도자료를 받아들고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어느 순간엔가 머리 속에 한 줄의 문장이 날아와 박혔다. "내 아버지는 일본군 헌병이었다." 나는 길게 생각할 것 없이 전화를 걸어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그는 다음날 오전 11시 정각에 경향신문 앞에 나타났다. 칼같이 시간을 지켰다. 심상치 않은 인상이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눈이 작다. 귀티나는 얼굴이 아니라 그 반대다. 이런저런 풍파를 꽤나 겪었을 법한 인상이다. 나는 몸으로 삶을 견뎌낸 일본의 몇몇 예술가들을 상당히 애호하는 편이다. 그중에는 소설가 아사다 지로 같은 이도 있다. 그는 분명 우파적 성향의 작가이긴 하지만, 나는 그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꿈.. 더보기 연출가 오태석... 간결한 잡종(雜種)의 미학 '오태석'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1970년대 후반에 고려원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라는 책에서였다. 연극쟁이 11명의 에세이를 묶은 책이었는데 오선생의 글이 맨 앞에 실려 있었다. 너무 오래 전에 읽은 책이어서 내용을 선명하게 기억하진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글을 적어도 서너번쯤 읽었던 것 같다. 오선생이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딩굴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글이었는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입담은 물론이거니와 문장을 다루는 솜씨도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아마 그래서 읽고 또 읽었을 것이다. 자신의 연극 과 에 얽힌 이야기, 드라마센터에서 함께 연극을 했던 이호재, 전무송과의 우정,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고 저지렀던 온갖 해프닝들... 아마도 그런 내용들이었던 것같다. 그 .. 더보기 변방연극제 임인자 감독...약자의 시선으로 던지는 물음표 한 여섯달쯤 전이었을까. 라는 연극을 꽤 재미있게 봤다. 극단 '이안'의 창단작이었는데, 나는 젊은 신생 극단의 창단작들은 가능하면 챙겨보려고 하는 편이다. 물론 거기에도 옥석을 가리는 선별은 있기 마련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연극을 보고 나오면서 "맥주 한잔 마실 사람은 요 옆집으로~"라는 전언을 남겼더니, 그날 무대에 섰던 대부분의 배우들이 다시 모였다. 그중에 배우가 아닌 사람이 둘 있었다. 한 명은 극단 이안의 대표인 연출가 오경택이었고, 또 한 명은 이날 공연의 기획과 홍보 등을 맡고 있던 임인자였다. 그는 변방연극제 사무국장으로 오래 일하다가 올해 드디어 "업계 최연소 예술감독"이라는 직함을 갖게 된 연극 프로듀서다. 내 기억으로는 사석에서 임군(나는 그를 임군 혹은 인자군이라고 부른다. 물론,.. 더보기 배우 손숙… 따뜻하고 투명하고, 어딘가 슬퍼 보이는 한달쯤 전 명동예술극장 커피숍에서 손숙 선생과 잠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공연이 막 끝난 시간이었다. 그날 나는 불빛에 비친 손선생의 얼굴을 바로 앞에서 바라보면서, '손선생도 이제 많이 늙으셨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왠지 애잔한 심정이 되었던 것 같다. 6년 전 연극 담당을 처음 맡았을 때 첫번째 인터뷰이가 아마도 손선생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손선생은 첫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활짝 열어 속을 다 보여줬었다. 나는 그렇게 투명한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마 내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인 모양이다. 기사입력 2004-12-09 16:18 | 최종수정 2004-12-09 16:18 배우 손숙 “내가 연기한 ‘그녀들’. 그게 바로 나였을까?” 상처 입은 여..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