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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싸움에 망가진 ‘중산층의 교양’…연극 '대학살의 신' 기사입력 2010-05-06 10:56 위클리경향 열 한 살짜리 아이 둘이 공원에서 싸웠다. 정확히 말하면 페르디낭이 브루노의 앞니 두 개를 박살냈다. 그래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부모들이 모였다. 원만한 합의를 위해서다. 그러나 합의가 부드럽게 이뤄질 기미가 영 요원하다. 신경전이다. 두 부부는 서로의 자존심을 포기하지 않고 팽팽하게 설전을 벌이다가 마침내 치고받을 수준까지 육박한다. 그렇다고 진짜로 치고받진 않는다. 교양있는 중산층인 그들에게 물리적 폭력은 사회적 금기일 터. 그러나 그들은 남의 핸드백을 집어던지고 화병의 꽃을 바닥에 내던지면서 난동을 부린다. 그리고 마침내 걸쭉한 육두문자까지 심심찮게 등장한다. 두 부모가 보란 듯이 걸치고 있던 ‘교양’이라는 외피는 그렇게 무너진다. 대학로예술극장에서 .. 더보기
70년대 잠실섬의 아픔…서울시극단 ‘순우삼촌’ 기사입력 2010-04-27 18:05 | 최종수정 2010-04-28 00:09 ㆍ‘삶의 터전 빼앗긴 일가’ 자연에 빗댄 시적 표현 가난했던 과거의 기억마저도 키치적으로 소비되는 세상이다. 최근의 연극판에서 그런 조짐을 심심찮게 본다. 무대 위로 올라온 1970 ~ 80년대의 누추한 현실은 눈 오는 날의 풍경화처럼 아름답고 달콤하게 그려진다. 게다가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희망의 합창’으로 극을 마무리하기 일쑤다. 철거 용역에게 쫓기는 포장마차 일가족이 하이 파이브를 하면서 파이팅을 외치는 웃지 못할 촌극이라니! 하지만 서울시극단이 공연 중인 ‘순우삼촌’은 그런 면에서 다행스럽다. ‘과거의 기억’을 경망하게 덧칠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진정함을 갖췄기 때문이다. 때는 1973년.. 더보기
연극 '이기동 체육관'…삼류인생들, 마음속 상처들 때려눕히다 기사입력 2010-04-12 18:19 | 최종수정 2010-04-12 23:47 ‘이기동 체육관’은 현실에서 ‘물먹은’ 이들의 집합소다. 관장 이기동은 한때 ‘미친 탱크’로 불리며 전성기를 누렸던 유명 복서였지만, 이제는 수명이 다된 고물 탱크에 불과하다. 노인이 된 그는 펀치 드렁크가 남긴 심각한 두통을 앓는다. 게다가 한쪽 팔마저 벌벌 떠는 장애인이다. 그의 제자인 마코치도 “매일 술병을 끼고 사는 삼류인생”이긴 매한가지다. 만년 대리인 봉수는 부장의 전화 한 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소심남이고, 봉제공장 미싱사 애숙은 뚱뚱한 몸매에 열등감을 지닌 노처녀다. 이 밖의 인물들도 마찬가지. 패자를 기억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사회에서 쫓겨난 이들이 하나둘씩 체육관으로 모여든다. 무대는 허름한 체육관 풍경.. 더보기
첼리스트 양성원, 설치미술가 배정완…음악과 빛의 만남 기사입력 2010-04-08 11:23 위클리경향 빛(Light)은 자신의 존재를 앞세우지 않았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스스로를 보여 주면서 음악 그 자체 속으로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선명하게 스며들었다. 지난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서울 대학로의 정미소소극장에서 펼쳐진 특이한 연주회. 첼리스트 양성원과 설치미술가 배정완이 ‘음악과 빛의 만남’을 시도한 이 연주회의 타이틀은 ‘소란’이었다. 첫곡으로 연주한 올리비에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가운데 일곱 번째 곡 ‘시간의 종말을 알리는 천사를 위한 무지개의 소란’에서 따온 제목인 듯했다. 그러나 연주회는 결코 소란스럽지 않았다. 일단 공연장 로비에 대한 언급부터 해야겠다. 대개 연주회장 로비는 ‘사교장’에 가까운 법이다. 그러나 정미소.. 더보기
오페라 ‘유디트의 승리’…화려한 외피, 부실한 내용 아무리 봐도 좋은 평점을 주기 힘든 공연이었다. 한데 이 공연에 쏟아진 극단적인 몇몇 호평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물론 짐작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냥 웃을 수밖에. 기사입력 2010-04-06 18:39 | 최종수정 2010-04-06 23:05 그동안 뮤지컬 극장처럼 인식돼온 충무아트홀에서 처음으로 오페라를 선보인다는 구상은 참신했다. 주최 측에서 내세운 ‘작지만 아름다운 오페라’. 규모가 크고 화려한 오페라가 봇물을 이룬 한국에서, 그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캐치 프레이즈였다. 게다가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인 비발디의 오라토리오를 오페라로 개작해 한국에서 초연한다는 사실도 애호가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또 하나의 빼놓을 수 없는 기대 요소. 연출 총감독이 올해 여든살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