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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지만 슬픈 고향의 추억…연극 ‘핼리혜성’ 기사입력 2010-07-21 18:06 고향은 완전히 물 속에 가라앉았다. 마을 어귀를 늠름히 지켜주던 느티나무, 고개 너머의 초등학교, 물수제비를 뜨고 다슬기를 건져올리던 실개천, 산등성이를 온통 보라색으로 물들이던 진달래꽃…. 모두 사라졌다. 어린 시절 동무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연극 (사진)은 그렇게, 눈부시지만 슬픈 추억에 대한 이야기다. 1986년에 지구를 지나간 핼리 혜성처럼, 76년을 기다려야 다시 지구를 찾아오는 그 별처럼, 살아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나의 원형질’에 대한 아픈 회고다. 연극의 배경은 제천댐 수몰지구. 소극장의 한가운데 자리한 무대에 단순하고 커다란 타원형 수조가 놓였다. 수조에는 배우들의 정강이에 차 오를 만큼 물이 담겼다. 산중턱까지 물에 잠겨 점점 가라앉는 고향 마.. 더보기
연극 ‘마릴린 먼로의 삶과 죽음’…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녀 기사입력 2010-07-07 17:35 이 연극은 ‘괴물의 삶’을 강요받았던 한 여인의 분열된 자아에 대한 이야기다. 1926년생. 본명은 노마 제인 모텐슨.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수용된 어머니 때문에 애정결핍에 시달렸던 아이. 어머니의 친구집과 보육원을 전전하며 살았던 소녀. 열여섯에 처음 결혼한 후,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 재혼해 9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고 극작가 아서 밀러와 세번째 결혼해 5년 만에 결별했던 여자. 과학자 아인슈타인,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와 이브 몽탕, 대통령 케네디와 그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등 당대의 명사들과 염문을 일으켰던 스캔들의 여왕. 하얀 원피스에 풍성한 금발, 빨간 입술 옆에 선명한 점 하나가 찍혀 있던 백치미의 상징. 그녀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죽어가면서 이렇게 말한.. 더보기
피터 브룩의 ‘11 그리고 12’…예술은 다만 질문일뿐 기사입력 2010-06-18 17:57 어떤 이들은 무대에 펼쳐질 ‘장관(壯觀)’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과 사회의 정치적 상관성을 날선 언어로 묘파하는 ‘센 연극’을 기대했을 수도 있겠다. ‘20세기 연극의 신화’ ‘모든 연극학도들의 스승’ 등 연출가 피터 브룩(85)에게 쏟아져온 전설적 수사들은 (사진)라는 연극에 대한 빗나간 환상을 부풀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축구 경기가 펼쳐졌던 17일, 거의 같은 시간에 서울 LG아트센터에서 막 올린 는 역시 텅 비어 있었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빈 공간’에서 배우들은 연극적 액션을 보여주기보다 그저 담담하게 관객에게 이야기를 건네왔으며, ‘이쪽으로 들어와 저쪽으로 나가시오’라는 강요의 언어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 더보기
연극 ‘벚꽃동산’…강렬한 무대디자인, 실종된 인간의 얼굴 기사입력 2010-06-03 18:00 | 최종수정 2010-06-04 00:16 막이 오르는 순간, 객석 여기저기에서 “와” 하는 탄성이 새어나왔다.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잡아끄는 매혹적인 무대였다. 30m가 넘는 깊이를 그대로 살려낸 갈색 톤의 질감 있는 무대. 전면은 널찍하고 뒤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면서 사다리꼴 모양새를 취했다. 라네프스카야 부인의 오래된 영지 ‘벚꽃동산’에 자리한 대저택의 실내다. 오랜 세월 간직해온 풍요로움과 당당함, 그 저택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숱한 가솔들, 하지만 러시아가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면서 점점 쇠락해갈 수밖에 없는 벚꽃동산의 슬픈 운명을 고스란히 담아낸 무대였다. 삐걱대는 나무 틈새로 간신히 스며 들어오는 햇살. 그것은 마치 앓아 누운 노인의 팔목처럼 앙상했다. .. 더보기
연극 ‘광부화가들’…노동하는 공동체에 예술을 돌려달라 기사입력 2010-05-12 17:48 | 최종수정 2010-05-13 10:30 예술은 누구의 것인가? 이 연극이 던지는 질문은 그것이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술은 과연 무엇을 어떻게 형상화해야 진실한 것인가라는 질문까지 함축한다. 때는 1934년부터 1947년까지, 영국 북부의 탄광촌 애싱턴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광부들의 이야기다. 뮤지컬 로 세계적 유명세를 얻은 영국 작가 리 홀(44)의 이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광부의 손자이자 아들로 태어나 탄광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리 홀의 메시지는 절박하다. 그는 3시간에 달하는 이 연극을 통해 “자본이 강탈해간 예술을 노동하는 공동체에 돌려달라”고 외친다. 어느날 애싱턴의 탄광촌에 미술교사 라이언이 찾아온다. 노동자교육협회의 초청을 받은 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