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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체르노빌... 103명의 증언' 예상했던 것처럼, 이 책을 소개한 주요 언론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후쿠시마 사태 직후의 한국 언론들은 진보와 보수에 상관없이 원전 관련 기사를 쏟아냈었는데, 어느덧 그 '장사'가 수명을 다했다고 판단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 책을 낸 출판사는 운이 없다. 두달쯤 전에만 출간했더라도 꽤 화제가 됐을 텐데, 애석하게도 사주를 잘못 타고 세상에 나온 셈이다. 기사를 쓰기 전, 저자와 관련한 몇가지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출판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 전화를 받고는 대여섯 시간 후에 책의 저자인 63세의 여기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 관련한 내용들을 e메일로 보내왔다. 기사에는 그 내용을 일일히 다 소개하지 못했으니, 블로그에라도 올려놓는 게 좋을 성싶다. 알렉시예비치는 한국에.. 더보기
원전을 멈춰라... 히로세 다카시 지난주 경향신문 문화부 테이블에 놓인 책 가운데, 내 눈길을 가장 끌었던 것은 일본의 반핵운동 저널리스트인 히로세 다카시 선생(사진)의 책 였다. 구소련 체르노빌 사태 직후에 쓰여진 이 책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저자의 진정성 있는 고발, 아울러 일본 후쿠시마에서도 언젠가 체르노빌과 같은 대형 참사가 일어나고 말 것이라는 '이성적 예언'을 펼쳐놓는다. 특히 그 참사가 지진이나 해일로 인해 빚어질 것이라는 구체적 예견은 소름을 돋게 할 정도다. 그에 따르면 원전 사고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개연성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언젠가 반드시 다가올 재앙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다음 타자는 과연 누구일까? 생각만으로도 두렵다. 의 원제는 다. 최근의 원전 사태를 맞아 20년 전에 국내에서 출간됐던 책을 다시.. 더보기
레너드 번스타인... 매카시의 그물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지휘자 1951년 3월, 이스라엘필하모닉과의 연주회가 끝난 후, 뉴욕 카네기홀 그린 룸(Green Room)에서 여동생 셜리(Shirley)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레니는 카메라를 적잖이 의식한 채 담뱃불을 멋지게 당기고 있다. 꽤 여유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무렵, 그의 속은 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마녀사냥의 선봉에 섰던 , 같은 매체들은 이미 한 해 전부터 그를 '위험한 빨갱이', '불순분자'로 낙인찍어 리스트에 올렸다. 사진과 같은 해의 5월16일, 레니는 셜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반미활동 조사위원회'에 자신이 곧 소환돼 조사받을 것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털어놓고 있다. 좌파로 찍힌 데다 동성애 성향까지 알려져 있던 터라, 더욱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다행히(?) 레니는 송환.. 더보기
아도르노, <한줌의 도덕>..."전체는 허위다"  피아노 치는 아도르노.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쇤베르크의 제자였다. 베베른과 함께 작곡을 공부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그의 저서 은 '빈악파'의 일원으로서 미학적 견해를 표출했던 저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연하게도 그는 무조음악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가 보기에 음악에서의 '조성'이란, 개인을 억압하는 전체성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조성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강제된 '관행'일 뿐이며, 쇤베르크로부터 발원한 무조음악이야말로 그 관습에 도전하는 일종의 저항이었다는 것이 아도르노의 견해다. 아래 박스는 경향신문 토요일자에 새로 만든 '에디터의 책꽂이' 코너에 첫번째로 썼던 글. 보다 조금 앞서 집필했던 을 주마간산으로 소개한 10매짜리 원고다. [에디터의 책꽂이]“전.. 더보기
리영희 선생 타계... 슬프다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셨다. 오늘 새벽 0시 40분 눈을 감으셨다. 29년생이시다. 지난달 15일 세상 떠난 울 아버지와 동갑이시다. 리선생은 평북 운산, 울 아버지는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디아스포라였다. 이래저래 켜켜이 마음이 아프다. 난 선생을 2004년 1월 인터뷰했었다. 며칠 전 전화를 미리 드렸더니 "난 지금 손도 벌벌 떨고 말도 잘 못해"하시며 "오지마, 오지마" 만류하셨다. "그래도 가겠습니다"라며 끝내 졸라서, 마지못해 승락하신 인터뷰였다. "경향신문이 나한테 몇년째 신문을 공짜로 넣어주고 있으니, 그 답례로 생각하라"며 어렵게 인터뷰를 승락하셨다. 그때도 선생의 육신은 이미 고통 자체였다. 2000년 중풍을 맞으셨으니, 성치 않은 몸으로 10년을 버티신 셈이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와 동.. 더보기