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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망명지에서 꽃핀 초인적 기교 입력 : 2009-05-14-17:42:36ㅣ수정 : 2009-05-14 17:42:37 라흐마니노프(1873~1943·사진)는 1918년에 미국으로 망명했다. 조국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난 이듬해였다. 그는 특별한 정치적 견해를 밝혔던 적은 없었지만, 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혁명 직후의 러시아를 떠나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조부와 부친은 차르 군대의 장교였고 어머니도 장군의 딸이었다. 10월혁명 3주 후, 라흐마니노프는 스웨덴 스톡홀름으로부터 연주 요청을 받고는 가족과 함께 기차를 탔다. 그후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스톡홀름 연주회를 마친 그는 이듬해 미국으로 망명, 세상을 떠날 때까지 러시아계 미국인으로 살았다. 그렇다고 라흐마니노프가 미국을 ‘자유의 땅’으로 생각하면서 동경했던 .. 더보기
목숨과 맞바꾼 연주 ‘심장이 터질 듯’ 입력 : 2009-04-16 17:29:05ㅣ수정 : 2009-04-16 17:29:07 오늘은 재즈 색소폰 연주자 스탄 게츠의 이야기로 문을 열어야겠다. 1991년 3월3일부터 6일까지, 그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몽마르트르 클럽에서 연주했다. 세상을 떠나기 정확히 석달 전이었다. 당시 그는 골수까지 쳐들어온 암과 싸우고 있었다. 결국 유작이 되고 만 몽마르트르 실황. 이 앨범에서 최고의 연주는 타이틀곡 ‘People Time’이다. 그것은 지금 들어도 가슴 절절한 명연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스탄 케츠는 평상시처럼 상쾌하고 부드러운 리듬을 구사하지 못하고,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듯한 특유의 몽환적 비브라토도 들려주지 못한다. 그날 스탄 게츠의 테너 색소폰은 목쉰 소리로 힘겹게 운다. 매끈하게 이어져야 할.. 더보기
호로비츠... 61년만의 귀환 입력 : 2009-03-26 17:06:41ㅣ수정 : 2009-03-26 19:22:13 피아니스트 호로비츠(1904~89)는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늘 자신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만을 고집했으며, 그것을 보잉 747로 공수해 연주회를 펼치곤 했다. 연주 여행 중에는 언제나 호화로운 호텔방에 묵었고 전속 요리사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었다. 정수기도 자신의 것만을 가지고 다니며 사용했다. 연주회는 반드시 일요일 오후 4시에 열었으며, 담배는 하루에 딱 두 개비, 연습 시간은 하루 두 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그는 거의 평생에 걸쳐 이런 습관들을 고수했다. 호로비츠보다 열한 살 아래인 리히테르는 어땠던가? 무척 대비된다. 러시아 태생의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두 사람은 인간적 풍모뿐 아니라 삶의 궤적에서도 많이 달.. 더보기
청력 잃고 더 빛난 예술 입력 : 2009-03-19 17:46:02ㅣ수정 : 2009-03-19 18:35:27 베토벤은 26세 때부터 청력을 잃기 시작했다. 50세 무렵이 되면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된다. 말하자면 그의 청력 상실은 2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서서히 진행됐다. 하지만 체코의 작곡가 스메타나(1824~1884)는 경우가 달랐다. 그는 느닷없이 청력을 잃는다. 50세였던 1874년. 환청이 점점 심해지더니 그해 10월에 접어들면서 완전히 들리지 않는 상태가 됐다. 스메타나는 왜 갑자기 청력을 잃었을까. 가장 유력하게 제기되는 것은 ‘매독설’이다. 독일의 내과의사 디터 케르너는 (현암사)이라는 책에서 스메타나의 청력 상실을 “매독에서 비롯된 진행성 마비”로 설명한다. 그는 베토벤에 대해서도 같은 설명을 내놓는다. 다.. 더보기
라흐마니노프의 격정, 쇼스타코비치의 냉소 입력 : 2009-03-12 17:25:18ㅣ수정 : 2009-03-12 23:49:10 첼로 소나타’의 역사에 러시아 작곡가의 이름이 확실하게 등재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였다. 라흐마니노프가 ‘첼로 소나타 g단조’를 작곡했던 것이 1901년. 이 곡은 러시아 작곡가에 의해 쓰여진 첼로 소나타 중에서 오늘날 가장 빈번히 연주되는 곡이다. 물론 그 전에도 러시아에 첼로 소나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안톤 루빈스타인(1829~1894)은 1852년에 ‘소나타 D장조’를, 1857년에는 ‘소나타 G장조’를 썼다. 하지만 이 두 곡은 오늘날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라흐마니노프에 이르러서야 ‘첼로 소나타’라는 장르의 문이 제대로 열렸고, 이어서 미야스코프스키,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등의 작곡가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